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만 햇살이 맑은 날입니다.
이런 날 아침이면 나는 누군가에게 편 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내 삶에 따스한 위안을 주는 그대에게, 라고 시 작하는 편지를 말입니다.
거창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저 안부만이라도 묻고 싶었고, 그래서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직 따스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실은, 이런 날 아침이면 그대와 함께 커피를 한 잔 마시고도 싶었습니다.
그대는 또 모르진 않겠지요.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대와 함께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아서라는 것을. 돌이켜보면, 그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내 젊은 날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 외롭고 울적했던 날들, 가장 빛나 야 할 내 젊은 날들 속에서 그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사랑했으 나 사랑한다는 말은 못 하고 단지 그대의 안부만 물었을 뿐인 그런 편지 를 쓰는 일. 사실 그 일은 내게 크나큰 괴로움이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어찌합니까, 그나마 편지는 그대를 향한 내 유일한 통로였던 것을. 밤 깊도록 내 아픈 마음을 달래느라 그대에게 쓴 편지들. 하얗게 밤을 새워 쓰긴 했지만 끝내 부치지도 못할 그 사연들.
그것들을 나는 훗날 다음과 같은 시로 써보았습니다. 깊은 밤,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 그대에게 건너가지 못할 사연들, 어 쩌면 내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고백들이 절망의 높이만큼이나 쌓여간다. 그립고 보고픈 사람이여, 아무리 불러도 지겹지 않은 이름이여. 나는 이 제 어찌할 바를 모르네.
내 생각이 닿는 곳마다 그대는 새벽 안개처럼 피어오르니 나는 그저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네. 그럴수록 더욱 선명한 그대. 그대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내 마음 한 쪽을 떼어보내는 일이다.
그대에게 닿을지 안 닿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날마다 내 마음을 보내느라 피 흘린다. 밤새 그대 이름만 끼적이다 더 이상 편지를 쓸 수 없는 까닭은 이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내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아서이다.
그대여, 밉도록 보고픈 사람이여. 나는 이제 그만 들키고 싶다. 그대를 알고서부터 날마다 상처투성이가 되는 내 마음을. 그때 내 마음이 그랬습니다.
비록 그대의 손에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편지는, 그리고 편지를 쓸 수 있었다는 건 진정 내게 고마운 일이었습니 다. 밤마다 편지를 씀으로써 내 마음을 조금씩 정리할 수 있었으며, 그 대를 향한 내 사랑을 조금씩 성숙시킬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요즘 편지를 쓴 지도 참 오래되었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나 할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또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 향내나는 잉크와 종이 냄새를 맡은 지가 한참인 것이지요.
오늘같이 햇 살이 맑고 투명한 날에는, 그래서 그대의 해맑은 미소가 생각나는 날에 는 전화기를 들기보다 엽서라도 한 장 쓰는 것이 어떨는지요?
내 삶에 따스한 위안을 주던 그대에게, 라고 시작하는 편지.
그래서 그대가 있었 기에 내 삶이 따스한 불빛처럼 환해졌다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