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시모음> 이영균의 '꽃비를 맞으며' 외 + 꽃비를 맞으며 저 꽃양산 누굴 위해 저리 활짝 펴들고 섰을까 하염없이 꽃잎 뿌리며 봄볕에 말 붙여 오는 벚나무 저 곤한 발자국들 그 까뭇한 속 활짝 펴지도록 다가가서 하얀 꽃양산 곱게 씌워주렴 (이영균·시인, 1954-) + 꽃 다비 4월 저 벚나무 꽃불 탑이다 사리 몇 알 얻으려고 소신공양 중이다 (임보·시인, 1940-) + 벚꽃이 훌훌 벚꽃이 훌훌 옷을 벗고 있었다 나 오기 기다리다 지쳐서 끝내 그 눈부신 연분홍빛 웨딩드레스 벗어던지고 연초록빛 새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나태주·시인, 1945-) + 나는 빗자루를 던져 버렸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모두를 마당을 씁니다. 전날 몹시 분 바람 덕에 분홍빛 벚꽃잎이 마당 가득 피었습니다. 옹기종기 입을 맞춰 노래하고 있습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어여쁜 꽃잎을 그 고운 살결을 도저히 쓸어낼 수 없습니다. (원성·스님, 1973-) + 벚꽃 활짝 피던 날 그대처럼 어여쁘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누가 나를 반기겠습니까 어쩌자고 어떻게 하려고 나를 끌어당기는 것입니까 유혹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내 가슴을 왜 불타게만 합니까 그대를 바라봄이 행복합니다 그대의 향기에 온몸이 감싸입니다 그대로 인해 내 마음이 자꾸만 자꾸만 술렁대고 있습니다 그대는 마음을 다 드러내놓고 온몸으로 노래하는데 나는 무엇을 그대에게 노래해야 합니까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산벚꽃 그늘 아래 - 취밭목 저건 소리 없는 아우성 같지만 실은, 너에게 보이려는 사랑한다는 고백이야 생각해 봐 저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그것도 겨울밤을, 비탈에 서서 발 동동 구르며 가슴 졸인 줄 생각해 보라구 이제사 너가 등이라도 기대주니까 말이지 저렇게 환히 웃기까지의 저 숱한 사연들을, 고스란히 몸 속에 품어두었던 그 겨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니 생각해 보면, 뭐 세상 별것 아니지만 먼 산만 싸돌아다니던 너가 그저, 멧꿩 소리 한가한 날 잠시 옆에 앉아 낭낭히 시라도 몇 줄 읽어주며 "정말 곱구만 고와" 그런 따뜻한 말 몇 마디 듣고 싶었던 거라구 보라구, 봐 글쎄, 금방 글썽글썽해져 꽃잎 후두둑 눈물처럼 지우잖아 (권경업·시인, 경북 안동 출생) +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청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이기철·시인, 1943-) + 벚꽃 지는 날에 가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더 알 수 없는 눈물이 푸른 하늘에 글썽일 때가 있다 살아간다는 것이 바람으로 벽을 세우는 만큼이나 무의미하고 물결은 늘 내 알량한 의지의 바깥으로만 흘러간다는 것을 알 때가 있다 세상이 너무 커서 세상 밖에서 살 때가 있다 그래도 기차표를 사듯 날마다 손을 내밀고 거스름돈을 받고 계산을 하고 살아가지만 오늘도 저 큰 세상 안에서 바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나는 없다 누구를 향한 그리움마저도 떠나 텅 빈 오늘 짧은 속눈썹에 어리는 물기는 아마 저 벚나무 아래 쏟아지는 눈부시게 하얀 꽃잎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승동·시인, 1957-) + 벚꽃, 지다 꽃샘추위 심술 슬그머니 뿌리치고 나 보란 듯이 수많은 알갱이 하얀 불씨로 피어나 한밤중에도 환히 불 밝히며 엊그제까지만 해도 가지가 출렁일 듯 빛이 번성하더니 밤새 내린 가랑비 한줄기 봄바람도 못 이겨 아롱아롱 슬픔의 눈(雪)으로 내려 갓난아기 앙증맞은 손톱 같은 작디작은 이파리들 소복소복 꽃길 되어 뭇 사람들의 억센 발길 아래 스러지더니 아, 어느새 벚꽃 가지마다 연초록 눈부신 잎새들 무성하여라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