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에 관한 시 모음> 김종길의 '아픔' 외 + 아픔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얼마만한 아픔 끝에 피어나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았다. 초봄부터 뜰의 철쭉 포기에서 꽃망울들이 애처롭게, 애처롭게 땀나듯 연둣빛 진액을 짜내던 그 지루한 인내를 지켜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되었다. (김종길·시인, 1926-) + 지조론 견딜 때까지 견디게나. 최후의 악이 부드럽게 녹아 인격이 될 때까지. 고통? 견디게나. 편안한 시간이란 쉬 오지 않는 법. 상처가 깊으면 어때. 깊을수록 정신은 빳빳한 법. 생각 끝의 끝에서라도 견디게나. 그 어떤 비난이 떼를 지어 할퀸다 할지라도 벼랑 끝에 선 채로 최후를 맞을지라도. 아무렴! 끝끝내 견디다가 산맥의 지리쯤은 미리 익혀놓은 후 영영 죽을 목숨일 때 바위, 뻐꾸기, 청정한 나무, 뭐 그쯤으로 환생하게. (박주택·시인, 1960-) + 견딘다는 것 견디고 있는 것들 많다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견디고 있는 것들 많다 가슴 서늘한 미루나무, 그렁그렁 눈물 머금은 초승달, 엄마 잃은 괭이갈매기, 또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눈 맞고 서 있다 견디고 있는 것들 많다 물은 물대로 땅은 땅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강은 강대로 내일 기다리는 희망이 문 열고 있다 (함진원·시인) + 견디다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황새와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는 낙타와 일생에 단 한 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새와 백년에 단 한 번 피우는 용설란과 한 꽃대에 삼천 송이 꽃을 피우다 하루만에 죽는 호텔펠리니아 꽃과 물 속에서 천 일을 견디다 스물 다섯 번 허물 벗고 성충이 된 뒤 하루만에 죽는 하루살이와 울지 않는 흰띠거품벌레에게 나는 말하네 견디는 자만이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가 그토록 견디는가 (천양희·시인, 1942-) + 인동초 외로울 때는 얼음처럼 엉키지도 말고 바람처럼 멀리 달아나지도 말고 스스로 겨울 속으로 들어가야지 감당하기 어려울 눈이 펑펑 쏟아진대도 뿌리가 얼 추위가 눈앞에 닥친대도 겨울이 주는 슬픔을 받아들여야지 슬픔이란 견디기 어려운 겨울 벌판 같지만 눈을 떠서 슬픔 속을 들여다봐야지 지금 기댈 곳이 꽁꽁 언 언덕일지라도 뿌리는 땅속에 묻어두고 참아야지 슬픔에 빠지지 않는다면 슬픔도 기댈 만한 언덕이지 (김윤현·시인, 1955-) + 견딤에 대하여 산은 제 무게를 견디느라 스스로 흘러내려 봉우리를 만들고 넘치지 않으려 강은 오늘도 수심을 낮추며 흐른다.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왜 견딤이 아니랴 꽃순이 바람에 견디듯 눈보라를 견디듯 작은 나룻배가 거친 물결을 견디듯 엎드린 다리가 달리는 바퀴를 견디듯 적막과 슬픔을 견딘다. 폭설로 끊긴 미시령처럼 생의 건너에 있는 실종된 그리움의 안부를 견딘다. (남유정·시인, 충북 충주 출생) + 아프게 하는 사람 주변에 나를 귀찮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없다면 인내심을 배울 수 없을 것입니다 나를 성가시게 하는 사람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해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원한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를 보내야 할 대상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근육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며 이해와 인내를 훈련할 기회를 주는 스승입니다. (텐진 빠모·영국 출생의 티베트 승려, 1943-) + 견디는 연습 삐걱거리는 인체 모형도처럼 못과 나사에 조여져야만 한다 딱 한 개 남아 흔들거리는 이처럼 먹먹한 사랑 한 조각, 가슴 한 켠에 밀어둔 채 서늘하게 계절을 기다려야만 한다 반병의 술처럼 남겨져서 내 삶의 여백을 삭여내고 있는 아픔이여, 차라리 앓고 있으니 행복한 것을 견딜 일 생겨서 살맛나는 것을, 그러니 말없이 끌어안고 눈물 흘리며 못과 나사를 조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견뎌낼 수밖에 없다 이 계절의 내 일과표는, (이진숙·시인, 1972-) + 명태가 황태 되기까지는 대관령 황태 덕장에서 명태가 황태 되려면 명태가 값나가는 황태 되려면 보통 4개월이 걸린다지 않던가 그래야 물건이 된다 속을 다 바라내고 아, 빈속에 저렇게 꼼짝없이 견디다니 대관령 강추위 아랑곳없이 눈 섞인 높은 바람에도 끄떡없이 맨몸으로 견디고 있다 맨 정신으로 버쩍버쩍 말라가는 명태, 얼었다가 녹으면서 명태가 녹았다가 다시 얼어야 알맞게 마른 황태가 된다 겨울 12월에서 3월까지 덕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채 명태가 황태 되기 위해 녹았다가 꽁꽁 얼었다가 얼어붙은 채 크게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서 외롭게, 꼿꼿하게 버티는 좋은 시 한 편 같은 명태, 그리하여 황태가 되어야 할 배를 가르고 속을 꺼내놓아도 버릴 것 하나 없다는 가장 서민적인 가장 한국적이라는 생선 눈 내리는 대관령 덕장에서 명태가 황태 되기까지는 (강세환·시인, 1956-) + 고난기에 사는 친구들에게 사랑하는 벗들이여, 암담한 시기이지만 나의 말을 들어주어라 인생이 기쁘든 슬프든, 나는 인생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햇빛과 폭풍우는 같은 하늘의 다른 표정에 불과한 것 운명은, 즐겁든 괴롭든 훌륭한 나의 식량으로 쓰여져야 한다. 굽이진 오솔길을 영혼은 걷는다. 그의 말을 읽는 것을 배우라! 오늘 괴로움인 것을, 그는 내일이면 은총이라고 찬양한다. 어설픈 것만이 죽어간다. 다른 것들에게는 신성(神性)을 가르쳐야지. 낮은 곳에서나 높은 곳에서나 영혼이 깃든 마음을 기르는 그 최후의 단계에 다다르면, 비로소 우리들은 자신에게 휴식을 줄 수 있으리. 거기서 우리들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을 것이리라. (헤르만 헤세·독일계 스위스인 시인이며 소설가, 1877-196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