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국에서
나는 학교로 출근을 했다. 선생들은 신혼인 나를 축하해 주었고 특히 남선생들은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 선생은 화학선생인 노총각 손 선생이었다. 손 선생은 나를 보자마자 부러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허 선생님은 장말 좋으시겠어요. 집안도 좋은 데다 외모까지 아름다운 여자랑 결혼을 했으니. 장인어른이 집도 사 줬다면서요.”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장인어른은 나하고 채신이 앞으로 살 집을 사 주면서 내 딸 눈에서 눈물 나오게 하면 니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해 줄 거라고 스무번 이상을 말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들어줄만 했는데 나중에는 정말 나를 바보로 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얘긴 한 번만 해도 충분히 알아듣는 얘긴데 말이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돈 많은 집의 아름다운 여자랑 결혼할 수 있는 거에요?”
“정말 알고 싶어요?”
나는 약간은 비아냥 거리는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손 선생은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당연하죠. 그런 여자랑 결혼하면 정말 원이 없겠어요.”
나는 손 선생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 선생은 드러나 보이는 사람들의 외면에만 관심이 있을 뿐 사람의 내면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갑자기 나는 나나 손 선생같은 사람한테 배우고 있는 이 학교 여학생들이 불쌍해졌다. 어쩜 그래서 은혜 같은 아이가 현준이랑 사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은혜는 참 괜찮은 아이다. 수학만 성적이 30점을 밑돌아서 그렇지 나머지 과목들은 항상 80점을 넘길 정도로 잘 하며 지금까지 결석은커녕 지각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성실한 아이다. 게다가 은혜는 자신의 꿈도 분명한 아이였다. 나는 2학년 담임을 맡고 학기초에 아이들과 상담을 했는데 아이들은 대부분 꿈이 없었고 꿈이 있는 아이들도 자신의 꿈이 아닌 아이가 태반이었다. 전교 5등안에 드는 반장은 커서 판사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왜 판사가 되려고 하냐고 묻자 ‘부모님이 저 보고 판사가 되라고 하세요. 그래야 성공하는 거라고. 그리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은혜는 달랐다. 은혜는 라디오 영화음악 DJ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전 매일 새벽 1시에 영화음악 프로 들어요. 어제는 조일수 DJ가 차분한 목소리로 굿모닝 베트남 줄거리를 얘기해 줬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선생님,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 DJ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모르는데.”
나는 그 때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영화음악에 대해서는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고 더군다나 라디오에 대해서는 정말 까막눈이었다. 은혜는 나의 솔직한 대답에 기막혀 하며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와 은혜의 면담은 끝났다. 그러고 보니 확실하진 않지만 은혜가 현준이하고 사귀기 시작한 게 그 때쯤인 것 같다.
“저기 허 선생님 그런 여자랑 결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손 선생은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나는 그제서야 은혜 생각에서 깨어나며 대답했다.
“아, 그거요. 아주 쉬워요. 영어로 프로포즈만 할 줄 알면 되요.”
“예?”
“그러니까 제 아내처럼 돈 많은 집의 이쁜 여자랑 결혼하려면요. 프로포즈 할 때 I love you. Would you marry me? 라고 말하면 되요. 혹여 실수할 것 같아서 말씀 드리는 건데요. 절대로 Would yo marry with me? 라고 말하면 안 되요. 그건 콩글리쉬라서 자격 미달이거든요.”
“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 거에요? 누가 허 선생님한테 그런 농담이나 듣고 싶다고 했어요?”
“농담이라뇨? 이건 진담이라고요. 내가 정말 Would marry with me? 라고 말만 했었어도 그런 멍청한 여자랑 결혼하는 이 따위 처지는 안 됐을 거라고요.”
손 선생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정말 허 선생님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손 선생님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르겠어요.”
“뭐라고요?”
손 선생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한테 달려들 기세를 취했다. 그 때 나를 살려주는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저기 우리 싸우더라도 전화는 받고 나서 싸웁시다.”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당신같은 사람하고 싸워봤자 나만 바보되는 거지. 그만 둡시다.”
손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수업을 하기 위해 교무실을 나갔다.
“넌 대체 어떻게 된 인간이 그 모양이냐? 돌아왔으면 연락이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냐? 날 친구로 생각하긴 하는 거냐?”
"바빴어. 부모님도 뵈어야 했고 장인 장모님도 뵈어야 했거든. 정말 피곤했어.“
“아무리 바빠도 전화 한 통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냐?”
“난 전화가 싫어. 내 꿈은 말야 전화 없는 세상에서 사는 거라고. 그런데 이젠 위치추적까지 되잖아? 세상은 정말 나의 꿈과는 너무나도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니까.”
“또 병이 도졌군. 난 말야 현준이 그 녀석은 도통 이해가 안 가지만 너도 정말 이해가 안 돼. 너는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남들이 다 하는 운전도 배우기 싫다고 하지. 이젠 모두한테 필수품이 되어 버린 핸드폰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정말 이해가 안 돼.”
“굳이 너의 이해를 구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만 끊자. 나 수업 들어가야 하니까.”
“이따 저녁 7시에 만나자.”
“왜?”
“왜라니?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으니 축하를 해 줘야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를 축하해 주는 건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고. 현준이도 나올 거야.”
“알았어.”
나는 전화를 끊고 수업을 하기 위해 1학년 5반 교실로 걸어갔다. 수업 시간은 이미 10분이나 지난 뒤였다.
저녁에 나는 남들이가 다니는 담배회사 근처에 있는 호프집에서 남들이와 현준이를 만났다. 우리 셋은 빈 자리에 가서 앉은 후 맥주 500cc 세 잔과 마른 안주를 주문했다.
“축하해. 이젠 이 인간밖에 안 남았군. 이 인간이 결혼할 수 있을지는 좀 의심스럽지만.”
남들이는 현준이를 가리켰다.
“난 결혼 같은 거 안 할 거야. 결혼은 미친 짓이니까.”
“언젠 그래도 달타냥이라면 결혼하겠다며?”
내가 말했다.
“이젠 생각이 바뀌었어.”
“어떻게 된 일이냐? 달타냥에 대한 니 사랑이 식다니 말야.”
“사랑이 식은 건 아냐. 단지 생각이 바뀌었을 뿐이야.”
“또 무슨 헛소리야?”
내가 물었다.
“헛소리라니? 난 태어나서 지금껏 헛소리를 한 적이 없어. 난 예나 지금이나 달타령을 사랑해. 단지 예전에는 달타령하고 결혼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결혼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래서 달타령을 위해 다른 일을 해 줄까 하고 생각중이야.”
“그게 뭔데? 깔대기 이론2라도 만들어서 달타냥한테 선물로 줄 생각이냐?”
나는 비아냥 거리며 물었다.
“넌 그래서 내가 멍청하다고 하는 거야. 깔대기 이론은 실패작이야. 달타령이 미흡하다고 했잖아? 그런 실패작인데 내가 2를 만들 리가 없잖아?”
나는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럼 뭘 해 줄 생각인데?”
남들이가 물었다.
“이 바보야, 지금 생각중이라고 했잖아?”
남들이는 어이없는 얼굴로 현준이를 보다가 나한테 고개를 돌렸다.
“영국에선 어땠어? 물론 재밌었겠지.”
“재미는? 아주 지독했어.”
“지독하다니?”
“세상에 무슨 놈의 그 따위 나라가 다 있냐?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 햇빛 한 번을 볼 수가 없었다니까. 나중에는 정말 미쳐 버리는 줄 알았어. 아마 하루만 더 있었어도 정말 미쳐 버렸을 거야.”
“하긴 사람은 해를 보고 살아야 하지. 어쨌든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그리고 고마워.”
현준이가 말했다.
“뭐가?”
내가 물었다. 현준이한테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니가 채신씨 하고 결혼해서 나가는 바람에 내가 누나랑 같이 살게 됐거든.”
“니 누나 보고 그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어?”
“응. 혼자 살기엔 큰 집이잖아?”
“하지만 그 집에서 니 누나가 다니는 공장까진 꽤 멀잖아? 더군다나 니 누나는 다리도 불편한데.”
“그래서 500원 주고 차를 한 대 샀지. 내가 출퇴근 시간에 매일 모셔다 드려.”
“지금 또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세상에 어떤 멍청이가 차를 500원에 파냐?”
“니 옆에 앉아있는 사람.”
나는 남들이를 보았다.
“정말 니가 500원 받고 차를 판 거야?”
“응. 좀 오래된 차라서 새 차를 구입하는 바람에 저 인간한테 500원에 팔았지. 폐차하는데도 몇 만원 들거든. 사실 처음에는 그냥 줄려고 했는데 남들이 공짜로 차를 남한테 주면 재수가 없다 하더라고. 그래서 500원 받았어.”
“또 그 남들이 사상이야?”
나는 비아냥 거렸다.
“남들이 사상은 알고 보면 꽤 괜찮은 사상이야.”
현준이가 말했다.
“웬 일이냐? 니가. 예전에는 남들이 사상은 한심해도 보통 한심한 사상이 아니라고 하더니,”
“500원에 차를 샀잖아? 차가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잘 굴러간다고. 500원에 그런 차를 산다는 건 남들이 사상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야.”
“어차피 그냥 주려고 하던 차 였다며? 그 남들이 사상이 아니면 공짜로 얻을 수 있었던 거
아냐?“
“넌 날 너무 염치도 없는 인간으로 알아? 아무리 안 쓰는 차라고 해도 그렇지 멀쩡한 찬데 어떻게 돈 한 푼 안 주고 받을 수가 있냐?”
“그래서 준다는 게 고작 500원 줬냐?”
“500원은 돈이 아니냐? 그리고 내가 500원을 준다고 한 게 아니라 남들이가 500원을 달라고 한 거라고. 넌 물건 주인이 물건 값이 500원이라는데 1000원 내냐? 난 시장 경제의 원리에 입각해서 물건 주인이 제시한 500원이라는 값을 낸 거 뿐이야.”
나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정말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맥주를 마셨다.
“아무튼 말야. 너같이 멍청한 선생한테 배우는 은혜가 참 불쌍해. 도대체가 너같은 선생한테 뭘 배우라는 건지.”
“그 얘긴 갑자기 왜 꺼내?”
“아직도 은혜량 사귀고 있냐?”
남들이가 물었다.
“물론.”
“넌 정말 이해가 안 돼. 이제 그만 가지고 놀 때도 되지 않았냐?”
“가지고 놀다니? 은혜가 무슨 장난감이냐? 가지고 놀 게. 난 단지 방황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뿐이야. 은혜가 왜 나를 만나는지 알아?”
“너의 감언이설에 넘어갔겠지. 그래서 너랑 같이 모텔도 가고 그러는 거 아냐?”
“틀렸어. 은혜가 나를 만나는 진짜 이유는 내가 은혜가 하는 영화음악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여주기 때문이야. 그 아이의 꿈은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 DJ가 되는 건데 어른들은 아무도 자신의 영화음악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군. 그러면서 담임 선생님은 더 가관이라던데. 학기초에 면담을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도대체가 라디오 DJ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아는지도 의심스럽다면서.”
나는 현준이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달타냥이 생각났다. 달타냥이라면 결단코 나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타냥은 정말로 선생이 되고 싶어했다.
“난 그만 가 볼게. 누나가 일 나갈 시간이 다 됐거든. 차 태워 줘야 해.”
“일이라니? 지금 이 시간에?”
“이번 주엔 누나가 야간조라서.”
“그럼 같이 일어나자.”
남들이가 말했다.
우리 삼총사는 술값을 계산하고 호프집을 나왔다. 어둔 밤이었지만 거리에 오색찬연한 네온싸인들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어서 도무지 밤같아 보이질 않았다. 그 환한 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엔 청소년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이런 곳으로 몰려드는 건 다 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선생을 하고 있는지 하는 회의가 강하게 밀려왔다. 선생은 정말 달타냥 같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인데...
“달타냥은 언제 이라크로 떠난 거야?”
나는 현준이한테 물었다.
“니가 신혼여행 떠나고 이틀 지난 뒤에. 그나저나 달타령도 걱정이야.”
“뭐가?”
“달타령은 이 땅에선 교육자가 설 곳이 없다고 말하고 떠났잖아? 근데 중국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하더라고. 어쩜 이라크도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몰라. 난 그만 갈게.”
현준은 차에 올라탄 후 떠났다. 나와 남들이는 지하철역까지 같이 걸어간 후 가는 방향이 달라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