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동그랗게 오므린
저 완고함.
낯익은 고집.
어디에서 그 많은 생명력과 용기와
사랑이 솟아나는지.
돌아누운 아내의 등을 바라보면서야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세월을,
그 세월 속에 올곧게 버티는 삶을 본다.
왈칵 설움에 한 가슴으로 끌어안으면
풀썩,
한 줌 먼지로 스러지고 말 것 같아
나도 동그랗게 등을 구부린 채
비로소 세상을 향해 몸을 돌린다.
(김영천·시인, 1948-)
+ 등을 껴안을 때
고등어를 굽고 있는 당신의 등을
견딜 수 없어 달려가
껴안을 때
훗날 당신이 없을 때라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될
정신의 합일을 경험하는 거야
살과 뼈가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불가능을 실현하고 있는 거야
내 정신이 당신과 하나가 되었는지
내 육체가 당신과 하나가 되었는지
내 정신을 바람으로
내 육체를 불로 만드는 거야
살과 뼈를 기고 태워서
바람과 불이 되어 당신과 섞이어
하나가 되고자 하는 거야
하나가 되고자 내 생을
당신 속에 집어넣고 또 집어넣고
봉인을 하는 거야
(나해철·시인, 1956-)
+ 등돌리기
쉰 줄에 서더니 아내가 변해
이불 밑에 들어 발만 닿아도
쩌만티 가시요 쩌만치 가
새벽밥 도시락 싸기 몸에 겹다고
등 돌리며 중얼중얼 코를 고네
초록 단장 고운 머리 어제 같더니
어쩌다가 벌써 예까지 왔나?
(임보·시인, 1940-)
+ 아버지의 등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하청호·아동문학가, 경북 영천 출생)
+ 아버지의 등
거기 세상을 등지듯 모로 눕힌
아버지의 검은 등짝
아버지는 왜 모든 꿈을 꺼버렸을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고
삼십 년이나 지난 어느 날
아버지처럼 휘적휘적 귀가한 나 또한
다 큰 자식들에게
내 서러운 등짝을 들키고 말았다
슬며시 홑청이불을 덮어주고 가는
딸년 땜에 일부러 코를 고는데
바로 그 손길로 내가 아버지를 묻고
나 또한 그렇게 묻힐 것이니
(정철훈·시인, 1959-)
+ 할아버지 등 긁기
대구 대구 대구
아이구 시원테이.
전주 전주
거그 거그
어이 시원혀.
서울 서울
그래그래
아이 시원해.
부산 부산 부산
거어 좀 긁어 바라.
부산은 옆구리니까
할아버지께서 긁으세요.
(김경성·아동문학가)
+ 등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서안나·시인)
+ 등
이 세상에서 차마 못할 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등을 보여주는 일이다.
처음 외길에서 만났을 때
한순간에 필이 꽂혀
등이
등 뒤에서 수줍게 어깨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헤어질 때는
등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침묵하면서
마주보며 멀어져 간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돌아서서 가는
그대의 등을 바라보는 일이다.
(정성수·시인, 1945-)
+ 등
피멍이 번쩍 빛난다
우중충한 색깔이 시야를 가리고
산등성이처럼 툭툭 솟아오른 등이
협곡같이 늘어 서 있다
수많은 등짐을 나르고
먹이를 생산하던 언덕
계절과 싸우고
찬바람과 엉켜 생을 나누던 중심
허물이 벗겨지고
황톳빛으로 줄무늬 져
가는 핏줄이 툭툭 솟기도 하는
밥의 생산공장
얘야 등 좀 긁어주렴
아주 세게
사방팔방 샅샅이 긁어주렴
그렇지 그렇지
열 손가락 마디마디
잔잔한 진동이 일어나고
퀭한 바람이 등짝을 휘몰고 간다
(반기룡·시인)
+ 등뼈로 져나른 약속
어제로 추수도 다 끝냈겠다
햇볕도 실어 몇 만 길인가
볏섬을 져나르던 내 넓은 등판
뼈 속까지 쬐어서 스며서
달큰한 내음
동치미 국물 마시며 풀어내야지
고드름 매달리는 겨울 저녁
우리들의 깊은 사연
엮어내야지
푸른 하늘 저 하늘이 변치 않듯
등뼈로 져나른 약속
우리들의 겨울은 따뜻할 거야.
(정대구·시인, 1936-)
+ 송아지의 등을 핥는
무던히 젖을 빨리다가
송아지의 등을 핥는
어미 소의 혀처럼
내 혀가 늘 그리
부드럽게 하소서.
일터에서 돌아오는
지아비 허기진 모습에
밥상을 보는 지어미
그 바쁜 손길처럼
내 손이 늘 그리
바쁘게 하소서.
젖을 물리고 앉아서
아기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눈빛처럼
내 눈이 늘 그리
따뜻하게 하소서.
장미꽃처럼 아니 화려해도
가시 없는 백합, 그 향내
별빛 고여 넘는 샘물이듯
내 속에서 늘 그리
향내나게 하소서.
(최진연·목사 시인, 경북 예천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