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돌을 던지고
무장경찰은 최루탄을 쏘아대고
옥신각신 밀리다가 관악에서도
안암동에서도 신촌에서도 광주에서도
수백 명 학생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피묻은 작업복으로 밤늦게
술취해 돌아온 너를 보고 애비는
말 못하고 문간에 서서 눈시울만 뜨겁구나
반갑고 서럽구나
평생을 발붙이고 살아온 터전에서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애비는 입을 다물었다마는
이렇다 하게 사는 애비 친구들도
평생을 살 붙이고 살아온 늙은 네 에미까지도
이젠 이 애비의 무능한 경제를
대놓고 비웃을 줄 알고 더 이상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구나
그렇다 아들아, 실패한 애비로서
다 늙어 여기저기 공사판을 기웃대며
자식새끼들 벌어 먹이느라 눈치보는
이 땅의 가난한 백성으로서
그래도 나는 할말은 해야겠다
아들아, 행여 가난에 주눅들지 말고
미운 놈 미워할 줄 알고
부디 네 불행을 운명으로 알지 마라
네가 언제나 한몸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힘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나라임을 잊지 말아라
아직도 돌을 들고
피흘리는 내 아들아
<저문 강에 싶을 씻고 (창작과 비평사>
정희성 詩人.
우리가 그렇게도 잘 알던 정희성 시인의 이 "아버지 같은" 목소리로
우리는 지나간 70년대와 80년대를 한 폭의 그림으로 일단락 지을 수 있다.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최루탄이 신촌 한 복판에 뻗어나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던, 혹은 최루탄에 맞아 죽어야 했던 숱한 목숨들이
이 시를 읽는 순간, 거짓말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감을 느꼈다.
말하지 마라. 네 입은 작다.
- 이누이트 격언
07.31
아버지에게서 묻어나오는 지난 70년대와 80년대의 이야기가.. 그 일을 겪지도 않고, 그 날의 피흘린 사람들을 위한 날에도 고개 숙여 묵념하지 않는 저에게
왜 이리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 박히는 것인지.. 정희성 詩人의 호소력 짙은 문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을 때,
저는 아버지가 "한마디 해야겠다"는 그 훈계 어린 문장들이 계속해서 줄줄줄 훑어져 나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버지 한쪽 어깨에도 그 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상처로 남아있을 법도 한데..
가버리고 오지 않은 70-80년대를 깨끗히 씻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이제 오는 세상을 만들 우리들의 어깨에 조금 더 힘을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감상되십시요.
08.01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 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행여 가난에 주눅들지 말고
미운 놈 미워할 줄 알고
부디 네 불행을 운명으로 알지 마라
네가 언제나 한몸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힘임을 잊지 말고
그들이 네 나라임을 잊지 말아라"
감상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