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과 같던 30일이 드디어 지나갔다. 1000일이 이틀 남은날, 월급봉투를 받는 나의 가슴은 곧 그녀에게 그녀가 가장 갖고싶어하는 반지를 선물해 줄 수 있겠다는 마음에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더욱 그녀를 놀래주기 위해서, 내가 1000일이 언제인지 까먹은 냥 그날이 오기 전까지 모르는 척 행동하기로 작정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보는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허름한 옷에 운동화를 신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나를 외계에서 온 외계인을 보는 양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런 시선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귀금속 코너로 다가갔다.
귀금속 코너의 점원 역시 이런 모습의 내가 그쪽으로 다가오는데 대해서 놀람 반 흥미 반으로 나를 위아래로 계속 쳐다보았다.
' 아.. 바그드아무르 (Bague de Amour)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바로 이 물건입니다..'
난 이 물건의 이름을 한번 듣고 외울 수 없었다.
점원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2번 더 물어 본 다음, 그 물건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녀가 끼면 뭐랄까..
잠용이 여의주를 얻은 모습이랄까..
하여튼 정말로 어울릴 것 같았다.
그물건이 맞다고 말을 하며, 한달동안 고생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70만원이 든 흰 봉투를 조심스럽게 점원에게 내밀었다.
점원은 웃으면서 그것을 받더니, 돈을 꺼내서 세어보기 시작했다.
' 저기.. 손님 돈이 모자라는 데요..'
' 헉.. 이 물건 70만원 아닙니까???'
' 아.. 어디서 잘못 들으셨나 보군요. 이 물건 정가가 80만원, 현금가로 75만원짜리입니다.'
; 아..에.. 그렇군요...'
난 지갑에서 황급히 5만원...
정확히 말하면 내가 다음달 먹고 살 쌀푸대..를 꺼내서 점원에게 건냈다.
점원은 선물 할 것인지를 짐작했는지.. 포장도 이쁘게 해줬다.
' 손님.. 나중에 또 오세요.. 그리고 선물 받으시는 분과 꼭 사랑이 이루어 지시길 빌께요..'
점원의 인사를 뒤로 하고..
백화점을 부리나케 빠져나왔다.
잠깐 긴장해 있는 사이.. 그녀로부터 삐삐가 3통이나 와 있었다.
주변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들어보니..
직접적으로 말은 안해두 '오빠 뭔가 좀 생각나는 거 없어'라든지..
'우리가 만난지 참 오래된걱 같다..' 라든지 1000일인 것을 나에게 돌려서 말해주려는 그녀의 귀여운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내가 1000일에 대해서 안다고 말을 하면 그녀가 분명히 선물이 뭐냐고 물어볼게 뻔하니까, 난 그녀에게 아무일도 없는 듯 그냥 태연하게 삐삐 메시지를 남겼다.
마치 1000일을 모르는냥 말이다.
드디어 D-1 이 되는날..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집으로 그녀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학교에서도 계속 정답게 손을 부여잡으며
'오빠 뭐 생각 나는 거 없어?'를 연발하던 그녀에게 아무일도 없는 양 행동하기가 참 지옥같았는데, 저녁에 또 전화로 거짓말을 해야 될 것을 생각하니 전화 받기가 두려워졌다.
'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
결국 나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선택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삐삐에 그녀방 전화번호가 찍혔다.
언제나와 같이 '1004'를 뒤에 붙인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저녁만큼은 나의 천사를 외면하기로 마음먹고..
그녀와 함께할 멋진 내일을 생각하며 전화기 코드를 빼구 삐삐 전원을 꺼 버렸다.
' 허허.... 총각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었구만.. 우리 여편넨 내 같은 경우는 내가 핸드폰 잠깐만 꺼놔두 '이 웬수 또 바람피우러 갔구나~!!' 하면서 오만 지랄을 다 떨어서.. 핸드폰 끈다는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암~~~..
그래서 처자한테 반지 선물하구 이리 저리 했나~~??'
기사 아저씨는 내 이야기에 구미가 땅기는 듯, 연신 백밀러로 나를 쳐다보며 장단을 맞춘다.
' 아.. 근데 상상도 할 수 없는 뜻밖의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좀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뜻밖의 일이벌어졌죠..그건.. 지금 생각해두 말이예요...'
그 말이 맞다.. 그건 지금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누구를 탓할 마음은 없지만..
아니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건가...
하여튼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일임에 틀림 없는 일이 그때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