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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봄을 맞으러
날짜 : 2005년 04월 03일 (일) 10:25:31 오후
조회 : 8175
올해는 태풍 쓰나마 영향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따른 한일관계의 냉랭함 탓인지 봄은 더디게 오고 있는 것 같다.
남쪽인 이곳 창원에서도 아직 개나리와 벚꽃은 꽃을 터뜨리려고 서성이고 있고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꽃도 꽃망울만 뾰족이 내미는 정도지만 철늦은 함박눈 사이로 핀 매화꽃만이 제법 만발해 있는 3월 하순이다.
햇볕은 따사롭지만 아직 북풍에서 묻어 오는 찬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지는 초봄이지만 성급한 마음에서 오는 봄을 앉아서 맞이하기보다는 직접 찾아가 맞이 해보기로 했다.
봄은 남쪽 바다와 꽃에서 시작하는데 꽃 축제로는 전국에서 제일먼저 시작한 광양의 매화축제 는 벌써 끝나고 그 다음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지리산자락의 구례군 산동면에서 산수유 꽃 축제를 시작한다고 해서 구경할 겸 봄을 맞으러 가족과 함께 토요일 오후 서둘러 나섰다.
이른봄이지만 봄맞이 축제 참가 겸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과 공간에서 벗어나 화창한 봄기운과 싱그러운 자연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도로는 많이 붐비었다.
시티라인인 창원과 마산. 진주를 벗어나 섬진강을 끼고 도는 하동에 도착하자 자연과 농촌의 싱그럽고 탁 트인 눈 맛과 귀 맛을 볼 수 있어 비로소 여행 기분이 났다.
차 창가에 다가왔다 사라지는 겨울끝자락 풍경은 아직 황량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가지 끝에 움트는 푸름이 묻어 오는 듯한 상큼함이 코끝을 간질이고 섬진강은 맑은 봄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며 지리산의 전설을 굽이굽이 담아 마을과 사람들에게 봄소식을 전하며 바다로 느릿느릿 겨울을 실어 내고 있었다.
하동을 지나 구례 가는 길에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화개장터에 잠깐 들렀다.
자연이 갈라놓은 심리적 경계선을 장터를 통하여 사람들의 가슴을 허물고 상품과 정을 나누도록 했던 상징적 문화적 교류地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외지 사람들의 관광지로 더 붐비었다.
옛 것을 재현한다고 나름 데로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만 뭔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하여 서둘러 구례로 향하였다.
첩첩이 쌓인 지리산의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오순도순 깃들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산과 들을 지나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시며 사는 구례의 산촌에 도착하자 해는 저물고 있었다.
산촌의 개울가에 늘 부러져 있는 산수유 꽃은 겨우 꽃봉오리를 내밀며 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해 준비 운동하고 있는 형태로 서성이고 있었다.
비록 봄 냄새와 기운을 완전히 느낄 수는 없어 안타까웠지만 몇 일 후면 계곡 가득히 노오란 산수유 꽃들로 채워질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보며 되돌아왔다.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온천욕도 하고 편안하게 쉬었다 올 욕심으로 갔으나 축제기간에 맞추어 한몫 챙기려는 상혼과 좁은 산골에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복잡하여 내려오다 피아골 입구에 조용하고 아늑한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었다.
한적한 시골이지만 지리산 관광지 입구라서 그런지 제법 시설과 규모도 잘 되어 있어 나그네가 하루 밤을 묵고 가기에는 그런 대로 괜찮고 주말이라서 가족들 단위가 많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서둘러 피아골 계곡의 고요한 지리산에 잠들어 있는 연곡사를 찾아 경건한 마음으로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빌어보며 한바퀴 둘러보고 내려왔다.
연곡사의 첫 인상을 그렇게 화려하고 빛나지는 않았지만 지리산 몇 자락을 안고 포근하게 잠겨있는 숲 속의 시골처녀 같이 때묻지 않고 순수하면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용과 자세로 다소곳이 자존심을 간직한 조촐한 모습이었다.
대웅전을 오르는 몇 단계의 계단마다 흙이 잘 다듬어져 있고 양쪽으로 심어진 나무들도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에게 경건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알맞은 크기와 수종으로 가꾸어져 있어 친근감과 정이 갔다.
조용한 아침이라 서둘러 둘러보고 내려와 섬진강을 따라 굽이굽이 내려오다 최근 드라마 토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악양면 평사리를 방문했다.
내야 3번째 방문이라 별 흥미와 관심이 없었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다시 한번 방문했는데 휴일이고 드라마의 영향으로 마을 전체가 난리였다.
전에는 그래도 옛 모습을 간직하며 고요하게나마 감상할 수 있었는데 소설에다 TV셋트장이 설치되면서부터 전국에서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마을 전체가 관광 상품화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것과 옛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심 없이 좀 유명하니까, 아니면 TV에 나왔으니까 한번 찾아보자는 식의 냄비성 관광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급조되고 1회용으로 용도패기 되고 있는지 돌아보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서둘러 빠져나왔다.
평사리 앞 섬진강 체육공원에 차를 세우고 라면을 끓어 먹었다.
봄이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고 추워서 차안에서 휴대용 버너로 라면을 끓어 먹고 굽이치는 섬진강을 바라보며 지금 흐르고 있는 물에 스쳐간 흔적과 지리산을 돌고 온 전설을 회상해보며 다시 하동으로 내려왔다.
지나는 길에 광양의 매화축제에 참가 해 보려고 가다 섬진교에서 포기했다.
하동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광양 매화꽃마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축제의 마지막 날이라 차와 사람들로 붐비어 진입하기가 힘들어 차를 돌려 송림 숲으로 갔다.
하동 송림 숲에서 바라본 광양의 매화꽃은 눈 속에 피는 꽃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만개하여 희게 활짝 피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었지만 꽃나무보다 차와 사람수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뀡 대신 닭이라고 매화꽃 축제는 가지 못하고 하동의 송림에서 굽이 흐르는 섬진강과 모래밭을 걸으면서 봄을 맞이하러 가는 상춘객들을 구경했다.
솔밭 앞의 넓고 깨끗한 모래밭을 안고 도는 순수한 섬진강은 오늘도 느릿느릿 역사의 장을 펼쳐 놓고 있고 저희들끼리 기대어 모여 사는 송림은 웅웅거리며 세월을 읽고 있는데 한 나절의 나그네는 짧은 봄이 아쉽다고 모래밭에 흔적을 남기려 들지만 자연은 말없이 왔다 가라고만 하네.
이른봄이라 제대로 핀 봄꽃을 구경 못하고 돌아서는 것이 아쉽고 여운이 남았지만 휴일이라 남해고속도로가 워낙 정체가 심하여 일찍이 창원으로 출발하여 돌아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강행군의 여행일정과 노곤한 봄기운에 탓에서 차에 타자말자 잤다.
다소 이르고 쌀쌀한 날씨 속에 짧은 봄 나들이었지만 자라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체험학습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고 먼 훗날 아이들에게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들을 위해 열심히 보여주고 느끼겠음 해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본다.
나는 어제오늘 약 400km의 운전사에다 여행 기획자로 때로는 안내자로 1인 3역을 하느라 피곤했지만 가만히 집에 앉아서 TV보거나 지루해 하는 것보다는 훨씬 보람차고 값있는 1박2일의 여행이었다고 생각하며 봄나들이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