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황량한 남모 글집에도 난감한 제목을 스카프처럼 두른 광고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대략 기억해보면 무슨 묻지마 만남에서부터 오빠 나 지금 어떻네 같은, 제목만 봐도 심란하고 끈적끈적한 컨텐츠로의 초대가 대부분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니 자기가 오빠를 연발하며 지금 뜨겁든 한가하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말초적 자극을 모색했다면 얼마나 유치한 도발인가. 차라리 마님은 왜 돌쇠에게 쌀밥을 먹였나, 라고 해학적으로나 물어 볼 일이지. 물론 그러한 초대에 기꺼이 응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죄다 죽어 마땅한 병폐적 욕망이라고 단정짓기란 곤란하지만 문제는 이 야릇한 초대가 무분별한 스팸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상대의 심중이나 의향이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례한 '찔러나 보기' 라는 데 있다. 아마도 수월하게 글을 올릴 수 있는 계정 주소를 동류끼리 공유하기 때문이겠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마뜩지 않은 글을 지우며 슬그머니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태초의 성에 대한 천박한 오해를 풀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을 굳어져 뒤틀려 버린 미망의 화석 같은 것이 된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다.
예전엔 추억의 선데이 서울만 가지고도 얼굴이 화끈거려 이불장 가장 깊은 곳에 숨겨 두어야 했던 일이 이제는 이메일로 핸드폰으로 낯이 뜨겁다. 오늘은 다시 누군가가 밑도 끝도 없이 자신있는 오빠라면 만나 달라고 한다. 여기에서의 자신은 당연히 돌쇠의 장작 패는 힘 이상을 발휘하는 절륜하고도 다부진 정력을 말하는 것이리라. 몸의 쾌락이 전부이자 무상한 즐거움인 이들에게 사랑의 순정함이란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들은 과연 몸을 나눈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마음과 마음이 먼저 교감을 하고, 이제 그 마음이 몸을 여는, 사랑이 몸을 나누는 정결한 의식을 짐작도 못하리라. 이제 그렇다면 모든 지순한 사랑을 아는 듯이 썰을 풀고 있는 내게 저 '자신 있는 오빠'를 가져오면 어떨까. 허리하학은 둘째치고라도 심장의 일에 대해, 마음이 마음을 찾아 위무하고 보듬어 주는 일에 자신이 있는가. 자신있으면 만나자는데 나는, 자신이 없어서 오늘도 전화기만 만지작거린다. 힘센 오빠를 애타게 기다리는 동생도 그렇고 뱃살만 두둑한 나도 그렇다. 정작 중요한 것은 보지 못했다. 너무 늦게 알아차린, 너무 멀리 지나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서툰 사랑은 이제 죽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