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껍데기도 아름다울 때 있다 * / 안재동
여름내 숱하게 많던 잎새들
홀연히 다 사라지고
매서운 겨울 칼바람 앞에 발가벗고 선
저 나목이 어찌 춥지 않겠는가.
나무의 껍데기는
잎새들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추우나 더우나
나는 늘 옷가지들을 걸치고 지낸다.
나의 껍데기는
그런 옷가지들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무의 진정한 껍데기가
잎새들이 아닌 다른 것일지라도
나의 진정한 껍데기가
옷가지들이 아닌 다른 것일지라도
차마 버릴 수 없는 존재일 수 있다.
나도 누구의 껍데기가 되어,
비바람과 눈보라에
늘 알맹이보다 먼저 상처받더라도
투덜대지 않고
껍데기의 자리 불편하고
생색나거나 빛나지 않더라도
늘 껍데기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달팽이의 껍데기 같은,
그런
진정한 껍데기로 남을 수만 있다면.
때론,
껍데기도 아름다울 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