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에
꽃다발을 든 사람이 무려 두 사람이나 있다!
하나는 장미-여자
하나는 국화-남자
버스야 아무데로나 가거라.
꽃다발을 든 사람이 두 사람이나 된다.
그러니 아무데로나 가거라.
옳지 이륙(離陸)을 하는구나!
날아라 버스야,
이륙을 하여 고도를 높여 가는
차체의 이 가벼움을 보아라.
날아라 버스야
(정현종·시인, 1939-)
+ 서울 시외버스터미널
이 많은 사람들
왜 집에 안 있고 싸돌아다닐까.
(나태주·시인, 1945-)
+ 바다에서 오는 버스
아침에
산너머서 오는 버스
비린내 난다
물어보나마나 바닷가
마을에서 오는 버스다
바다 냄새 가득 싣고 오는 버스
부푼 바다 물빛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
풍선처럼 싣고 오는 버스
저녁때
산너머로 가는 버스
땀 냄새 난다
물어보나마나 바닷가
마을로 가는 버스다
하루종일 장터에 나가
지친 아주머니 할머니들
두런두런 낮은 말소리 싣고
지는 해 붉은 노을 속으로
돌아가는 버스다.
(나태주·시인, 1945-)
+ 완행 버스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도
내가 손을 들어도
가던 길 스르르 멈추어 선다
언덕길 힘들게 오르다가도
손드는 우리들 보고는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우리 마을 지붕들처럼
흙먼지 뒤집어쓰고 다니지만
이 다음에 나도
그런 완행 버스 같은 사람이
되고만 싶다
길 가기 힘든 이들 모두 태우고
언덕길 함께
오르고만 싶다
(임길택·아동문학가, 1952-1997)
+ 밤 버스
바람 속을 달리는 버스여
말을 여의고
글자도 여의어라 하리
이런 글 쓰다 말고
문득 벽을 보면
벽이 웃는구나
(이승훈·시인, 1942-)
+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초조히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그들은 안타깝게도 그 정류장이 변경된 것을
모르고 있다
결국, 눈이 빠지게 헛된 시간을 보내다가
어떤 이는 투덜대며 돌아가고
어떤 이는 미련을 못 버리고 조금만 더
기다리기를 계속한다
인생 나그네길 가는 동안
내게 오지 않는 행운을 바라며
오늘도 돌아서지 못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어리석은 우리들이 계속 서성대고 있었다.
(김영월·시인, 1948-)
+ 버스는 오늘도 내일로 퇴근하고 있다
버스는
저녁에서
밤으로 달린다.
또
밤에서
꿈으로 달린다
불안한
세상에
요람이 되어
남은
희망 하나
나즉히 흔들리고 있다.
(윤순찬·시인, 경북 청도 출생)
+ 버스는 오늘도 내일로 퇴근하고 있다·2
경부선 고속도로를
시속 백 킬로가 넘는 속도로 달리며
잠을 잔다
아무도 깨우지 않아
꿈도 꾸고
잠꼬대도 하고
간간이 몸부림도 친다
버스는,
아니 더 정확하게는
운전기사는,
내일이라는 곳 어귀에
차를 세우고
하나
둘
오늘을 내려놓는다
(윤순찬·시인, 경북 청도 출생)
+ 시골 버스
사람 수보다 더 많은
보따리를 태우고
낡은 시골 버스
낡은 엔진 소리 숨이 찬다
보따리가 보따리에 짓눌려
미나리가 파김치 되고
무우가 흰 살 까놓고
깔깔거리고 있다
창 밖은 구슬비 내리는 데
딸아이 낡은 랜드로바 신고
홍단풍 지는 브라우스
해바라기 핀 통바지 입은
시골 아낙네 주먹 속엔
고추나무, 가지나무가
온몸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다
시골 버스 속엔
고추나무, 가지나무
바께쓰, 세숫대야
미꾸라지, 붕어 새끼도
거품을 내며 함께 타고 다닌다
(박덕중·시인, 1942-)
+ 시골 버스
부끄럼도 없이 주름살을 파는
늙은 창부처럼,
고물 다 된 시내버스가
손님을 받는다.
차창엔 태고(太古)적 먼지,
자리엔 현생(現生)의 먼지.
박물관 전시장 가기에도 늦은 버스,
손님 옷은 걸레,
켜켜이 쌓인 먼지를 닦는다.
그러나
차창 밖에 도열한 5월의 풍경,
신종 버스와도 바꿀 수 없다.
(김시종·시인, 1942-)
+ 만원버스 보고서
뒷좌석 통로에 포위당하고
뿌리 내리려고 하지도 않는데
발 디딜 곳이 없다.
고무풍선처럼 매달린 채
떠밀려서 간다.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다.
손잡이 위에 손이 겹치고
밀리지 않기 위해 밀고
참새처럼 짹짹거리며 밟는다.
내 발이 밟히지 않기 위해 밟는다.
정류소 하나, 둘, 셋…….
포위망을 탈출할 수가 없다.
내가 내릴 정류소에서도
버스는 멈추지 못하고 그냥 달린다.
(김희철·시인)
+ 내일로 가는 버스
등받이가 없는 정류소 의자에
오랫동안 한 노인이 앉아 있다.
어두움이 먹물처럼 번지는 거리에
수많은 버스들이 도로를 빠져나간 후
등뼈가 구부정하게 휘어버린 그 노인.
그의 기다림은 언제 끝나는 걸까.
짙어가는 수묵빛 가로수들 사이로
마침내 막차가 도착하고
주름잡힌 허리를 펴며 노인이 희망처럼 계단을 오른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일방통행 도로를 향해
버스는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저 버스 속에는 휜 등이 기댈 안락의자 하나 놓여 있을까.
(김나영·시인, 1961-)
+ 버스를 탄 사람들
책을 든 젊은이들에게서
최루탄 냄새가 난다
대학가를 지나갈 때면
버스를 탄 사람들은
눈을 비비고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흘리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그들도 옛날에 학교에 다녔다
병역을 필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자식들을 기르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그들은 평범한 시민들이다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것을
그들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각형처럼 모난 꼴을
자연스럽게 여길 수 없는
그들은 때묻은 어른들일 뿐이다
구호를 외치고
돌을 던지고
최루탄을 쏘아대는 틈바구니로
입을 손수건으로 막은 채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
그들은 실없는 구경꾼이나
무관심한 행인이 아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낯익은
그들은 결국 누구인가.
(김광규·시인, 1941-)
+ 버스를 기다리며
주머니를 뒤져서 동전 나온다
100원을 뒤집으니 세종대왕 나오고
50원 뒤집으니 벼이삭이 나온다
퇴근길 버스 정거장에서 동전을 뒤집으며
앞에 선 여자 궁둥이도 훔쳐보며
동전밖에 없어 갈곳은 없고
갈 곳 없어 아득하여라
조정에선 이 좋은 날 무엇을 할까
나으리들은 배포가 커서 끄떡도 않는데
신문에 나온 여공의 죽음을 보고
동전밖에 없는 제 자신도 잊은 채
울먹이는 못난 나는 얼마나 잦으냐
말 한마디 큰 소리로 못하고
땡볕에 서서 동전이나 뒤집으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다보탑 뒤집으니 10원 나온다
주머니를 뒤집으니 먼지 나오고
먼지를 뒤집으면 뭐가 나올까
생각하며 땡볕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무엇이든 한 번 뒤집기만 하면
다른 것이 나오는 게 신기해서
일없이 일없이 동전을 뒤집는다
(정희성·시인,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