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씨 구멍가게, 외상 술값 갚은 날
뒷짐 지고 마당에 나와 쳐다보는 별빛이여
이 값은 얼마나 될까
오 년째 외상인데
(김원각·시인, 1944-)
+ 별
가슴에 별을 간직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소멸하는 빛 흐느끼고
별이 낡은 구두를 벗어 놓는다
절대 고독, 허공에 한 획 긋는다
별을 삼킨 강 뒤척인다
가슴에서 별이 빠져나간 사람은
어둠 속에서 절벽을 만난다
(신형주·시인, 경기도 수원 출생)
+ 별
겨울 하늘 두드리면
쨍- 소리 날 것 같이 추운 날
들녘의 짚가리 밑에 앉아
거기 옥실옥실 모여 속살거리는
햇볕 속에서 놀다 오니
늙은이 혼자 거처하는 잿등집
어둔 대울바자에
쌀 씻는 소리로 반짝이기 시작하는
오, 별이여!
눈물 말고 눈물 말고
네 형형한 보석 무엇으로 빛나리
(고재종·시인, 1959-)
+ 별 아래 서서
별 하나 흐르다 머리 위에 머뭅니다.
나도 따라 흐르다 별 아래에 섭니다.
이렇게 마주보고 섰어도
늘상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습니다.
함께 사랑하고 기뻐한 시간보다
헤어져 그리워한 시간이 길었습니다.
만났던 시간은 짧고
나머지는 기다리며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어느 하늘 어느 땅 아래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떠나간 마음을 그리워 별만 바라봅니다.
(도종환·시인, 1954-)
+ 별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가 서로의 거리를
빛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허리가 휘어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 아래로 구르는 별빛,
어둠의 순간 제 빛을 남김없이 뿌려
사람들은 고개를
꺾어 올려 하늘을 살핀다
같이 걷는 이웃에게 손을 내민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의 빛 속으로
스스로를 파묻기 때문이다
한밤의 잠이 고단해
문득, 깨어난 사람들이
새벽을 질러가는 별을 본다
창밖으로 환하게 피어 있는
별꽃을 꺾어
부서지는 별빛에 누워
들판을 건너간다
별들이 아름다운 것은
새벽이면 모두 제 빛을 거두어
지상의 가장 낮은 골목으로
눕기 때문이다
(김완하·시인, 1958-)
+ 사랑하는 별 하나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별도 울 때가
한참
별들을 멀리 바라보고 있노라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별이 있었습니다
별도 우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너무 멀리 오래 홀로 떨어져 있어서
서로 만날 가망 없는 먼 하늘에 있어서
아니면...
별의 눈물을 보는 것은
스스로의 눈물을 보는 것이려니
밤이 깊을수록
적막이 깊을수록
눈물을 보이는 별이 있었습니다
(조병화·시인, 1921-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