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준이 아버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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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요즘 들어 배가 서서히 불러오는 채신은 생전 먹지도 않던 것을 먹고 싶다며 사 오라고 난리다. 처음엔 그럭저럭 들어줄만 했지만 이젠 솔직히 질린다.
정말 애는 애물단지다.
“향어탕 먹고 싶어.”
난 기가 막혔다. 이런 늦은 시간에 향어탕을 어디 가서 사 온단 말인가? 게다가 채신은 임신하기 전에는 생선에는 입도 대지 않는 인간이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생선같이 맛없는 것을 먹는지 모르겠다면서.
“야, 이제 좀 작작 좀 하지 그래? 내가 무슨 너한테 먹고 싶은 음식 사다주는 종이야? 게다가 넌 임신하기 전에는 생선은 입에 대지도 않았잖아?”
“그건 그 때고 지금은 아기를 가졌잖아? 아기가 먹고 싶어한단 말이야?”
“그 아기는 무슨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그렇게 고급으로 놀아? 태어나면 아주 우리집을 거덜내겠다.”
“뭐가 어째? 넌 지금 그게 아빠가 되 가지고 할 소리야?”
그 때 바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현준이었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현준이의 전화가 고마웠다.
“알았어. 나갈게.”
나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다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누구야?”
“현준이. 잠깐 나갔다 올게.”
“그 한심한 백수는 또 뭐 하러 만나러 가?”
“할 얘기가 있대.”
나는 잠바를 걸쳐 입었다.
“올 때 향어탕 사 와.”
나는 채신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
현준은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현준이 옆에 가서 앉았다.
“왔냐?”
현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주인 아주머니한테 잔을 하나 더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나한테 잔을 건네주었다. 현준은 내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무슨 일로 부른 거야?”
“그냥 서글퍼서.”
“응?”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어. 의사가 그러는데 간암 말기라 얼마 살지 못할 거래. 아버지도 어머니를 죽게 한 그 병에 똑같이 걸린 거지. 아버지는 병에 걸린 사람은 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정글의 법칙의 맹신자였는데... 그래서 어머니를 치료할 생각도 않고 내팽겨쳤는데 결국 어머니랑 똑같은 병에 걸린 거지. 어쩜 아버지는 정글의 법칙에 속았는지도 몰라. 사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죽기 마련인데 말이야.”
현준은 잔에 술을 따르더니 빠르게 비었다.
“난 정말 이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아웅다웅 다투며 사는 걸까? 결국엔 모두 죽어 없어질 텐데 말이야.”
현준이의 질문은 너무 황당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현준도 더 이상은 나한테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술만 마셨다. 얼마 못 가 현준은 쓰러졌다. 다른 때 보다 많이 마신 것 같지는 않았는데 벌써 취해서 쓰러지다니 현준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주인 아주머니한테 술값을 주고 현준이를 업은 후 포장마차를 나왔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느새 가을도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은 어김없이 그렇게 가는 것이다. 나는 방금 전 현준이가 했던 질문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낼 수가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잊고 살기 때문이었다. 현준이의 말대로 분명한 것은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간다는 것은 우리한테 주어진 삶의 시간 중에서 24시간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죽음이 하루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산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내가 천년만년 살 거처럼 착각하며 살았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정말 나란 사람은? 아니 인간이란 동물은?
나는 도로변으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현준이와 같이 택시에 올라탄 후 운전기사한테 말했다.
“신림역으로 가 주세요.”
택시가 출발했다.
“이젠 달타냥한테 선물을 줄 때가 된 거 같아.”
현준이가 말했다.
나는 현준이가 깨어난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잠꼬대였다. 술에 취해 잠꼬대를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택시는 한산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30분 후에 우린 현준이의 집에 도착했다. 나는 현준이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조금 후 다리를 심하게 저는 게 흠이지만 언제 보아도 정말 아름다운 현준이 누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술을 좀 많이 마셨어요.”
“고마워요.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세요.”
“아니에요. 너무 늦어서요.”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깊은 밤이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이 세상 무엇보다도 별을 사랑하던 삼촌 때문에 별에 미쳤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삼촌이 자살한 후론 더 이상 별을 쳐다보지 않았다. 삼촌이 자살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관심도 없는 수학 선생 따윈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잊고 산 것 뿐만이 아니라 잃어버리고 살았다. 나만의 별을.
별은 어디로 흘러가서 지금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들의 별은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세상은 이제 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오염이 되었다. 왠지 씁쓸한 웃음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