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마중
생굴 몇 점 먹은 것이 화근이 되어서인지
유행하는 장염이라고 진단을 내려준
동네병원 의사가
수액을 맞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자
내일까지 기다려보다가 나아지지 않으면
큰 병원에 가서 장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한다.
입춘의 냉갈령같은 찬 바람을 맞으며
새우등처럼 웅크리고 집으로 기어오는데
여기저기 앞치마만한 묵은 밭 두둑엔
삐죽삐죽 씩씩한 봄나물 싹들...
한 평 남짓한 내 침대에서
전전반측,
팔 다리는 할 일을 잃고
큰 병원이라는 엄청난 의혹의 권력아래
만약이라는 티켓을 들고
밤낮으로 내 머리는 엄청나게 바쁘다
새끼줄 울타리조차 없는
시간과 곳을 넘나들며...
문하나 건너에서 들려오는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와
식구들의 이야기소리가
건너갈 수 없는 아주 먼 육지로
나는 낯선 섬에 버려진 채
다만 그리운 것은
자싯물 냄새 묻은 엄마의 행주치마였음을
새봄이라는 말보다 설레는 말이 있을까?
꽃샘바람을 동무삼아
산으로 들로 앙감질로 뒹굴어 보리라.
냉갈령; 몹시 쌀쌀맞은 태도
자싯물; 설거지 후에 생긴 물
앙감질; 한 발로만 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