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는 묶음의 형식이지만
비어있음의 형식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잔득 묶고 있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괄호는 어쩌면
모호함의 형식일 수도 있다
가령 내 어머니가 그렇다. 그녀는
주로 미지수를 묶고 다니므로
무엇인가 들어 있다 할지라도
전혀 알아볼 수 없다
아니, 텅 비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괄호는
등호를 거리낌없이 뛰어넘어도
결코 균형이 무너지는 법이 없다
괄호가 사라진 자리에 어룽어룽한 자국.
어머니란 한 쪽 변에
잠시 여자를 비워둔 여자일까
미지수를 묶고 다니는 그녀
미간을 둥그렇게 찡그리며
눈물을 흘리면, 작고 예쁜 괄호가 생긴다
내가 앓아야 할
세상의 모든 아픔 앞에서
그녀의 눈가는 언제나 먼저 축축해지는 것이다
나도 별수없이 그녀의 괄호안에 묶이는 것일까
그렇게 그녀가 모두 묶어서
미리 중심을 잡고 있는 것 아닐까
서덕민의 시는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을 정도로 선자들을
기쁘게 했다. 그의 시도 이미 기성의 형식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담은
내용은 오로지 그의 사유의 깊이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 선자
들은 「괄호론」에 주목했다. 괄호를 ‘묶음의 형식이지만’ 또한 ‘비어 있음의
형식’으로 인식한 그 인식의 깊이도 놀라웠지만, 괄호를 어머니라는 여자의 삶
에 비유한 것 또한 무리가 없고 개성적이었다. 앞으로 우리 시단을 이끌어나갈
재목임이 분명하다는 점을 심사위원 모두 의심치 않았다. 다만 그의 철학적 사
유가 보다 깊어지면서 구체적 삶의 감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 되기를 기대
해본다.
말하지 마라. 네 입은 작다.
- 이누이트 격언
08.01
시가 참 특이하고 재밌군요 ㅋㅋ
"미지수를 묶고 다니는 그녀
미간을 둥그렇게 찡그리며
눈물을 흘리면, 작고 예쁜 괄호가 생긴다" 이 표현 진짜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