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시 모음> 차영섭의 '조약돌' 외 + 조약돌 조약돌에는 부드러운 손길이 있네 마르고 닳도록 쓰다듬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있네 긴 세월을 두고 쏴쏴~ 심금을 울리는 가슴이 있네 망치보다 강하고 세련된 힘이 있네. (차영섭·시인) + 조약돌 은하수런가 은하수런가 여울물에 씻겨 하얀 조약돌 (주근옥·시인, 충남 논산 출생) + 조약돌 마을 조약돌 모여 사는 하얀 마을엔 하얀 물새가 손님이어요 바다 위를 날다가 지쳐서 오면 하얀 조약돌이 쉬어서 가래요 조약돌 모여 사는 하얀 마을엔 하늘 별빛이 손님이어요 하늘을 흐르다 잠깐 멈추면 하얀 조약돌이 놀다 가래요. (황베드로·수녀이며 아동문학가) + 조약돌 물가에 도란도란 멀리 떠나지 못하는 작은 조약돌. 날마다 정을 주며 놀다 가는 예쁜 지느러미 피라미 떼 고운 노래 풀섶 벌레 모두 오래 된 소꿉동무래. 깊은 밤 별님이 찾아와 머리맡에서 칭찬한단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 이고 참음으로 견디는 영근 이마가 무척 귀엽다나. 모래 멍석을 깔고 맑은 물소리 졸졸졸 듣고 살아서 자르르르 윤기 흐르는 얼굴들. 기만히 귀 대어 보았지. 가을볕에 익는 과일처럼 반들반들 속마음이 더 곱구나. (김완기·아동문학가, 1938-) + 조약돌 하나 조약돌 하나 강물에 떠내려가다 햇빛 스미고 떠내려가다 가라앉다 푸른 별빛 입맞추고 요령을 흔드는 겨울 하늘 기러기 울음소리에 금이 가다 망아지, 송아지 풀밭을 뛰노는 발굽이 반점으로 찍히고…. (최진연·시인, 경북 예천 출생) + 조약돌 비바람 눈보라에도 영겁의 세월 이겨내 온 바닷가 조가비 옆 작은 조약돌 해일에도 폭풍우에도 밀리면 밀려가고 파도치면 깎이고 세월의 순응 속에 견디어 온 나날들. 차라리 한 마리 기러기 되어 날아갈 수 있었으면...... 깎이고 부딪혀 세월의 흔적 모두 담아 웃으며 살아가리 외로운 조약돌 (윤용기·시인, 1959-) + 조약돌 나는 어려서 물수제비를 잘 떳었다 학교 앞 저수지 뚝을 지날 때면 작은 조약돌을 수면에 날려 끝없이 번져 가는 파문을 세어 보고 했었다 내 손끝에서 비행접시처럼 날던 조약돌은 지금은 어디서 내 어릴 적 꿈을 그 동그란 물결을 일으키고 있을까 사랑을 준다는 것 사랑을 받는다는 것 조약돌로 물수제비를 뜨는 것은 아닐까 내 가슴에 일렁이는 물살 같은 그런 흔들림은 아닐까 (박무웅·시인, 1944-) + 조약돌을 보며 냇가에서 조약돌을 본다. 둥글고 예쁜 하얀 조약돌, 물의 부드러운 손으로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 물무늬가 배도록 쓰다듬어 만든 저 둥글고 예쁜 조약돌. 끌이나 망치로는 만들 수 없는 부드러운 물의 손 부드러움이 만든 예쁜 돌, 툭툭 모가 난 성질의 돌들이 저렇게 부드러운 성품이 되었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년도 아니고 수천 수만 년을 견디면서 만든 저 한없는 참을성, 그리고 부드러운 사랑의 손길과 속삭임. 둥글고 예쁜 조약돌 위로 아이들과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부드러운 눈으로 부드러운 손길로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참고 따뜻하게 사랑했는지, 모난 돌들이 둥글게 되듯 오래 참고 오래 견디며 사랑했는지. 그저 모난 것을 망치로 두드리고 그저 모난 것을 끌로 깎진 않았는지 그리하여 깨뜨려 못쓰게 하진 않았는지 ‥‥ 오늘도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의 손 아니, 내일도 모래도 부드럽게 쓰다듬을 물의 손 그 따스하고 정결한 손의 부드러움 그 온화한 속삭임의 미소. (김종목·시인, 1938-) + 조약돌 사랑 그대들이 취흥에 젖어 늦은 귀가를 하였을 때 혹여 아내의 플라스틱 바가지, 박 바가지로 빡빡 긁히는 날 있어도 언짢아할 일만은 아니다 그대에게 아직 기대가 남아 있음이요 그대에게 아직 애틋한 연분이 남아 있음이요 오직 그대로 인하여 기뻐하고 슬퍼할 귀한 의미가 살아 있음이니. 그대들이 때로 실수의 무마로 너스레를 떨 때 아내가 입술을 꼭 다물고 눈 흘길 수 있다는 건 조약돌을 닮아가는 둥근 사랑의 표현. (허영미·시인, 1965-) + 조약돌이고 싶다 산이, 물 속으로 내려오면 계곡물은 얼굴을 붉히고, 저이들끼리 모여서 도란거리며 역류하던 피라미들이 작은 조약돌을 간지럼 태운다 간지럼 타며 깔깔거리는 조약돌 하나 건져 올리면 조약돌의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나도, 그대의 손에 얹어져 있는 작은 조약돌이고 싶다 세상 속으로의 욕망도 벗어 던져 버리고 산골 한 자락에 옥수수 가꾸며 살아가는 아낙처럼 욕망이라는 욕망 모두 지워버리고 그대의 손에 얹어져 있는 작은 조약돌이고 싶다 (권복례·교사 시인, 1951-) + 조약돌 한 주먹에 쏙 들어오는 잘고 동글동글한 돌. 모양과 색깔은 달라도 하나같이 예쁘고 순하면서도 당찬 돌. 가만히 쥐고 있으면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고 내 가슴 뛰게 하는 살아 숨쉬는 돌.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