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구 나서 얼마후에 물어본 말인데, 그녀 역시도 처음 입학해서부터 내가 맘에 들었더랜다. 뭐, 착하고 순수해 보이는게 맘에 들었대나 뭐래나. 그래서 커플송 부를 때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불렀댄다. 물론 나 역시도 그랬었지만. 우리의 운명적인 사랑은 OT에서 막을 올려, 우리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더욱 활활 타올랐다.
물론 우리가 사귀는데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어렵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교를 다니는 고학생이다보니, 그녀랑 데이트를 할 시간이 충분히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부족함 없이, 그리고 노는것두 최고급으로 놀던 그녀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내가 한달 내내 아르바이트해서 번 비용이 하루 놀기에도 부족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달랐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약간 사치스러운 생활들을 정리하고, 나에 맞게 좀 더 검소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의 주 데이트 장소는 학교 앞 카페가 되었고, 식사는 주로 분식점에서 해결하거나, 나의 자취방에서 해결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것에 대해서 전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고, 내가 가끔가다 한번씩 좀 좋은곳에 가서 먹자고 하면 뭐하러 돈을 낭비하냐고 나에게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 말했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건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바로 오빠의 사랑이라고. 난 이런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 훗.....'
나는 먼 하늘을 쳐다보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그녀가 처음 나의 자취방에 와서 해 준 요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때가 아마, 우리가 만난지 200일지 조금 지난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대체로 나의 자취방에서 만나고 놀고 다 했기 때문에, 내가 없어도 그녀는 나의 자취방을 많이 들락거리며 방정리도 해주고 청소도 해줬다.
그러던 어느날, 아르바이트에 지친몸을 이끌고 9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그녀가 여태 집에 안가고 방에 있는 것이었다. 놀란 내가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나 를 위해서 맛있는 요리를 준비해 놓았단다. 그녀가 만들어 놓은 요리는 두부된장찌개. 뚜껑을 열으니, 맛있는 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나는 그녀에게 함께 먹기를 권했는데, 그녀는 아까 집에오기 전에 친구를 만나 잔뜩 먹구 왔다고, 나에게 혼자 먹으라구 했다. 난 감격한 얼굴을 띄고, 그녀가 해 준 두부된장찌개을 한 숟가락 떠서 후후 분 다음 입에 가져다 넣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냄새가 좋다구 해서 맛도 똑같이 좋으란 법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음식은 항상 입에 넣기 전에 확인해 보고 넣어야 된다는 것을. 이건 말이 된장찌개지, 똥을 씹은 기분이 들었 다. 인상을 찌뿌리며 입에 넣은걸 뱉으려는 순간, 나는 내 앞에서 두손을 가슴팍에 모아 꼭 쥐고 자신의 첫 요리를 어떻게 평가해 줄지 두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를 쳐다보는 그녀가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난 뱉으려는 욕구를 간신히 물리치고, 그것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얼굴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맛있다.... -.-;;'
그녀는 나의 이 말을 듣구 얼굴에 웃음을 띄며 '와~ 다행이다'를 연발하며 좋아했다. 비록 맛은 똥 맛이었지만, 그녀의 저런 기쁨을 조미료 삼아 '기쁨두부된장찌개'를 거의 다 먹었다.그녀는 내가 찌개를 먹는 동안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녀에게 정말로 잘 먹었다는 칭찬을 계속 해 준 뒤, TV를 보면서 난 그녀가 설거지를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TV소리 사이로 어디선가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난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부엌에 쭈그려 앉아 흐느끼구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내가 나중에 먹으라고 덜어놓은 듯한 된장찌개 그릇과 숟가락이 하나 놓여있었다.
'오빠 미안해요... 맛도 없는 요리 만들어서.. 괜히 오빠 먹느라 고생하게 만들구..담부턴 요리 안 만들께요....'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난 이런 그녀를 일으켜 세운후, 그녀를 꼭 껴안아 주며 말했다.
' 첨부터 요리 잘하는 사람은 없는 거니까 걱정마. 그리구 오빤 그 요리 자체 보다도, 너의 정성을 맛있게 먹었다는 생각밖에 안나. 오빤 지금까지 그렇게 맛있는 요리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걸..'
이건 진심이었다. 난 요리 자체의 맛 보다도, 그녀의 사랑의 맛에 반해서 그 요리를 다 먹은 거였다. 그녀는 나의 이런말을 듣구 조금은 위안이 되었는지,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띄며 나에게 꼬옥 안겼었다.
' 하하.. 총각은 참 아량도 좋구만.. 만약 우리 마누라가 그랬다면 밥상을 콱 뒤집어 버렸을텐데 말이야.. 하하..'
나는 기사 아저씨의 웃음에 따라 웃으며.. 그녀와의 달콤했던 과거, 사랑의 추억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흔히 쌀쌀함을 느낍니다. 근데 어떤 갤럽에서 연구를 했다고 그러는데, 솔로인 사람이 앤이 있는 사람들보다 쌀쌀함을 더 느낀다고 하는군요. 왜 그럴까요. 아마도 자신의 피부에 와닿는 차가운 가을 바람보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상기시키는 고독의 바람이 자신의 마음을 휘몰아치기 때문에 더욱 쌀살하게 느껴지는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