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경험의 동물이다.
어떠한 관념과 지식도 경험으로 재해석되고, 재인식되지 않고서는 완결된 관념과 지식으로 구체화 되지 않는다. 학문이라는 것은 이 경험의 거대한 종합이고, 역사라는 것도 인간 경험의 총체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경험하려고 한다. 일례로 대학 새내기들에게 선배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다양한 경험'이다. 뿐만 아니다. 거의 모든 성현들의 격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역시 '경험'이다. 네 자신을 알라했던 그 생존의 증거마저 아직은 불확실한 소크라테스라는 철학자인지 사이비인지 모를 이의 말도 결국은 자기 경험이며, 신은 죽었다던 미치광이 니체의 말도 종국은 신의 존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인간의 경험적 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끊임없이 경험의 반복, 경험의 축적을 구하고, 충족하는 인간임에도 결코 경험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경험 가능하지만, 오로지 하나 이것만은 경험할 수 없다. 신도, 우주도, 사랑도 모든 유무형의 총체를 경험할 수 있음에도 이것만은 경험할 수 없음에, 언제나 인간은 이것 앞에서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죽음이다.
죽음은 결코 경험할 수 없다.
다만 지켜볼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자기 이외의 죽음마저 자아는 다만 죽어가는 자의 죽어가는 과정을 볼 뿐, 죽음 그 자체를 간접으로나마 경험할 수는 없다. 죽음에 관한 한은 추체험 혹은 간접경험마저도 용납되지 않는다. 죽음을 생의 단절이라 보건, 생의 또 하나의 비약으로 보건, 혹은 생물학적인 진화의 위대한 증표로 보건 간에 죽음은 경험의 밖에 있다.
무엇인 문제인가라고 한다면, 문제는 없다.
경험될 수 없는 것은 굳이 경험하지 않으려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자가 바로 곁에서 겨우 숨쉬고 있을 때, 과연 죽음의 비경험성에 냉담히 고개를 돌리고 외면만 할 수 있는 일인가?
또한 죽음이 경험될 수 없다면, 삶은 경험될 수 있는 것인가?
장차 풀어가야 할 이 질문들 앞에서 마냥 길을 잃어 방황하는 인간들....
어쩌면, 신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