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루 앞두고
결혼식을 하루 앞둔 밤이었다. 기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아니라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채신이와의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좋은 시절이 내일로 막을 내린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착잡했다. 나는 창문가로 가서 창밖을 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전봇대에 매달린 전등에는 날파리떼들이 날고 있었다. 켜논 TV에선 이라크에 가 있는 우리나라 파병부대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었다. 부시가 종전을 선언한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미국은 전쟁 초기에 예상외로 강한 이라크의 저항과 세계의 반전 여론 때문에 뜻대로 일을 풀어나가지 못했지만 슈퍼파워 미국은 결국 한달만에 전쟁을 승리로 끝냈고 지금은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다. 양국의 국력을 비교하면 당연한 결과다. 미국과 이라크는 군사력, 경제력, 정치력등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라크가 미국보다 나은 것이라곤 미국이 발견되기 1000년 전에 법을 만들었다는 것뿐이다. 그래서인지 법에 대해 잘 모르는 미국은 전쟁이 끝났는데도 법을 배우기 위해 지금 이라크에 머무르고 있는가 보다.
남들은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를 노리고 이라크를 침략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지켜준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미국이 남의 나라 석유를 노리고 침략했을 리가 없다. 미국은 분명히 자기네 나라가 생기기 1000년 전부터 있었던 이라크의 법을 배우려 들어간 것임이 틀림없다. 남의 나라에 법을 배우려 가는데 왜 헬기와 탱크를 가지고 간 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건 그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 대해 자세히 몰라 그 사정을 여러분한테 얘기해 줄 수 없는 것이 유감일 뿐이다.
현관문을 열고 현준이가 들어왔다. 그는 소주와 안주거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기분이 어때? 내일 결혼하는데.”
“그저 그래.”
“우리 술이나 한 잔 하자.”
나는 현준이의 제안에 응했다. 우린 현준이가 사온 오징어를 안주로 술을 마셨다. 현준은 술을 몇 잔 마시더니 물었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기로 했냐?”
“영국.”
“영국? 특이한 선택이군.”
“채신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나라래서 말이야. 영국이 영어의 본고장이잖아.”
“그런 거였군. 근데 영국 갈려면 비행기 타고 가야 할텐데. 채신씨가 걱정이다.”
“무슨 말이야?”
“채신씨 성형수술 여러 번 했다며? 성형수술을 여러번 한 사람들은 비행기를 못 탄다고. 기압차 때문에 얼굴이 찢어지거든.”
현준은 제법 심각해 하며 말했다.
“정말이야?”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 일이었다.
“거짓말이야.”
현준은 통쾌하게 웃었다.
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현준이를 쳐다보았다.
“넌 남한테 거짓말 하는 게 그렇게 재밌냐?”
“내 꿈이 소설가잖아. 소설가는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야.”
“소설가는 너처럼 한심한 거짓말은 안 해. 그들이 하는 거짓말은 적어도 진실을 담고 있다고. 어떤 작가가 한 말처럼 이 세상엔 거짓말로 밖에 말할 수 없는 진실이 있는 거니까.”
“그런 엉터리 말이 어딨냐? 거짓말이 진실을 담고 있다니? 거짓말은 거짓말인 거야. 근데 멍청한 작가들이 거짓말을 거짓말이 아니다고 하니까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는 거라고. 예를 들어 좀더 쉽게 말하지. 이건 술잔이야.-현준은 술잔을 들었다.- 물론 니가 보는 술잔과 내가 보는 술잔은 다르지. 시점에 차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건 술잔이야. 근데 어떤 작자는 내가 보는 곳에서는 그게 술잔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나뭇잎으로 보인다는 말도 안 된다는 얘기를 하지.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지? 굳이 알려고 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거짓말이니까.”
그는 술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취하는 것 같군. 그만 들어가서 자야겠어. 근데 말야, 어떤 각도에서 보면 술잔이 나뭇잎으로 보일까? 어쨌든 말야 사람들이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거기에 무슨 진실이 담겨 있어서가 아니야. 거짓말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라고. 세상에 거짓말처럼 재미있는 건 없거든.”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미친 놈.’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상을 치우고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결혼이라니? 결혼이 현실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