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쟁이 지지 - 문 해 (文 海) - 아주 먼 옛날. 어떤 작은 마을에 지지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자기 자랑을 대놓고 늘어놓는 아이였습니다. 한마디로 욕심이 대단한 허풍쟁이 였습니다. 그런 지지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한 명은 토토 였습니다. 토토는 항상 지지와 싸우기 일쑤였습니다. 왜냐하면 토토 역시 남에게 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친구는 라라입니다. 이 친구는 말없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조용한 아이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누구의 키가 더 큰가를 놓고 대판 싸웠던 토토가 지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대뜸, “이게 뭔지 아니? 진주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준 진짜 진주라고……. 히히히……. 넌 이런 거 없지?” 가만히 듣고 있던 지지가 목을 치켜세우더니, “우리 집엔 다이아몬드도 있어 왜 이래? 그깟 진주보다 몇 배는 더 귀한 보석이 있단 말이야. 겨우 그까짓 싸구려 가지고……. 하하하.” 이번에는 토토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보여줘 봐? 없으면 없다고 할 것이지……. 쳇!” 지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대꾸할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토토의 반격이 이어졌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가난뱅이 지지……. 가난뱅이 지지…….” 라며 지지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습니다. 지지의 입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더니. “내일 꼭 보여줄 테니 이리로 와. 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테다. 하하하” 옆에서 가만히 듣던 라라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길가에 난 작은 들꽃에 시선을 던졌습니다. 한편 지지는 생각을 했고 또 해 보아도 다이아몬드를 구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자신의 집에는 낡은 소파며 낡은 책상 등 온통 낡은 것들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토토가 사라지고 나서 지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울분에 찬 목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습니다. “반드시 토토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거야. 다시는 덤비지 못하도록…….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다음 날 늘 모이던 언덕배기 버드나무 아래에 도착한 토토는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이 났습니다. 아마도 지지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토토를 즐겁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 때 였습니다. 말없이 들꽃을 쳐다보는 라라 뒤쪽으로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지지였습니다. “헬……. 헬…….” 숨이 목에 차서 잠시 숨을 고르던 지지가 토토 앞에 꼿꼿이 서서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들이밀었습니다. “봐, 이 자식아! 보라고? 이것이 다이아몬드라는 것이다. 토토 네가 이런걸. 어디서 구경이나 해 보았겠냐? 하하하.” 일순간. 토토의 얼굴에 번지던 그 많은 미소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얼굴이 노을마냥 붉게 물든 토토. 그 눈에서 해바라기씨 같은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습니다. 눈물로 범벅이 된 토토는 훌쩍이며 언덕 아래로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옆에서 눈이 동그래진 라라가 가만히 다이아몬드를 들여다보며, “그거 너희 집 거니?” 지지는 대답 대신 뭐가 그리도 좋은지 한참동안 깔깔거렸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날에 발생하였습니다. 온 마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단 한건의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던 마을에서 누군가가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마을에서 제일로 큰 집에 사는 파파 할아버지네 집에서 말입니다. 라라에게서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지지는 갑자기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지지의 표정을 보았는지 말았는지 라라가, “경찰이 조사 중이라니 조만간 잡힐 거래. 어, 근데 너 왜 그래?” 짐짓 당황한 지지가, “내가……. 내... 가 왜?” 걱정스런 표정의 라라가, “아니 그냥. 어디 아픈가 해서…….” 지지는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깨질듯 아파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지지의 그 작은 눈에서 또르르 투명한 액체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라라에게, “라라야, 실은 그거 내가... 내가... 으흐흐…….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진지하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라라가 지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그럼 나랑 같이 파파 할아버지께 사실대로 말씀드리자. 어쩌면 이해해 주실지도 모르잖니?” 눈까지 벌겋게 충혈된 지지가, “나 감옥에 가겠지? 으흐……. 나 벌 받겠지? 토토에게 자랑만 하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으려고 했는데……. 흐흐…….” 라라는 덜덜 떨고 있는 지지를 꼬옥 않아주었습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나도 같이 가서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 줄게. 그러니 걱정하지 마!” 그렇게 한 동안 서 있던 지지와 라라는 손을 잡고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파파 할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집 앞 정원을 한창 손질하던 파파 할아버지가 하던 일을 멈추고 라라 쪽을 바라보더니, “에구구. 우리 귀염둥이들이 여기는 웬일이냐? 어서 들어가자꾸나.” 손사래를 하며 라라가, “아니에요. 할아버지. 괜찮아요.” 그러자 파파 할아버지가 지지에게 꿀밤을 한 대 쥐어박으며, “그런데 우리 수다쟁이 지지가 왜 이렇게 시무룩하누? 고개 좀 들어보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지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더니, “할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가... 으흐흐” 그러자 라라가 호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내서 할아버지에게 건넸습니다. 그제야 파파 할아버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더니, “그래,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어떻게 된 일인지......” 할아버지가 준 음료수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라라는 사실대로 모든 걸 털어놓았습니다. 그 옆에서는 지지가 떨면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파파 할아버지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흠…….”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그랬단 말이지? 토토가 자기 집 진주를 들고 와서 자랑을 했고 넌 지기 싫어서 얼떨결에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했다는 거지? 흠, 그리고 우리 집에 와서 그것을 가지고 갔다는 거지?” 바들바들 떨고 있는 지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던 파파 할아버지의 이어지는 목소리, “우리 지지가 라라와 같이 찾아와 사실대로 모든 걸 이야기 해 주어서 이 파파 할아버지는 얼마나 고맙고 너희들이 자랑스러운지 모른단다. 하지만 지금부터 이 할아버지가 하는 말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알았지?” 자그마하게 들려오는 지지의 목소리. “네…….” 흰 수염을 어루만지며 파파 할아버지가, “음…….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은 잘못된 거야. 이런 사람은 이런 문제가 있고 저런 사람은 저런 문제가 있고 세상사람 모두 각자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단다. 그런데 그걸 해결하기 위해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댄다면 그건 도둑들의 세상이 될 거야. 그렇지 않니?” 고개를 끄덕이는 도둑 지지. “아울러 거짓말은 절대로 하면 안 돼. 거짓말은 반드시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낸단다. 그 거짓말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커진단다. 너의 이야기를 하자면 말이다. 다이아몬드가 네 것이라고 했는데 토토가 만약 어디서 샀느냐고 물었다면 넌 또 거짓말을 만들어 낼 거야. 또 얼마냐고 물으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될 거야. 넌 사본 적도 없고 가격도 모를 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에 말이야. 어쩌면 부모님을 그 거짓말에 등장시켜 괜히 거짓말쟁이로 만들지도 모르지. 그렇게 거짓말 하나가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고 또 만들면서 점점 커져가는 거란다. 그 거짓말은 끝없이 이어질 수도 있고 급기야 나중에는 너무 커져서 너의 힘으로 결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거란다. 그래서 어른들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이해하겠니?” 고개를 끄덕이는 지지. 그리고 잠시 차를 마시던 파파 할아버지가 이어서, “그렇게 커져만 가던 거짓말을 지금 우리 지지와 라라가 사실대로 고백해서 커지는 것을 막은 거야. 그것이 이 할아버지는 너무 감사한 거구. 네가 만약 그 사실을 숨기려 했다면 넌 우선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을 것이고. 어딘가에 숨기고 없다고 했을 것이며 점점 부풀어 올랐을 거란다. 그래서 이 할아버지는 두 번 다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이 일을 없었던 일로 할 거야. 그렇게 할 수 있겠니?” 지지는 그 동안 흘린 눈물보다도 많은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내며, “흐흐흐……. 네……. 흐흐흐.” 이어지는 파파 할아버지의 말, “정말이지? 이 할아버지와 약속하는 거다. 알았지?” “네. 꼭 지킬게요. 할아버지. 다시는…….” 파파 할아버지와 지지는 손가락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파파 할아버지가, “그래그래 우리 지지. 난 너를 믿는다. 그것으로 된 거야. 내가 당장 경찰에게 말해야겠다. 다이아몬드를 찾았으니 더 이상 문제 삼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 지지는 복 받은 사람이란다. 라라 같은 든든한 친구가 있으니 말이다. 하하하. 아울러 토토에게도 무조건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져 주렴. 져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이기는 사람이니까. 자 이제 가보렴. 가서 라라와 함께 놀거라. 단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반드시 명심하고......”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지지가, “감사합니다. 파파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파파 할아버지.” 문을 나설 때까지 지지와 라라의 감사인사는 계속되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지지는 없는 이야기를 더 이상 꾸며내지 않았습니다. 자랑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함부로 호통 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지가 라라와 함께 동산을 향해 막 뛰어오르려 할 때 였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토토가, “야! 지지. 이것 봐라. 우리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 오신 새 옷인데 예쁘지? 넌 이런 거 없지? 꾀죄죄한 지지. 가난뱅이 지지. 메에롱!” 토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지지가 조용히 웃으며, “그래. 예쁜데……. 하긴 내가 조금 지저분하긴 하지. 하하하.” 그러자 옆에 있던 라라도 덩달아, “나도 그래. 하하하.” 넋이 나간 토토.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데 지지가, “토토야. 내가 그동안 미안했어. 이전에 너한테 못되게 군거 다 사과할게.” 지지가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토토의 눈이 터질듯 부풀어 오르더니, “그... 그래! 아... 아... 아냐. 내가 사과할게. 네가 하도 잘난 체 하기에 나도 지기 싫어서 그랬던 거야. 다시는 이딴 것 자랑하지 않을게.” 그렇게 손을 맞잡은 토토가 갑자기 바닥에 있는 더러운 흙을 한 움큼 쥐더니 자기의 새 옷에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지지와 라라가 웃었고 덩달아 토토도 함께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지지의 말. “우리 저기 언덕너머 저수지에 가 보지 않을래? 거기에 왕잠자리가 그렇게 많데.” “그래. 가자.” “누가 더 빠른지 시합하자.” 후다다닥! 셋 중에 누가 일등을 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달려가는 세 친구의 웃음소리가 사방에 쩌렁쩌렁 울렸다는 것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 바람이 불었고 참으로 아름다운 날이었습니다. < 출처 = www.dog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