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시모음> 박봉우의 '밤하늘' 외 + 밤하늘 잃은 길도 별들을 보면 안다. 사랑도 별들을 보면 안다. (박봉우·시인, 1934-1990) + 저녁별 강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다 오는 소년이 저녁별을 쳐다보며 갑니다 빈 배 딸그락거리며 돌아오는 새가 쪼아먹을 들녘에 떨어진 한 알 낱알 같은 저녁별 저녁별을 바라보며 가축의 순한 눈에도 불이 켜집니다 가랑잎처럼 부스럭거리며 눈을 뜨는 풀벌레들을 위해 지상으로 한없이 허리를 구부리는 나무들 들판엔 어둠이 어머니의 밥상포처럼 덮이고 내 손바닥의 거친 핏줄도 풀빛처럼 따스해옵니다 저녁별 돋을 때까지 발에 묻히고 온 흙 이 흙들이 오늘 내 저녁 식량입니다 (이준관·시인, 1949-) + 별 멉니다 아련하옵니다 불가사의합니다 신비롭습니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사람이 사는 별이 있을까 하는 순간, 한 눈물이 떠올랐습니다 반짝, 반짝. (조병화·시인, 1921-2003) + 별 호숫가에서 보았지 우르르 은빛으로 쏟아진 별들의 살 스스로 깎아내지 않으면 제 빛 낼 수 없는 하늘 벽에 촘촘히 기대어 서서 저마다 주고받는 눈빛이 유난히 환한 새벽 (조미선·시인 경남 진주 출생) + 별 우리 마을에 하나 둘 불이 켜지면 하늘 마을에도 하나 둘 불이 켜진다. 낮에는 안 보이던 커다란 마을. 놀 지자 하나 둘 별이 켜진다.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 별 하늘을 올려다보기 전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좋은 점을 찾기 전에는 그대의 단점만 보였습니다 세상 보이는 것이 마음먹기 달려 있었습니다 그대의 착한 점만 보일 때까지 당신의 별지기가 되겠습니다 (홍수희·시인) + 별 같은 말도 굴릴 때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 한때는 별이 금은金銀의 소리를 냈다. 그 소리 아주 가까이에서 들리는 듯했다. 요즘 서울의 하늘에는 별이 없다. 별은 어디로 숨었나. 나뭇가지에 걸린 그림자처럼 할쑥하게 바래진 누군가의 그 그림자처럼 바람에 흔들리다 흔들리다 제물에 사그러진다. 혓바닥을 칫솔질하는 어디선가 그런 소리가 난다. 지금 나는 별이란 말을 새삼 잇새로 굴리고 있다. 참 오랜만이다. (김춘수·시인, 1922-2004) + 별을 보며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이성선·시인, 1941-2001) + 별빛 아래 별이 흘러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왜 한 번도 웃음 짓지 못했던가 별이 빛나는 밤길을 홀로 걸으며 나는 왜 늘 젖은 눈이어야 했던가 가만히 들여다보는 별은 왜 언제나 글썽이는 눈동자인가 별은 스스로 빛나는 별이 아니라 누군가의 빛을 받아 빛나는 존재 먼 우주의 어둠을 뚫고 와 내 심연에 닿아 빛나는 별들 눈물처럼 글썽이는 별빛 아래 나는 왜 젖은 눈으로 미소 짓는가 내 빛이 아닌 빛에 울고 내 안의 빛에 미소 짓고 별이 지나가는 계절의 밤길에서 나는 왜 글썽이는 눈동자로 미소 짓는가 (박노해·시인, 1958-) + 별 누가 내 살점 죄다 뜯어 저 하늘에 흩뿌려 놓았나 파들파들 떨고 있는 살점들 누가 저 하늘 죄다 뜯어 지상에 흩뿌려 놓았나 뜯긴 자리마다 빛나는 상처 하늘의 살점인 나와 나의 살점인 별 피 흘리는 것들은 밤새 핏줄이 그립다 (양건섭·시인, 1962-) + 별을 바라보라 별을 바라보라 뜨겁게 자기를 불사르는 먼 곳의 별을, 그러나 저 별을 떠나온 빛은 이리도 차갑구나 별을 바라보라 얼음꽃 같은 빛을 뿌리는 저 추억의 불덩어리를 나를 별처럼 불태운 적이 있었다 내 사랑이 나를 별보다 뜨겁게 타오르게 한 시절이 있었다 그후로 내 사랑의 불길로부터 도망쳐 나 세월보다 빠르게 여기까지 왔다 빛의 속도가 그녀를 데려가버린 지금, 그 옛날 나를 태우던 불덩어리만 별빛으로 반짝인다 지상의 연인들이여, 별을 바라보라 눈 시리도록 차갑게 빛나는 저 열애의 흔적을 (유하·시인, 1963-) + 별 사람은 누구나 별이지 광활한 우주 속 어느 한 점의 별. 혼자서는 많이 외롭겠지만 저기 나 아닌 또 다른 별이 있어 별들은 서로 잇대어 반짝반짝 빛나지. 나 살아서나 또 죽어서도 영영 이 세상 누군가의 맘속에 작은 빛 하나로 남으리.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