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추석 귀향길이었다
참아온 뒤를 보지 못해
다급해진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산골 외진 숲 속에 뛰어들었다
벌건 엉덩이를 까내리자
숲 속에 숨었던 청개구리가 뛰어 올랐다
향기로운 풀내음 속에서
다급한 근심거리를 풀기 위해
혼자 안간힘 쓰는 소리를 듣고
풀벌레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조용해, 저기 사람이 왔어
살다보면 삼라만상의 복잡한 일 중
더러운 일 한두 가지가 아닌데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처럼
참으로 어려운 건 똥 참는 일이다
참으로 시원한 건 똥 싸는 일이다
숲 속의 노란 애기똥풀꽃이 웃었다
(권달웅·시인, 1944-)
+ 누런 똥 - 평사리에서
풋고추 열무쌈 불땀나게 먹고
누런 똥 싼다
돌각담 틈새 비집고 들어온 바람
애호박 꽃망울 흔드는데
이쁘구나 힘주어 누런 똥 싸다보면
해지는 섬진강 보인다
사는 일 바라거니 이만 같거라
땀나고 꽃피고 새 거름 되거라.
(곽재구·시인, 1954-)
+ 해우소
허구렁 속 빠져나가
비로소 제 무게로
제 세상으로 내려앉는
묵은 것들.
새 것 온다, 헛 것이 온다
반가이 튀어 오르며
흔쾌히, 가운데 자리를 내주며
비켜 앉는, 더
묵은 것들.
(윤제림·시인, 1960-)
+ 아침 똥
아침에 싸는 똥은
어젯밤의 내 내력이다
그러니까 몸뚱이의 무늬다
무얼 먹었는지
무슨 말을 가졌는지
싸웠는지 하하 즐거웠는지
남김없이 보여준다
사랑과 폐허, 그리고 원망과 주저 등을
몸은 끙, 한마디로 말한다
쌓아두지 않는 게 몸의 운명인데
내가 지금껏 한 고백들, 선언들, 다짐들은
모두 무언가에 짓눌려 뱉어진 것이다
그리고 내 업이 되어버렸다
지금껏 그걸 모르고 살았는데
오늘 아침에도 똥은
아무 형식도 없이 쏟아진다
어젯밤에 술 취해 고성을 질렀던
핏대도 아프게 쏟아진다
귀 기울여보면
대체 무엇이 이보다 더 냄새나는 말인가
이 세상에
햇빛이 가닿은 우주 안에
(황규관·시인, 1968-)
+ 똥차
두어 달에 한 번씩 학교에
똥차가 온다
햇볕이 변소 지붕에 골고루 널린 날을 택해
부릉부릉 운동장을 힘차게 질러온다
개도 안 먹는다는 선생 똥을
교과서나 공책 찢어 쓰윽 닦은 아이들 똥을
빨대로 콜라 빨 듯 시원히 바닥낸다
수업시간에도 냄새가 교실을 적시지만
우리 어디 제 코만 싸잡을 일이다냐
비우면서 그리하여 가득 채우는 일
대명천지에 똥차는 와서
진정 참다운 일
가르쳐주고 간다
(안도현·시인, 1961-)
+ 여우비 오는 날
"똥 퍼"
한 통에 칠천원이란다
"똥 퍼"
한 통에 만원이란다
가득 차면 만이천원이란다
된다 안 된다 한바탕 소란 끝난 뒤
"그래도 똥 치우는 값이 제일 싼 거여"
대문 닫히고 텅 빈 골목
여우비 후둑이다 간다
동쪽 하늘부터 맑게 갠다
싱긋 웃는 연초록 포플러 잎새
(최영숙·시인)
+ 똥비녀
현관에서 넘어져
허리뼈가 부러지신 어머니
몸의 기둥이 주저앉을 때
대들보 서까래에 눌렸는지
변통을 못 하신다
내가 6남매를 문 걸어 잠그고 혼자 낳았는데
똥을 못 누다니
6인실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에게 힘주어 설명하셨다
관장약이 밀려나오고
비닐장갑 낀 손가락 두 개가 맥없이 들어가는
찌그러진 문
어린 아들 마당가에 쪼그려 앉아 울 때
급한 김에 나무꼬챙이를 집었다가 내던지고
당신의 비녀를 빼어 파냈다던 어머니
북어 같은 다리를
머리 희끗해진 아들이 말없이 주무르고 있다
(장순익·시인, 1956-)
+ 개똥
쇠사슬을 풀어주자 쏜살같이 뛰쳐나간다
급하기도 하여라 그러나 개는 똥 눌 자리를 찾아
한동안을 쩔쩔매다가
비로소 엉덩이를 좌정하고 똥을 눈다
하, 똥 봐라
똥에는 하루종일 쇠사슬에 묶여 물고 뜯고 흔들며 집어놓은 이빨자국이
요만치 없다
그렇게 물고 뜯고 했는데도
전쟁의 상흔이란 요만치 없다
오히려 화해의 승리의 질펀한 냄새가 생짜로 오르는 똥이다
그래도 개는 무엇이 못미더운지 제가 눈 똥을
코로 몇 번이나 킁킁거리다가 간다
아 마침 하늘이 파랗고
나, 그냥 저 똥에 경배하고 싶어진다.
(신현정·시인, 1948-)
똥 묻은 속옷을 동백나무 아래 몰래 감추며
향기를 맡는 척 떨어진 꽃송이를 줍는 어머니
생각나는지요
어릴 적 급체를 몹시 앓고 난 뒤
그 나무 아래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똥구멍을 열었다 닫았다 했잖아요
어머니도 제 곁에 쪼그려 앉아 빨개졌지요
그러다 보면 내가 내 코를 틀어막는
한 무더기 똥,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싸쥐고선
모름지기 똥색이 고와야 얼굴색도 좋은 법인데
이렇게 붉어지고 있으니 여간 다행 아니라며
꽃송이를 든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셨던
아 한땐
당신이 들고 계신 그 꽃송이보다 붉고 뜨거운
달거리 꽃을 피워내셨던 싱그러운 몸
그러나 부끄러워 마세요
몰래 감추는 그것, 똥도 무엇도 아닙니다
고목이 피워낸 안타까운 꽃인 것을요
(원무현·시인, 1963-)
+ 쇠똥을 굴리다
쇠똥을 파먹고 커서 그 속에다 알을 스는 쇠똥구리의 몸뚱이에서는
짓이겨진 풀 냄새가 납니다
나는 한때 별빛을 몸에 두르고 걸었습니다
별똥 흩어진 풀밭을 걷다가 별똥에 채여 넘어지곤 하던
그때 나는 별똥구리였던가요
갈기 세운 구름이 발굽소리 울리며 흐르고 내 안으로 바람 들이쳤던 적 있습니다
뒹굴고 부서지며 지평의 끝까지 날려갔던
그때 나는 바람구리였던가요
서쪽 하늘 아래에서 잘 익은 사과밭이 반짝이는 한나절
둥글게 햇빛을 굴리며 사과향기 가득한 언덕을 오르던
그때 나는 햇빛구리였던가요
당신의 말씀들을 모아 경단을 만드는 저녁나절
짓이겨진 풀 냄새와 별빛이며 바람이며 햇빛인 영혼을 파먹고 자랄
유충의 부화를 예감하는
쇠똥구리의 여름 저녁
(유현숙·시인, 1958-)
+ 똥
똥을 누다가 무심코
밑을 내려다봅니다.
내 깨끗이 씻은 몸에서
저것이 나왔으리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은
그 덩이덩이 똥무더기들이
한 가득 채워져
내 욕심의 잔여물이
그득그득 채워져
나를 노려봅니다.
그토록 잘난 체했던
위선으로 도배된 얼굴에서
눈에선 눈곱이
코에는 콧물이
귀에는 귀지가
입에서는 침이
그리고 뱃속을 꽉 메우고 있는
세상을 함께 호흡하는 속물들
나는 그것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다시금 그런 나를 생각하면서
똥은 내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원성·승려 시인, 1973-)
+ 다국적 똥
또 배탈이군. 한때 돌조차 삭이던 위장이었는데. 그렇지, 장모가 전라도 배추를 경상도 고춧가루로 버무린 탓일 거야. 아냐, 맥도널드 햄버거에 우리 밀빵을 함께 먹은 탓인지도 몰라. 아니, 방부제와 잔류 농약이 십이지장, 소장, 대장을 방제하는 날일까? 쯔쯧, 세계화 시대에 이렇게 편협한 국수주의자의 내장을 가지고서야. 신토불이? 우린 모두 지구촌 읍민이니 지구에서 나는 모든 음식이 신토불이인 거야. 저녁엔 다시 캘리포니아 쌀에 중국산 콩을 놔 먹어보자. 끄억 --. 미제트림에 중국산 방귀를 뀌어볼까나. 비록 제3세계의 셋방에 살지만 오늘도 난 다국적 똥을 눈다.
(반칠환·시인,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