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시나요?
오랜만에 만난 달타냥과 헤어진 후 나와 현준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 전철역을 나와 어둔 밤거리를 걸으며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우리를 잡고 말을 걸었다.
“도를 아시나요?”
나는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어서 또 재수없는 사람이 나타났군 하고 생각했는데 현준이가 입을 열었다.
“그럼요. 아주 잘 알죠. 도는 뭐니뭐니해도 빽도가 최고에요. 판을 한 번에 뒤집을 수가 있거든요. 빽도없는 윷놀이는 한마디로 앙꼬없는 진빵이라고 할 수 있죠.”
나는 미친놈을 쳐다보듯 현준이를 봤고, 남자는 나보다 더 미친놈을 보듯 현준이를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났다. 현준과 나는 지하철역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도중엔 빽도가 최고라니까.”
“너 지금 제정신이냐?”
물어보고 나서 나는 내가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현준은 한 번도 제정신인 것처럼 보인 적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난 대학교 1학년 때 저런 사람들이 사람들 끌고 가는데도 가 봤어. 축농증 걸린 여자가 나한테 와서는 도에 관심이 있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그 여자를 한 번 따라가 봤지. 축농증과 도와의 상관관계를 조사하려고 말야. 근데 내가 1년이란 기간동안 연구를 해서 알아낸 것은 축농증과 도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거였어.”
현준이가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거짓말인 것 같지가 않았다. 현준이는 능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이 미친 놈아, 그런 한심한 것을 왜 조사해?”
“한심한 거라니?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과가 나와서 그렇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으면 연구 성과가 있었을 거라고. 이 세상에 쓸데없는 걸 연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못 믿겠다면 인간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연구나 하며 사는지 집에 가서 당장 보여주지.”
현준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한테 잡지를 하나 꺼내 주었다. 그 잡지에는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정말 날씬해질까 하는 궁금중을 풀기 위해 일본 여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나와 있었는데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종아리는 날씬해지지만 허리가 굵어져 체중에는 변화가 없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었다. 또 미국의 어떤 기관에서 연구한 결과 오럴섹스의 만족도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높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었다.
“이제 인간들이 얼마나 한심한 거나 연구하면서 살고 있는지 알겠지? 축농증과 도와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과가 나와서 그런 거지 상관관계가 있었다면 내 연구도 연구성과는 있었을 거라고.”
현준이의 말에 또 홀렸다. 인간들이란 정말 쓸데없는 연구나 하고 산다. 그러고 보니 언제인가 나도 쓸데없는 연구에 대한 결과가 실린 것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 연구는 인간은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를 연구한 것이었는데 결론은 인간은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 연구자가 그런 결론을 내린 이유는 연구결과 인간은 하루에 두 끼만 먹어도 생활에 필요한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되는데 하루에 쓸데없이 세 끼를 먹으니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게 맞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었다. 그 연구자의 말이 맞던 틀리던 나는 관심없지만 어쨌든 먹기 위해 사는 그 연구자도 하루에 세끼를 먹고 나서도 더럽게 할 일 없었나 보다. 그런 거나 연구하게. 하긴 할 일 없는 사람이 어디 그 연구자뿐이겠는가? 나랑 같이 사는 현준이만 해도 할 일이 없어 축농증과 도와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말도 안 되는 깔대기 이론을 써 대고 있지 않은가? 그는 하루에 네끼를 먹는대도 그런다. 언젠가 나는 하루에 네 끼를 먹는 현준이한테 ‘대체 왜 그렇게 먹기만 하냐? 뱃속에 거지가 들어 앉았냐? 하고 핀잔을 주었는데, 그는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거야.’ 하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그가 내가 읽은 그 연구 결과를 읽어본 적이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한 이후로 줄곧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거라는 주장을 해 오고 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달력을 보니 채신이와의 결혼이 어느 덧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제 나의 좋은 시절도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갑자기 인간은 왜 자는가? 라를 연구한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떠올랐다. 대학을 다닐 때 교양과목으로 심리학을 들었는데 심리학자들은 인간은 왜 자는가?를 연구했었다. 초기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잠을 자는 것은 피곤해서이며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연구결과를 발표했었다. 그러나 그 후에 나온 심리학자가 인간은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으며 죽지 않는다는 반론을 폈다. 실험결과 몇 개월을 자지 않은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무리없이 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 연구자는 인간이 자는 이유는 습관때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어제 잤으니 오늘도 자는 거라는 거였다. 그 내용을 배울 때 나는 심리학자들이 왜 그렇게 한심한 연구를 하면서 논쟁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심리학자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심리학자들만 쓸데없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갑자기 이 세상에서 정말 가치있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현준이의 깔대기 이론이 미개척 분야인 연애학의 새지평을 열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간에 나는 자야겠다. 인간이 잠을 자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자든 습관 때문에 자든 나는 졸립다. 적어도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졸리면 자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