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관한 시 모음> 오정방의 '무더위도 감사해' 외 + 무더위도 감사해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된다 그래도 감사, 감사한 것은 이 정도면 견딜만하다는 것이다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가 이쯤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태양이 이보다 훨씬 가까워지면 무더위를 견디다 못하여 살아남을 자 그 누가 있으리 태양이 지구에서 너무 멀리 있어도 견디기 어려운 저온으로 인하여 그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하리니 천지를 짓고 섭리하시는 창조주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런 것까지도 다 헤아리셨구나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무더위 등에 불이 붙는가 하면 머리 위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 아스팔트는 펄펄 끓는가 했더니 어느새 엿가락 늘어지듯 허물거린다 이에 뒤질세라 오징어 굽는 고소함이 콧속의 열판을 진동시키고 달걀이 후라이가 될 것 같은 고통이 호흡을 감당 못하게 가로막는다. (전병철·시인, 1958-) + 복더위 어지간하다 한 점 바람도 없는 이 적막 속을 코 하나 달랑 밀어내 놓고 복날을 넘기는데 매미 울음이 하늘 끝을 돌아나가면서 더위를 감아올렸다가 풀어놓았다가 하긴 하는데 복더위는 복더위다. (박주일·시인, 경북 경주 출생) + 초복 실하다는 토종 닭 한 마리 특별 주문해서 저녁상에 올리려다 학교에서 급식으로 삼계탕 먹었다는 아들과 탕 한 그릇 비웠다는 남편의 복달임에 냉장고 신세를 지게 된 가부좌 튼 벌거숭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낸다 해거름, 무더위에 지쳐 삼키는 울음소리 여기저기서 꼬끼오 꼬꼬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멍멍멍 (김경숙·시인) + 중복 한낮 들녘 파아란 하늘 미루나무 이파리 환상의 구름장을 몰아다 등줄기에 쏟는 소나기 쏴아하아, 매미 소리여. (홍해리·시인, 1942-) + 말복 오후 멍멍이 제일 많이 희생되는 날 약병아리 찹쌀 배 터지게 먹는 날 여름과 가을이 배 맞대고 마지막 한판 뒤집기 위해 깊은 숨 몰아쉬며 씩씩대는 날 (손석철·시인, 1953-) + 더위 더위 먹은 트럭 한 대 고속도로에 길게 누웠다. 따라 오던 택시도 덩달아 발랑 눕는다. 트럭과 택시가 눈 맞아 세상을 내동댕이쳤다. 잔뜩 실은 짐 길바닥에 부려 놓고 트럭과 택시는 사랑놀이에 빠졌다. 구경꾼의 시선도 뜨거워진다. 구급차 지나간 자리에는 트럭도 택시도 주인을 잃고 검은 땀 길바닥에 쏟아 놓는다. 소리 없이 번지는 더위를 따라 (김정현·시인) + 더위 사방 돌아다니며 쪽문까지 열어 젖혀도 해갈되지 않는 찜통 더위라 땡볕에 주춤거리기만 해도 비오듯 쏟아져 내리는 구슬땀. 아무리 서늘한 바람 그리워 길 떠나도 인파에 떠밀리면 더위만큼이나 솟아나는 짜증. 복중에 옷을 낱낱이 벗어도 속 시원하지 않는 것은 인간 스스로 저질러 놓은 자연파괴와 물질 문명의 발달이 원인 제공한 오염 공해가 복합되어 이상난동 현상을 가져온 세상 탓이리. 찬물에 발 담그고 얼음수박 한 입 가득 깨무는 것이 유명 해수욕장을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좋은 차라리 속 편한 나만의 유일한 피서법이리. (심종은·시인, 1948-) + 무더위 완벽하게 세상은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두 다리에 잔뜩 힘주고 버텨주던 빌딩들도 한번 건들면 폭발할 것 같던 충혈된 시선들도 계절 중에 여름이 제일 좋다는 가진 자들의 호들갑도 이젠 아무런 저항 없이 백기를 들고 말았다 사람들의 멍한 무기력 그 사람들 앞에 살아보려는 의지를 불사르는 걸인의 구걸 버스터미널 한쪽 구석 낡은 선풍기 탈탈탈 의미 없이 돌아가고 지쳐 널브러진 사람들의 의식에 사정없이 내리치는 소나기에 대한 꿈은 정녕 없는 것이냐 (공석진·시인) + 무더위 당신의 뜨거운 포옹에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두 팔은 힘이 쭉 빠지고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은 멈출 것만 같다.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대 사랑의 에너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처럼 번져나간다. 잔디밭이라도 어느 그늘진 곳이라도 아무 말 없이 드러누울 테니 그대 맘대로 하시라. (박인걸·목사 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