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시 모음> 최두석의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외 +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무슨 꽃인들 어떠리 그 꽃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내에 취해 절로 웃음짓거나 저절로 노래하게 된다면 사람들 사이에 나비가 날 때 무슨 나비인들 어떠리 그 나비 춤추며 넘놀며 꿀을 빨 때 가슴에 맺힌 응어리 저절로 풀리게 된다면 (최두석·시인, 1955-) + 아름다운 책 어느 해 나는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거리에서 책상이 아니라 식당에서 등산로에서 영화관에서 노래방에서 찻집에서 잡지 같은 사람을 소설 같은 사람을 시집 같은 사람을 한 장 한 장 맛있게 넘겼다 아름다운 표지와 내용을 가진 책이었다 체온이 묻어나는 책장을 눈으로 읽고 혀로 넘기고 두 발로 밑줄을 그었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이 아닐 것이다 사람, 참 아름다운 책 한 권 (공광규·시인, 1960-) + 사람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 팍팍한 사람 말고 새참 무렵 도랑에 휘휘 손 씻고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나눌 낯모를 순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박찬·시인, 1948-2007) + 사람의 저녁 내가 가도 되는데 그가 간다. 그가 남아도 되는데 내가 남았다. (윤제림·시인, 1960-) + 두루 불쌍하지요 두루 불쌍하지요 사람은 하여간 남의 상처에 들어앉아 그 피를 빨아 사는 기생충이면서 아울러 스스로 또한 숙주(宿住)이니 그저 열심히 먹고 부지런히 피를 만드는 수밖에 없지요 (정현종·시인, 1939-) + 아주 작은 사람 나는 키도 작고 마음 씀씀이도 작고 지혜로움이나 현명함도 갖추지 못했다 성실함이나 근면함도 글쎄.. 별로인 것 같다 그저 정직하고 솔직한 삶을 사랑한다 힘들 땐 지치고 지칠 땐 답답하고 답답할 땐 슬픈 그저 그런 작은 사람이다. 나만 너무 사랑해서 아무도 내 안에 가두지 못하는 그런 아주 키 작은 사람이다. (김낙필·시인) + 이런 사람이고 싶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 또한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낮고 작은 때론 오래된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정이 많은 사람이고 싶다 말과 행동에서는 조금은 무게를 지니고 싶고 차를 음미하듯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음악을 즐기며 일상에서 빚어지는 따뜻한 생각들을 정리하여 글로 옮기는 사람이고 싶다 또한 그러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만큼은 엄한 사람이고 싶고 시간을 아껴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다 (오경옥·시인) + 두 사람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꽃길을 지나갑니다 바퀴 살에 걸린 꽃향기들이 길 위에 떨어져 반짝입니다 나 그들을 가만히 불러 세웠습니다 내가 아는 하늘의 길 하나 그들에게 일러주고 싶었습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불러놓고 그들의 눈빛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을 그들이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불러서 세워놓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곽재구·시인, 1954-) + 사람이 위안이다 살다보면 사람에 무너지는 날 있다 사람에 다치는 날 있다 그런 날엔 혼자서 산을 오른다 해거름까지 산에 오른다 오르다 보면 작은 묏새 무리 언덕을 넘나든다 그 서슬에 들찔레 흔들리고 개미떼 숨죽이는 것 보인다 사람에 무너지는 날에도 사람은 그리웁고 사람에 다치는 날에도 사람은 위안이다 (박재화·시인, 충북 옥천 출생) + 다시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시인, 1958-) + 너를 만나고 싶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뱉고는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스스로 그어 둔 금 속에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다가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헤치고 너를 만나고 싶다 입꼬리 말려 올라가는 미소 하나로 모든 걸 녹여 버리는 그런 사람 가뭇한 기억 더듬어 너를 찾는다 스치던 손가락의 감촉은 어디 갔나 다친 시간을 어루만지는 밝고 따사롭던 그 햇살 이제 너를 만나고 싶다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는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어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도 하는 내 어리석음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 살아가는 방식을 송두리째 이해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김재진·시인, 1955-) +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이 참 따뜻하다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이 참 따뜻하다 마을이 적막을 끌어 덮는다 해도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으리 이 세상 어디를 가든 사랑이 아니고서야 길은 굳이 거기로 났을까 사람의 마을에서 만난 풀꽃은 모두 아름다웠다 사랑받는 여자가 예뻐지듯 정다운 눈으로 바라본 풀꽃이야 사랑한다는 말에도 예뻐진다는 것이니 사람의 마을로 가는 저 길이 더 따뜻해지지 않을 수 없겠다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길 위에서는 늘 혼자이나 사람의 마을에서는 만남이 있지 않은가 만남이 꼭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눈빛 한 사발 잘 익은 마음 한 사발이면 좋을 것 같다 겨자씨 같은 관심이면 사랑은 피리니 (박창기·시인, 1946-)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