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결혼 승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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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과를 끝내고 학교 건물을 나왔다. 학교 정문 앞에는 채신이 차를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어머니한테 결혼승낙을 받으러 가는데에 실례되는 복장을 하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차를 가져온 것이 못마땅했다. 채신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느니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이 훨씬 우리집에 빨리 도착할 것이 뻔했다. 채신은 면허증은 있으나 운전실력은 꽝인 여자였다. 나는 어떻게 채신같은 여자가 면허를 딸 수 있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채신같은 여자한테 면허를 주면서 왜 고등학생한테 면허를 주지 않는지는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언젠가 면허증이 없이 운전을 하다가 경찰한테 걸린 고등학생을 봤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그 때 그 학생이 면허증이 있는 채신이 보다 훨씬 운전을 잘 했다.
“차는 왜 가져왔어?”
“왜 가져오긴? 차를 타고 가야 빨리 가니까 가져왔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채신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분명히 말하지만 채신이 운전을 하는 차를 타고 가느니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게 빠르다. 게다가 우리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앞 길은 무지 복잡한데다 다 일방통행이다. 운전을 잘 하는 인간도 한 번 잘 못 들어가면 헤멜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왜 그래?”
“아냐. 목이 좀 뻐근해서. 가자고. 우리 부모님한테 인사드려야지.”
나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채신이 악셀레이터를 밟자 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럭저럭 우리 집 앞 골목까지 온 채신은 헤메기 시작했다. 나는 더 정확하게는 길을 설명해 줄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우리집으로 가는 길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채신은 마치 청개구리나 된 것처럼 내가 말하는 반대로만 차를 몰았다.
“좌회전이라고 했잖아? 오른쪽으로 차를 돌리면 어떡해?”
“시끄러. 그렇게 잘 알면 니가 운전하면 될 거 아냐.”
“난 운전 못하는 거 알잖아?”
“그럼 입 다물고 있기나 해.”
채신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나는 착한 남자다. 채신은 여전히 헤멨다. 도저히 나아질 가망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돈 길을 돌고 또 돌고 있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갔다면 이미 우리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꾹꾹 참고 있던 내가 참다 못해 한 마디 했다.
“여기 가까운데 주차장 있으니까 차 거기 세워두고 걸어서 가자. 차라리 그게 빠를 것 같아.”
“너 바보지? 걸어가는 것보단 차가 훨씬 빠르다고.”
“니 차를 타고 가는 것 보단 걸어가는 게 훨씬 빠를 것 같아.”
“지금 말 다 했어?”
채신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어디 그럼 니가 한 번 운전해 보지 그래? 운전하는 게 뭐 그리 쉬운 줄 알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난 운전 못한다고. 면허증이 없다니까.”
“그럼 입다물고 조용히 있기나 해. 너하고의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기 전에.”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 하면 이 결혼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여기서 우리 정말 결혼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하고 말하면 서른셋의 노처녀인 채신이 너무 초라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를 닮아 착한 남자라서 노처녀를 구제해야 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역시 나는 너무나도 마음이 따스한 인간이다. 헤메고 또 헤멘 끝에 채신은 우리집 앞에 도착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다시 한 번 우리 집에 차를 타고 온다고 해도 채신은 또 오늘처럼 영락없이 헤멜 것이다. 채신은 지도를 볼 줄 모르고 한 번 갔던 길도 어떻게 찾아가야 할 지를 모르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왔으면 훨씬 빨리 왔겠다.”
나는 내리면서 한마디 했다.
“시끄러. 그래도 걸어온 것 보다는 빨리 왔잖아?”
나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채신이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래, 그래도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것보다는 빨리 왔으니까.’ 하고 나는 위안을 삼았다. 역시 나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도 착한 남자다. 우린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면서 이상했던 건 채신이 우리 부모님이 살고 있는 초라한 집을 비웃을줄 알았는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어머니와 새 아버지한테 채신을 소개시켜 주었다. 아버지하고 닮은 점이라고는 능력없는 남자라는 것 밖에 없는 새 아버지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어머니는 채신이를 못 마땅해 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 또한 나이가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탐탁치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하는 일이 뭐야?”
“영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쳐요.”
채신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영어를 가르친다고?”
“예.”
“천한 일을 하고 있군. 위 아래도 모르는 양키들의 말이나 가르치다니?”
나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하고 어머니를 보았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천한 일이라고 하다니? 그러나 곧 나는 쾌재를 불렀다. 채신은 다른 일은 다 참아도 영어를 모욕하는 일은 절대 참지 않는다. 이제 어머니와 채신이의 한판 싸움이 크게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 채신은 나한테 너하고는 절대 결혼을 못하겠다며 집을 박차고 나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일어날 일을 기다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이게 웬 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른 사람이 영어를 모욕하는 일은 절대 못 참는 채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이 아가씨가 우리 정찬의 배필로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새 아버지한테 물었다.
“당신 생각은 어떤데?”
“지금 당신 생각을 물었잖아요?”
“난 당신이 좋다고 하면 좋고 당신이 싫다면 싫어.”
새 아버지는 매사가 그런 식이다. 도대체가 자기 생각이라는 걸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자기 생각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 아버지는 그처럼 바보같은 사람이었다.
“도대체 당신은 생각이 있기나 한 거에요?”
어머니는 화를 냈다.
“어쨌든 난 당신 결정에 따를게. 당신을 사랑하니까.”
어머니는 사랑한다는 그 말 한 마디에 화를 풀었다.
“그게 당신 뜻이라면... 뭐, 내가 결정하죠,”
어머니는 여전히 채신을 탐탁치 않아 했지만 그래도 나와 채신의 결혼을 승낙해 주었다. 나는 부모님하고 채신과 함께 밥을 먹은 후 채신이를 데리고 나와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하늘엔 진한 보랏빛을 띠는 붉은 노을이 쫙 갈려 있었다. 그 노을을 보자 어쩐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비행접시를 찾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저기 비행접시 보이지 않니?”
“뭐야? 지금 또 나 속이려고 거짓말 하는 거야? 다 그 못된 현준이란 인간한테 배운 수법이지?”
채신이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채신은 현준이란 인간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현준이의 거짓말에 번번이 속았기 때문이었다. 다음에는 안 속는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멍청한 채신은 영락없이 또 속았다.
“그런게 아니라 난 그냥 비행접시가 영어로 뭔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나는 채신과 3년을 사귀면서 채신이의 화를 푸는 비법을 터득해 알고 있었다. 채신의 화를 푸는데는 영어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된다.
“그게 알고 싶었던 거야?”
채신은 얼굴을 펴며 말했다.
“비행접시는 flying saucer야.”
나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영어 있으면 언제라도 물어 봐. 내가 자세하게 가르쳐 줄 테니까.”
“응.”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근데 왜 아까 우리 어머니가 니가 천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가만 있었던 거야? 나는 니가 우리 어머니랑 크게 싸울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이 그래? 넌 마치 내가 니 어머니랑 싸웠으면 하고 바랬던 것 같애.”
“아...아냐.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와서 그럴 리가 있어?”
나는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황하며 말했다.
“니 어머니는 못 배웠다고 했잖아? 그러니 내가 이해해야지. 설마 너도 내가 천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물론. 사실 난 니가 괜찮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된 거야. 중요한 건 니 어머니가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니가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니까.”
나는 채신한테 이런 구석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채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 정말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와 채신은 뒷동산에서 내려왔다. 채신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머니한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채신이 차를 세워 둔 문앞까지는 같이 걸어나갔다. 채신이가 차에 올라탔다.
“신혼여행은 영국으로 가는 거지?”
“물론. 이래봬도 나도 남자야. 약속한 건 지켜.”
채신이 웃으며 시동을 걸었다. 내 동생의 웃음을 닮은 바보같은 웃음이었다. 채신을 떠나보고내고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못 마땅한 목소리로 내뱉았다.
“여자나이가 서른 셋이 뭐냐? 너보다도 나이가 많잖아?”
“어머니가 제가 빨리 결혼하기를 바라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저런 여자를 데려 와?”
“그럼 내일이라도 만나서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할까요?”
“됐어. 기왕 이렇게 된 거 하는 수 없지. 너도 벌써 서른 하나니 결혼을 해야지. 그렇다고 저련 여잘... 정말 자식을 헛키웠다니까.”
어머니는 신세한탄을 하듯 푸념했다.
“그래도 당신한텐 내가 있짆아. 난 정말 당신을 사랑한다고.”
새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래요. 나한텐 정말 당신밖에 없어요.”
어머니는 새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이런 말 하면 정말 불효지만 정말 꼴불견이었다. 나는 그 집에 더 있고 싶지 않아 부모님한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