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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겨울바다 기차여행
날짜
:
2006년 01월 11일 (수) 5:44:29 오후
조회
:
8454
서너달의 사업을 마무리하고
그간의 긴장된 일상에서 벋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2005년 12월 23일
남쪽 겨울바다를 그리며
나그네는 전주 발 09:00 여수행
무궁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첫눈 이후 근 보름간 계속해서
내린 눈 때문에 창밖에 다가오는
풍경은 온통 하나 같이
백색 세상이다.
얼마만의 기차 여행인가?
시골에서 자라나
처음 집을 떠나 오수역을 경유
전주 유학길을 나설 때의
두려움 젖던 옛날 생각이 문득 떠올라
달리는 창가에 미소를 날려 보낸다.
옛날 완행열차는
간이역마다 쉬어 가다보니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버스요금보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항상 통로까지 발디딜 틈도 없이 만원이었고
그 안중에 보따리 장사의 해산물로
열차 안은 온통 비릿내가 등천했는데도
모두들 개의치 않고 이해들 했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때도 지금처럼 많은 눈이 내리던 날
동네 아이들과 골목길 눈싸움,
동네 어귀 빨래터의 비료푸대 눈 썰매,
형님 따라 구름드리 산에 올라
토끼몰이를 했던 일들이
아스라이 생각난다.
옛 추억에 잠겨
눈 덮힌 겨울산의 풍경에 젖어드는데
기차는 오수역에 도착했다.
오수하면 먼저 생각나는 게
술 취해 잠이든 주인을 살리고
죽은 충견이 떠오르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충견의 고장에서
보신탕이 유명하다니 아이러니 하다.
두두둑 두두둑!!
눈 덮힌 들판 길을 미끄러지듯
금속형 마찰음을 내고
기차는 시원스럽게 달리는데
친절한 검표원 아저씨가 인사를 건넨다.
70년대의 검표원은
빨간 완장에 각진 모자,
옆구리에는 곤봉을 차고 2인 1조로 근무하면서
무임승차 학생들과 숨박꼭질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완장도 모자도
그리고 허리춤의 곤봉도 없다.
참! 기차 여행의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삶은 계란과 오징어와
시원한 맥주 한잔이 있었다.
열차객실판매원(옛날에는 홍익회라 했음)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검표원 아저씨에게 물어 보니
하행선(서울발 여수행)은 없고
상행선에서는 판매한단다.
일찍부터 서두르랴
아침을 거르고 왔는데
열차안의 삶은 계란의 추억은
돌아 올 때로 미뤄야 겠다.
열차는 거침없이
이름 모를 동네 앞을 지나고 있다.
마을길은 눈 속에 파뭍친지 오래고
당산나무 가지는
눈 무게에 온 몸을 숙여 쉬러하고 있고
주인 떠난 상수리나무 꼭대기 까치집도
흰눈에 덮여 을씨년스럽다.
찬 공기를 가로 질러
속도감을 더하고
일년 내내 맑은 물이 흐르는
압록역에 도착(09:06) 했다.
지난 여름 친구와 둘이서 압록을 찾아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추억이 생각나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전주역을 출발한지 2시간 20여분이 지나
여수역에 도착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서둘러 택시를타고
출발 전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 논
선착장 인근 구백회관에 도착해서
쑥갖에 버물린 감칠맛 나는 서대회와
50세주를 반주로 성찬을 끝내고
인근에 있는 이순신 장군 전라좌수영의
본영인 “진남관”을 찾았다.
진남관은 선조 32년(1599년)
삼도 통제사 이시언이 건립한 객사이나
임난때 소실된 것을 숙종 42년(1716년)
수사 이제민이 재 건립한 웅장한 건축물로
여수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략 요충지이다.
진남관 입구에 있는
임진왜란 기념관을 둘러보고
오동도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시내를 빠져 나오니
이제야 여수의 겨울바다가
반갑게 손짓 해 온다.
한 여름 물보라를 일으키고
바다를 질주했을 모터보트는
부두에 발이 묶여 있고
유리처럼 맑은 겨울 바다에는
화물선만이 유유히 물결치고 있다.
거칠 것 없는 겨울바다의
매서운 바람을 의식해
두툼한 외투로 중무장을 했건만
예상외의 포근한 날씨로
오동도 일주 길이 가볍다.
맑은 새소리에 끌려
산책길에 접어드는데
동심에서 시작된 눈싸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절을 잃은 동백은 붉은 잎을
열어 반갑게 나그네를 맞아 준다.
짧은 해를 아쉬워하며
16시23분 여수 발 열차에 올라
의자를 돌려 함께 마주해
겨울산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찐계란과 맥주한잔의 낭만에 젖어 본다.
해는 눈 덮힌 산으로 지고
어둠은 스믈 스믈 따라 붙는데
열차는 곡성역을 빠르게 지나고 있다.
어두운 창문에
내 얼굴이 비춰질 때쯤
하얀 눈길이 가로등불에 반사되어
동화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즐거운 겨울 기차여행을 정리하면서
기분 좋은 피로에 잠시 눈을 붙였는데
어둠을 달려온 목쉰 긴 기적소리에 눈뜨니
전주역(18시26분)에 도착했다.
겨울바다와 기차여행을 함께한
오늘의 나그네 마음속에 오래토록 남아
눈 오는 날 창가에 앉자
커피 잔을 앞에 놓고 가끔 꺼낼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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