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섬은 둘이 아니었다.
무수한 섬과 섬이 바다에는 가득했다.
이 섬의 연기는 비단 저 섬만을 위해서 피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저 섬의 깃발은 오로지 이 섬만을 위해서 날리는 것이 아니었다.
바다는 이 섬과 저 섬으로 채워지기에는 너무 넓었다.
바다는 공간으로서는 우주를 담고, 생명을 담고 있으며, 시간으로서는 과거와 미래를 순간과 영원을 아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는 섬들에게 개입하지도 않았고, 빼지도 않았다. 언제나 바다인채로 그대로였다.
그러나 언제가 한 번의 마름으로 이 섬과 저 섬의 서로 그리워함을 완성키 위해 바다는 스스로 물길을 돌리고, 제 바닥을 드러냈다. 바다는 알고 있었다. 그러함으로써 섬과 섬은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어쩌면 더 이상 바다를 가득 채웠던 그리움과 기다림의 푸르름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러나 섬의 생명이 계속되는 한 한 번은 바다 자신을 알 것이기에 미리 앞당기기로 했다. 혹 미약한 가능성이지만, 섬과 섬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완성을 이룰 수도 있기에...
성공이었다.
섬과 섬은 이제 서로가 다다를 수 없는 수평선의 한 점과 한 점인 것을 알았고, 수평선은 점과 점의 무수한 연결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워하고, 기다려도 결코 가까이할 수 없음을, 그래도 그리워하고 기다려야함은 섬의 슬프고 아린 숙명이라기보다는 섬 자신의 있음의 이유라는 것을....
그렇게 섬과 섬, 바다와 섬의 풍경은 무참한 시간을 흘려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