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시 모음> 박종대의 '연못가에서' 외 + 연못가에서 넓죽한 잎 펼쳐 놓고 어서 오게 하시는데 연꽃 말씀 받아 오실 그런 분 안 계신가 저 위에 사뿐 올라앉을 이슬방울 같은 사람 (박종대·시인, 1932-) + 연꽃 아수라의 늪에서 五萬 번뇌의 진탕에서 무슨 저런 꽃이 피지요? 칠흑 어둠을 먹고 스스로 불사른 듯 화안히 피어오른 꽃. 열번 백번 어리석다, 내 생의 부끄러움을 한탄케하는 죽어서 비로소 꽃이 된 꽃. (이수익·시인, 1942-) + 연꽃 흐린 세상을 욕하지 마라 진흙탕에 온 가슴을 적시면서 대낮에도 밝아 있는 저 등불 하나 (이외수·소설가, 1946-) + 연꽃 초록 속살 빈 가슴에 떨어지는 이슬비 수정으로 토해내는 깨끗한 연잎 하나 세월의 틈바구니에 삶의 몸을 닦는다 진흙 깊은 연못 물안개 떠난 자리 햇살 퍼질 때 수면 위에 꽃불 밝히고 두 손 모아 합장한다. (노태웅·시인, 1941-) + 연꽃 만삭된 몸 풀 날이 언제인지 탱탱 불은 젖가슴 열어볼 날 언제인지 진흙 밭에 발 묻고 열 손가락으로 문 열며 지긋이 마음 다스리더니 또르르 이슬 구르는 날 반야심경 음송으로 꽃잎 하나 연다 (목필균·시인) + 연꽃 불이 물 속에서도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은 연꽃을 보면 안다. 물로 타오르는 불은 차가운 불, 불은 순간으로 살지만 물은 영원을 산다. 사랑의 길이 어두워 누군가 육신을 태워 불 밝히려는 자 있거든 한 송이 연꽃을 보여 주어라. 달아오르는 육신과 육신이 저지르는 불이 아니라 싸늘한 눈빛과 눈빛이 밝히는 불, 연꽃은 왜 항상 잔잔한 파문만을 수면에 그려 놓는지를 (오세영·시인, 1942-) + 蓮의 귀 蓮들이 여린 귀를 내놓는다 그 푸른 귀들을 보고 고요한 수면에 송사리 떼처럼 소리가 몰려든다 물 속에 가부좌를 틀고 蓮들은 부처님같이 귀를 넓히며 한 사발 맛있는 설법을 준비중이다 수면처럼 평평한 귀를 달아야 나도 그 밥 한 사발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길상호·시인, 1973-) + 연꽃 떨어져야 하느니라 절망의 아득한 절벽 끝에서 시궁창에 뒹굴지라도 주저없이 온몸을 던져야 하느니라 눈 시린 선홍빛 순결만으로 어찌 쉽게 꽃 피우리라 생각하겠느냐 뭇사람의 비웃음도 받아야 하느니라 비난 어린 손가락질쯤이야 어이 못 참아내겠느냐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져 한 세월을 그렇게 살아야 하느니라 천년을 기다려 하루를 산다고 생각해야 하느니라 뻘밭 진흙 속을 사랑해서 시궁창이 오히려 따뜻해질 때 길게 깊은 뿌리를 뻗어야 하느니라 그렇게 또 한 세월을 기다려 넓은 잎 가득히 이슬을 담아낼 수 있는 윤기 나는 綠빛으로 태어난 뒤에야 발갛게 촛불 되어 타올라야 하느니라 (김승기·시인, 1960-) + 연꽃 - 화산 4 들끓는 용암 속에서 하얀 연꽃 피어날 수 있을까, 사랑이 지극하여 사람을 움직이고 한 마음 기도가 하늘에 닿으면 그대 있는 곳이 천국이 되고 불기둥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 낮달처럼 남이 알아주지 않고 살기 팍팍해도 결코 폭발하지 말아라, 마음 하나 돌이키면 그대는 그 모습 그대로 거룩한 하늘이요 살아있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김윤호·시인, 전북 고창 출생) + 연꽃처럼 내 얼마만큼 도를 닦아야 너처럼 흐린 연못에서도 맑게 살 수 있니? 우리가 어느 만큼이나 수행을 해야 둥둥 떠다니지 않고 너처럼 마음을 정하니 ? 모두가 어떻게 살아가야 너처럼 더러운 곳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니?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만 보라. 귀로 듣지 말고 가슴으로 들어라. 너는 소리 없이 말을 하고 미소짓는데 나는 무엇이 되어야 너처럼 고귀하게 행동을 하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너처럼 품위를 잃지 않고 환하게 세상을 밝히니? 모두가 몇 만겁이나 고행을 해야 너처럼 늘 엎드려 위대한 하늘을 우러러 사니? (최이인·시인, 전북 옥구 출생) + 가시연꽃 너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청순한 방울소리가 짤랑거렸다 나의 노새는 지치지도 않고 주인을 위해 흥겨운 걸음을 뒤뚱거렸다 이 나이 되도록 촘촘히 가시만 돋은 내 영혼의 정수리를 뚫고 오, 오늘은 눈부신 붉은 꽃이 피었다 (허형만·시인, 1945-) + 그리운 연꽃 등불 하나 - 變歌 1. 초파일에 그리운 연꽃 등불 하나 너를 위해 달았다 금산사 가는 산굽이 위에서 밤은 별들을 초롱같이 켜달았다 이 여름엔 나도 한 점 혼령이 될거나 눈 부릅뜨고 수묵화 같은 너의 숲을 헤매는 철 이른 반딧불이나 될거나. (한승원·시인이며 소설가, 1939-) + 연꽃우체통 바깥소식 궁금해진 버들붕어 송사리가 연못 속 꽃봉오리, 하나 둘씩 밀어 올린다. 어느새 세상에 앉아 제 몸 여는 빨간 연꽃. 일제히 물고기의 말들이 날아오른다. 사람의 마을 향해 환하게 열려있는 저 꽃은 빨간 우체통 두근거리며 바라본다. 편지를 배달하는 체관 물관 분주하고 글 읽는 말간 눈의 물고기가 보인다. 오늘도 연꽃우체통에 엽서 한 장 넣는다. (배우식·시인, 충남 천안 출생) + 연꽃과 진주 맑은 밤하늘이라야 볼 수 있는 어린 벗의 그 작은 별처럼 아주 작고 조용한 마음이다. 비 온 뒤에 나타나는 물방울의 축제, 무지개처럼 아주 곱고 수줍은 마음이다. 그 별 안에서, 그 무지개 위에서 너는 너대로 지금까지 나는 나대로 지금까지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살아 왔다. 묻고 싶군 사람이 꽃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연꽃이 되고 싶다. 묻고 싶군 사람이 보석이 될 수 있을까? 너는 진주를 꿈꾼다. 그 향기 안에서, 그 빛깔 위에서 나는 너 없이도 피어나고 너는 나 없이도 빛날 테지만 어차피 우리는 한 길 위에 있다. (유용선·시인, 1967-) + 연꽃 돈오의 꽃이여 수줍은 새악시 얼굴이로구나 분홍빛으로 단장하고 잎사귀 호위받으며 아름답게 피어있구나 돈오의 꽃이여 진흙 속에 뿌리내리고 있을지라도 이전투구란 사바세계에서만 싱싱한 단어일 뿐 그곳에서는 얼씬도 못하는구나 꽃봉오리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느낌표와 물음표가 교차하다가 마침표로 끝내기가 아쉬워 쉼표를 찍으며 잠시 쉰 후 말줄임표로 묵언정진하다가 처염상정 화개현실이란 의미를 깨닫고 가는구나 돈오의 꽃이여 (반기룡·시인) *돈오(頓悟): 일순간에 깨우침을 얻는 것. 깊고 묘한 교리를 듣고 단박에 깨닫는 것 *처염상정(處染想淨): 더러운 곳에 머물더라도 깨끗한 생각만을 한다는 의미 *화개현실(華開顯實): 꽃과 열매가 동시에 열린다 하여 인과율을 보여줌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