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 시 모음> 김종순의 '새순이 돋는 자리' 외 + 새순이 돋는 자리 새순은 아무데나 고개 내밀지 않는다. 햇살이 데운 자리 이슬이 닦은 자리 세상에서 가장 맑고 따뜻한 자리만 골라 한 알 진주로 돋아난다. (김종순·아동문학가) + 새싹들이 새싹들이 그 곱고 작은 손으로 흙을 밀치고 세상에 나올 적에 말은 않지만 많이 힘들답니다 새잎들이 가냘프고 여린 손으로 줄기를 뚫고 세상에 나올 적에 웃고 있지만 많이 아프답니다 (강인호·시인) + 새싹 어서 쑥쑥 자라나야지 봄비도 내렸는데 잎새도 꽃잎도 예쁘게 피워 올려서 생명 주신 내 님께 보답을 해야지 날 기다리는 모두에게 기쁨을 줘야지 (오보영·시인, 충복 옥천 출생) + 새싹 봄이 와서 대모산에 가면 통나무를 잘라 만든 계단이 있고 통나무마다 연둣빛 새싹이 돋는다 웬일인지 사람들은 산을 오르며 그 싹을 힘차게 밟고 지나간다 나도 사람이다 나는 적어도 그런 사람은 되지 않겠다 (정호승·시인, 1950-) + 새싹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듯, 봄이 오고 햇살이 밝아지면 가슴이 따가와 지긋이 감았다 울컥 떠보는 눈. 며칠을 두고 찾아와도 만날 수 없던 그 양달에 반짝이며 틔어오는 무수한 빛. 하늘이 열리기 전 잠시 맴을 돌며 사각사각 씹어내는 무슨 기미인가, 바람은… (강세화·시인, 1951-) + 새싹 얼음 같은 대지였었다 낮과 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차가운 사방을 베고 누워서 밤나무도 측백나무의 몸짓도 앙상한 단풍나무의 손짓도 꽁꽁 언 추위로 고갤 내밀 수 없었다 밤마다 눈물 글썽이는 별들이 안개로 다가왔고 날마다 언 입술 갖다 댄 햇살이 홀로 가슴앓이 했던 뜰 튜율립, 수선화 파릇파릇한 풀들이 기인 하품하며 기지개 켜고 고갤 내민 사랑, 그 따사로움에 돌아누울 수 없었다 (박정순·시인, 1960-) + 새순 돋는 것 보다가 오늘은 까닭 없이 눈물이 나네 햇빛 아래 새순 돋는 것 보다 눈물이 나네 멀리서 들리는 낮은 풍금소리 나이를 거꾸로 헤아려 보다가 서른 일곱 서른 여섯… 낡은 노래의 후렴구처럼 살아온 내가 부끄러워 새순으로 새벽으로 다시 살고 싶어라 살아갈수록 살아갈수록 먹빛 서러운 나날 (추명희·시인, 1950-) + 싹 어둠이 어둠인지 모르고 살아온 사람은 모른다 아픔도 없이 겨울을 보낸 사람은 모른다 작은 빛줄기만 보여도 우리들 이렇게 재재발거리며 달려나가는 까닭을 눈이 부셔 비틀대면서도 진종일 서로 안고 간질이며 깔깔대는 까닭을 그러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깊이 숨은 소중하고도 은밀한 상처 꺼내어 가만히 햇볕에 내어 말리는 까닭을 뜨거운 눈물로 어루만지는 까닭을 (신경림·시인, 1936-) + 새싹비빔밥 늦가을 찬바람에 온 들녘이 시름시름 앓더니 몸져 누워버린 지 한참이네 폭설로 곡기를 끊고 얼음으로 약 달여먹었는데도 도대체 낫지를 않네 방문 닫아걸고 이불 덮고 보낸 시간이 구석의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있고 한 석달 열흘은 굶었는지 오늘은 왠지 비빔밥 먹고 싶어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밖으로 나서는 것인데 흙을 뚫고 쑥 올라오고 있는 저것 죽은 목숨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고 삼월은 봄을 불러내고 있네 시신 같았던 저 들녘을 돌보느라 눈물에 핏물 흘린 이월 간을 다 맞춰놓았으니 나는 그저 수저만 들면 되겠네 햇살이 앞산과 뒷산을 걸어다니며 잘 비벼놓았으니 한 술 뜨고 싶어지네 목구멍 속으로 뜨거운 생 같은 것이 흘러가는데 내 살을 뚫고 쑥 올라오는 새싹에 마음까지 눈부시네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