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과 열반 시 모음> 차성우의 '해탈' 외 + 해탈 비 그친 아침 햇살에 빛나는 풀잎처럼 지니인 모든 것 다 씻어내니, 부질없는 몸뚱이 하나만 남네. (차성우·교사 시인) + 아내 - 해탈 달이나, 별이나, 아마 당신은 그랬었지요 때론 바람에 날리는 풀잎도 같고, 하염없이 밀려오는 파도도 같고, 아마 당신은 그랬었지요 이젠 다만 한 개의 쓸쓸한 웃음일 뿐입니다 나를 이미 해탈해버린 당신은 (김영천·시인, 1948-) + 해탈(解脫) 진정한 자유를 얻고 싶어 그 어느 것에도 속해 있지 않은. 내 안에서 밖으로 드넓은 밖에서 내 안으로 아무것도 없으나 가장 많이 지닌 마음의 해방을 얻고 싶어. 집착과 욕심으로 얼룩진 이기심으로 번뇌는 극에 달해 더 이상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만년한철 끊을 수 없는 결박을 풀고 싶어. 비워진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아무런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맑고 향기롭게 열반으로 향하는 길을 어서 빨리 가고 싶어. (강해산·시인, 경남 출생) + 해탈 해탈이 어찌 내 품에 안기기를 바라겠는가 남한산성 가는 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바람에 가지 씻고 서 있는 나무들을 본다 아무 미련 없이 남은 단풍잎을 털고 있는 느티나무 고목한테 해탈이 찾아와 노는지 빈손을 흔들어 보이며 허허 웃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나도 몸 가뿐하게 버릴 것 버리고 나면 해탈이 찾아와 줄까? 눈 반쯤 내려 감고 무릎 위에 두 손 가볍게 올려놓을 수 있을까? (김태준·시인) + 마음의 열반 삶을 살아감에 부끄럼이 없고 마음의 병 또한 걸림이 없었으니 두려움마저 없어 잘못된 망상은 떠나고 마침내 우리는 삶의 정점에 이르러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마음의 열반에 이르네. (강봉환·시인, 1956-) + 열반 눈만 뜨면 온 세상이 부처 안의 우주이건만 이유 없는 아픔에 까닭 없는 설움 합장하고 선 중생 내려다보시는 화안 미소에 몸둘 바 몰라 가슴속 울음 접습니다 경내의 나뭇가지들 자신의 현으로 노래하고, 높이 솟는 불경 소리 가없이 퍼질 때 님의 뜨락에 날개 접고 오수를 즐기고 싶습니다 잠깐이나마 그대 품안에 들고나면 보이지 않던 사랑 보이고 들리지 않던 기쁨 들리지 않을런지요 고통스런 얼굴 펴지고 진한 한기 사라지지 않겠는지요 곰곰이 생각해도 아직 깨닫지 못한 일 미미하나 조금은 깨우치지 않겠는지요. (김희숙·시인) + 열반 삶은 돼지머리, 삶은 돼지머리 양쪽 콧구멍에 시퍼런 돈을 꽂고 고사상 가운데 앉아 큰절을 받고 있는, 月出山 月燈寺에 이제 막 떠오르는 초생달 같은 눈에 곧추선 속눈썹을 하나씩 뽑아 당겨도 눈도 깜짝 하지 않는, 아아 저 염화시중(拈花示衆)의 절묘한 미소를 짓고, 자네 열반이 란 게 무엔지 아느냐며, 다시금 으하하하하 웃고 있는 돼지머리. (이종문·시인, 1955-) + 멸치의 열반 눈이 꼭 클 필요 있겠는가 검은 점 한 개 콕 찍어 놓은 멸치의 눈 눈은 비록 작아도 살아서는 바다를 다 보았고 이제 플랑크톤 넘실대는 국그릇에 이르러 눈 어둔 그대들을 위하여 안구마저 기증하는 짭짤한 생 검은 빛 다 빠진 하얀 눈 멸치의 눈은 지금 죽음까지 보고 있다 (장용철·시인, 1958-) + 낙엽의 열반 겨울 숲길을 걸어가니 밟히고 밟혀 더 이상 부서질 것 없는 낙엽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내 발을 받쳐 준다. 낙엽은 으깨지고 으깨져야만 찢기고 찢겨야만 제 고향으로 제 뿌리에게로 가는가 제게로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도 힘이 드는가 발을 옮길 때마다 낙엽이 밟힌다. 낙엽은 이미 오래 전 바스락 소리도 잊고 아픔도 잊은 듯 평화롭기만 하다. 고요하고 고요한 낙엽들이 스며들고 있구나 저만치 오고 있는 봄 속으로 (차옥혜·시인, 194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