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시모음> 이해인의 '행복의 얼굴' 외 + 행복의 얼굴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정말 아닙니다 마음의 문 활짝 열면 행복은 천 개의 얼굴로 아니 무한대로 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합니다 어디에 숨어 있다 고운 날개 달고 살짝 나타날지 모르는 나의 행복 행복과 숨바꼭질하는 설렘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 오늘도 행복합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행복을 비는 노래 내 앞에 행복 내 뒤에 행복 내 아래에 행복 내 위에 행복 내 주위 모든 곳의 행복 (나바호족 인디언의 노래) + 행복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도 비에 흠뻑 젖을 수도 없잖아 누구를 기다릴 수도 누구에게 버림받을 수도 없잖아 죽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피는 꽃잎에 입맞춤할 수도 지는 꽃잎에 서러울 수도 없잖아 나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눈물을 흘릴 수도 한숨지을 수도 없잖아 삶의 모든 슬픔과 괴로움도 살아서 누리는 행복 (정연복·시인, 1957-) + 행복 난 참으로 행복한 놈이다 남을 억누르며 못살게 구는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는 그러한 힘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난 참으로 행복한 놈이다 그 무엇보다도 내 육신이 언제나 남에게 얻어터질 수 있는 아주 작은 볼품없는 몸뚱아리라는 것이 그리하여, 남을 하나도 때려눕힐 수 없다는 것이 (정세훈·시인, 1955-) + 행복의 무게 겨우내 장바구니 가득해도 배부르고 넉넉해지는 행복이다 세상에는 하루 세 끼를 못 먹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 욕심을 버린다면 하루 벌어 하루 먹어도 행복이다 이 순간까지 살아 있어 행복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생이 더욱 행복이다 행복은 그림자도 밝다 (최호림·시인, 1939-) + 삶의 기쁨 이 세상에는 아주 작은 행복이 너무나 많다 너무나 작아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 조각들을 붙여가며 큰 행복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크나큰 기쁨이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행복은 짧다 꽃잎이 진다고 슬퍼하지 마라. 행복은 짧은 법이다. 꿈을 위해 말없이 행복을 떨구는 꽃잎은 누구보다 아름답다. 물길을 딛고 선 뿌리와 사철 햇살을 이고 사는 푸른 잎들도 하루 꽃을 위해 몸을 던진다. 행복이 짧다고 슬퍼하지 마라. 밤새워 쓰던 긴 편지보다 만남의 기쁨은 짧지 않던가. 우리가 가는 길이 그러하듯이 언제나 꿈보다 행복은 짧은 법이다. (이남일·시인, 전북 남원 출생) + 죽음의 행복 흰나비야 그렇게도 후박꽃 향기가 좋더냐 향기 속에 푹 파묻혀 생명까지 묻어 버린 너는 행복하여라 달콤한 향기를 영원히 간직하고 누가 생의 종말을 꽃 속에서 달콤한 향기 속에서 생의 날개를 접을 수 있으리 너는 죽었어도 행복하여라 인생도 꽃의 향기에 취해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리 (이승구·시인) + 행복론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최영미·시인, 1961-)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