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타국, 신비의 섬에서...
“제주도에서 살겐 마씸?”
여행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람을 즐겁게 한다. 하루 동안에 당일치기인들, 무작정 나서는 무전기행인들, 혹은 정해진 일정에 맞춰 가는 수학여행인들, 그것이 어떤 여행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일상에서 탈출해 떠나는 여행은 사람을 이유 없이 즐겁게 한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세 번째 가는 수학여행이었지만, 들뜨는 기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여행 첫 날 비가 왔다. 부슬부슬 출발 전부터 내리던 비는 여행을 망칠 만큼 썩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쾌했다. 여행한다는 설레임을 느끼기도 전에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이미 이국적인 한반도의 끝섬에 닿았다. 공항 앞에 낯선 열대 식물이 잿빛하늘로 머리를 들고 사그락사그락 흔드는 것이 이곳이 정말 제주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빗방울도 도시에서 맞던 미지근한 빗방울이 아닌, 차갑고 신선한 것이 일상에 찌든 뱃속까지 식혀주었다. 시원한 ‘자연 비’ 때문이었는지 제주도의 첫인상은 그동안 TV나 화보에서 보던 따뜻한 남쪽 섬이 아닌, 무척 시원하고 상쾌한 것으로 기억에 남았다.
제주도에서의 첫날은 첫인상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조각공원에서 본 바다 풍경이다. 점심 먹을 때쯤 조각공원에 도착해서 날씨가 금세 개었다. 밥 먹는 것을 잠시 뒤로 미루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인적이 드문 전망대로 향하는 좁은 길까지 들어서게 되었다. 썩 내키는 길은 아니었지만 가는 길에 조밀조밀 버섯이며, 하얀 나비나 돌멩이 달각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함께 올라오던 친구들은 가는 길이 힘들어 투덜거렸지만 전망대에 도착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입이 떡 벌어졌다. 고생해서 올라간 보람이 있었다. 그 위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햇빛에 반짝이는 잔잔한 바다 위에 하얗고 상큼할 것 같은 아이스크림이 얹혀져 있는 하늘이었다. 눈부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내려가기가 싫을 정도였다.
그 조각공원에서의 전망이 인상이 깊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높은 곳에 가서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여미지 식물원에서도 중앙 홀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구름으로 덮인 제주를 볼 수 있었다. 여미지 식물원은 맑았지만 제주 곳곳에는 시원한 비구름이 땅과 아주 가까이에 닿아있었다. 솜이불로 싱그러운 여름 숲을 덮어놓은 것 같은 풍경도 좋고 선선한 바람도 좋았다.
도시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드물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학여행에서 나는 자주 이탈해서 다녔다. 산방산에서도, 모두들 산을 올라갈 때 나는 산 아래로 내려갔는데, 바로 아래가 바다가 근접해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 옛날 물이 들어와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바위 정경을 보니, 세상 어떤 궁궐도 부럽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안으로 패여 만들어진 공간이 파도소리와 함께 아늑하게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제주도 여행은 언제나 자연과 함께 한다. 제주 어디를 가던지 제주도의 상품은 제주 그 자체이다.
제주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천지연. 사람들은 천지연, 하면 선녀 설화 밖에 모르는데 천지연에는 순천 설화가 전해진다. 착한 순천에게 하늘이 감동해 여의주를 주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설화. 그 설화를 듣고서 보니 평범해 보이던 폭포 위에서 혹시 실수로 하늘이 여의주 한 개쯤 떨어뜨려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시원한 폭포소리와 함께 여의주가 정말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제주의 많은 설화들은 나에게처럼 사람들에게 또다른 순수한 경험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섬에 정말 신비한 힘이라도 있는 것일까? 가는 곳마다 머리 속에 사진 찍히듯 선명하게 남은 제주 풍경들이 낯설지 않다.
바다 내음이 무척이나 정겨웠던 섭지코지, 오래된 바위와 나무가 숨쉬던 목석원, 아주 오랜 옛날 거대한 흔적을 가진 산굼부리, 민속마을, 마지막 코스였던 용두암까지. 하나 같이 시간이 아쉬웠던 곳들이었고 못다 접한 제주 곳곳의 자연이 인천으로 돌아온 뒤에도 오랫동안 나를 붙잡아 두었다. 잠시 나마 자연과 함께 숨을 나누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 나를 보며 언젠가 또 지칠 때면 제주도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추억거리 하나가 또 앨범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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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다녀와서 기행문으로 제출했던 것인데...
미흡하지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