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변함없이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 왕자님에게 살며시 다가간 소녀가 물었습니다.
"왕자님, 저를 봐주세요. 제가 누군지 한번만 봐 주시겠어요?"
왕자님은 느닷없는 소녀의 질문에 껄걸 웃으며 말했습니다.
"소녀여, 갑자기 왜 그런 소릴 하느냐? 넌 이 궁성에서 거위를 치는 아이가 아니더냐."
소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제가 누군지 다시 한번만 자세히 봐 주십시오.. 저의 존재를 모르시겠습니까?"
왕자는 심각하게 다시 한번 소녀의 얼굴을 주시했어요...
그런 왕자님의 모습을 소녀는 고요히 바라보았구요.
그런데 갑자기 왕자님의 얼굴이 어둡게 흐려졌대요..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왕자님이 말했지요.
"소녀여, 어디가 아픈 게냐? 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구나."
소녀는 애처로이 눈물이 그렁한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아니요..왕자님."
"또 눈이 시리도록 아픈 게냐?"
소녀는 고개를 떨구며 손으로 살짝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리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앙다물었답니다.
"아니요..아니요..왕자님."
왕자님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소녀의 모습을 살펴보고는 말했대요.
"왜 그 동안 몰라 봤을꼬.. 많이 야위었구나. 너 정말 어디가 아픈 게 아니냐?"
"오! 착하신 왕자님.. 아프다니요.. 아닙니다. 왕자님이 잘 못 보셨어요."
소녀는 그만 와락 눈물을 보이고 말았대요.
'결국 왕자님은 절 못 알아보시네요...'
엉엉 소리내어 하염없이 울었대요. 왕자님은 소녀의 등을 토닥여 주며 울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지요.. 왕자님은 생각했답니다.
소녀는 몸이 많이 아픈가 보다고... 아마도, 어쩌면 눈이 너무 시려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소녀는 따뜻하고 상냥하기 만한 왕자님의 마음을 위해서라도, 눈물을 멈추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왕자님은 이런 눈물을 모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흘리는 이러한 눈물을 영원히 모르셨으면 좋겠어요...왕자님.'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괴로움을 왕자님만은 모르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렇게 소녀는 왕자님의 안위만을 생각했습니다
소녀는 영영 왕자의 마음속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없음을 알게 되었어요.
자신을 위한 빈자리는 이제 없어져 버렸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요..
신비의 여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막연하나마 '왕자님의 마음을 열고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이젠 그 바램마저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소녀는 왕자가 아직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답니다.
자신에게 빛의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게 해준 왕자님을 찾아, 12개의 산과 12개의 바다를 건너 왔건만....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몰라주는 왕자님의 모습에...소녀는 슬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