난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오만 잡생각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이 반지를 선물하면..
가장 멋진 선물이 될 수 있을까..
그냥 '널 위해 준비했어' 라는 말을 하며 몰래 건네줘야 하나..
아님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사물함 속에 가져다 놓을까..
저녁내내 뒤척이며 생각해 낸 결과..
그녀에게 강의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모른체 하다가..
저녁때 그녀가 정말로 모르냐며 마지막으로 물어볼 때, 그때 주머니에서 꺼내서
그녀의 손에 끼워주며 '이 세상에서 너만을 사랑해..' 라고 말하는 약간 유치하면서도 나름대로 멋진 방법을 고안 해 냈다.
물론 그녀는 약간 약오르겠지만 말이다.
예상했던 대로, 역시나 그녀는 옷도 그날따라 이쁘게 입고 평소에 안하던 화장도 이쁘게 하구 학교에 등교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며 '이야~ 무슨일 있구나~오늘 무슨 날이니?'를 연발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다른날과 다르게 그날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시큰둥한 표정만을 지으며.. 그녀에게 툭툭 말을 건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어제 일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 오빠.. 어제 저녁에 도대체 어디 있었던 거예요..
전화해두 안받구 삐삐쳐두 연락 안하구..
오빠 저 정말 어제 저녁에 화났었어요...'
나는 가능하면.. 약간 툭툭데는 투로 대답을 하기 위해 평소에 그녀에게 절대로 쓰지 않는 어투를 써가며 말했다.
' 애도 참..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는거지..
뭐 그런거 가지고 화를 내고 그러니?.'
어제일에 대한 나의 다정한 사과의 말을 기대하던 그녀는 나의 뜻밖의 말에 놀란 얼굴이었다.
그녀는 약간 얼굴을 찌뿌리다가, 다시 오늘이 1000일이라는게 기억에 떠올랐는지, 다시금 멋적은 웃음을 띄며 나에게 말했다.
' 하..하.. 생각해 보니까 오빠말이 일리가 있는것두 같내..하..하..'
그리고 나서 그녀는 내 눈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 저기 오빠 있잖아요.. 오늘이...'
' 아차.. 오빠 수업 늦겠내.. 성미 오늘은 오빠랑 모두 다른 수업이 지..??
오늘 수업 잘 받구..
조금있다 저녁에 우리 잘 가는 학교앞 커피숍에서 5시에 만나기로 하자.
그럼 그때봐~~ 아~ 점심은 오빠 친구들이랑 약속있으니까 너두 친구들이랑 먹구~~'
난 일부러 말을 끊었다.
왜냐.. 그녀가 '오빠 오늘 우리 만난지 1000 일 된 날이예요..' 라고 말할 것을 이미 알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난 황당해 하는 그녀를 뒤에 두고, 재빨리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미안해 성미야, 다 오빠가 생각이 있어서 그런거니까 오빠를 용서해 주렴."
난 이런 마음을 먹으며 그날 하루를 보냈다.
수업내용이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오직 머리속에는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흐흐흐....'
공부시간에 비실비실 웃는 나를 보고, 옆에 앉은 친구녀석이 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녀석의 눈에는 '녀석.. 안 어울리게 법 공부를 한다고 하더니..
결국에는 돌아버렸군.. 돌아버렸어..' 라고 하는 말이 씌여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친구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비실비실 웃으며 하루를 보냈다.
내 일생에서 그렇게 길게 느껴진 하루는 없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약속시간 5시가 다가왔다.
난 발에 불이나게 달려 학교앞 커피숍에 도달했다.
커피숍에는 그 당시 유행했던 '오늘같은 밤 이면' 이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잘 알고 지내던 커피숍 주인아저씨와 미리 상의를 하여 폭죽과 케익, 좋은 자리를 마련해 놓게 했다.
실로 만반의 준비였다.
이제 그녀만 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리라.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음악에 빠져있는 나의 눈앞에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났다.
하마터면 바로 반지를 꺼내서 그녀에게 끼워줄뻔 했는데, 나는 작전을 끝까지 지켜야 겠다는 생각에 반지를 꼭 움켜쥔 오른손을 주머니 속에 깊숙이 쑤셔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았다.
그녀는 아까의 내 행동에 화가 아직 덜 풀렸던 것일까, 약간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는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 오빠.. 아까 오빠답지 않게 너무하셨어요.. 성미..화났어요..'
' 하하.. 오빠가 장난이었지.. 성미 화 많이 났어? 많이 났다면 정말 미안~~'
내가 그녀에게 평소와 같은 미소띈 얼굴을 보이자, 그녀두 아까의 일은 금새 까먹은냥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싱글벙글 했다.
' 뭐먹을까 성미야.. 오빠가 오늘은 항상먹는 블랙커피 말구 .. 맛있는거 사줄께..'
'그냥 오빠가 드시구 싶은거 고르세요.. 전 아무거나 다 좋아요..'
그녀는 두 손에 깍지를 끼고 턱을 괜 채 메뉴판을 뒤척이는 나를 싱글벙글 웃으며 쳐다보았다. 난 그녀의 귀여운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금 있으면 내가 천신만고 고생한 끝에 사게 된 이 반지를 끼워줄 이쁜 손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변변한 선물 하나 못해준 나, 1000일이 되도록 반지 한번 선물하지 못한 나, 이제 앞으론 이런 오명은 바이 바이 다.
난 감개 무량한 얼굴을 하고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의 손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앗......................'
난 내 눈을 믿을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난 주머니 속에 있는 내 손을 줬다 폈다 하면서 반지가 그곳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틀림없이 반지는 그곳에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녀의 손에 끼워져 있는 저 반지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의 손에는 내가 선물하려는 것과 똑같이 생긴, 그러니까 바그드아무르가 끼워져 있는 것이었다.
난 그녀에게 짠 하면서 내밀려고 생각했던 오른속을 주머니 속에 계속 넣어두구서, 도대체 이 사태가 어떻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녀가 나의 이런 당황해 하는 얼굴과 반지로 향하는 나의 시선을 봤는지,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오빠 이 반지?? 이 반지 생각하는 거야?? 이거 어제 지은이가 나에게 우리의 오늘을 기념하여 꼭 선물해 주구 싶었다구 백화점 가서 사준 반지야..
값도 꽤 비쌌는데..
평소에 선물같은것두 잘 안하던 계집애가 도대체 무슨 맘으로 이걸 선물했는지 몰라..
근데 이거 정말 내가 갖고 싶어 했던 거였거든..
받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너무 기뻐서 오빠한테 전화하려구 했는데 오빠가 전화 안 받아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어 오빠 얼굴 표정이 왜 그래??'
그렇다.. 난 철저히 당한 것이다.
그 후배아이한테 철저히 농락당한 것이다.
내 딴에는 한달동안 뼈빠지게 고생해서 번 돈으로 겨우 산 반지를, 그 아이는 단지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서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다.
난 할말을 잃었다.
흔히 말하는 상류 계층, 이 잘사는 집애들에 대해서 일종의 증오감 마저 들 정도였다.
내 온 몸의 힘이 발 아래로 쫙 흘러 나가는 느낌이었다.
한달.. 한달 동안 고생해서 산건데..
도대체 이게 뭐야..
난 반지를 쥐고 있던 손을 펴 반지를 주머니에 두고 오른손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손에는 땀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오빠.. 오빠 얼굴이 왜 그래요.. 뭐 않 좋은 일이라두 있어요??'
' 아..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두.. '
그녀는 나의 이런 말이 진심으로 들렸는지, 아니면 화제를 바꾸구 싶었는지, 내 옆자리로 자리를 바꿔 앉아 나의 팔짱을 끼며 나에게 소근소근 말을 꺼냈다.
'오빠.. 혹시 오늘 저한테 뭐 주고 싶은거 없어요??'
난 할말이 없었다.. 그 후배가 준 반지를 내가 다시 선물한다.. '하.. 하하..
똑같은 반지를 내가 사가지구 왔네.
이걸로 더블링 이나 하렴......' 이렇게 말해야 하나?
이건 차라리 안하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못하고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없어...'
그녀는 나의 이 말에 약간 화가 났나 보다.
아마도 아까 아침녁에 있었던 일까지 머리에 떠오르면서 꾹참았던 화가 다시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그녀는 입을 삐쭉거리며 약간 큰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