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를 위해 약속을 해본 적이 있는지요?
그렇다면 사랑하는 이에게 한 약속을 지킴으로써
그 사랑이 더욱더 아름답고 위대해짐을 느껴본 적은 있는지요?
제 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군 소위 루이지는 적지였던
그리스의 작은 마을에서 안겔리키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녀가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을 알고 군인들에게 배급된 식량을 그녀에게 몰래 갖다 주었습니다.
그렇게 음식을 가져다 주며 몰래 만났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모국어를 가르쳐 주며 둘만의 사랑을 키워 나갔습니다.
이탈리아가 항복해 고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루이지는
마침내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수습된 후 내가 돌아오면 결혼해 주겠소?"
그녀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루이지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띄웠지만
적군과 사귀는 것을 눈치 챈 그녀의 고모가 중간에서 편지를 가로채는 바람에 안겔리키는 편지를 받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끝내 답장 한 번 못 받아본 루이지는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부인을 먼저 여읜 루이지는,
어느 날 문득 그녀의 소식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그녀의 행방을 애타게 수소문하게 됐고,
마침내 재회하는 날이 돌아왔습니다.
백발이 성성해 돌아온 옛 연인을 보고 안겔리케가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50여 년 전의 청혼을 믿으며 그녀는 그때까지 독신으로 지내온 것입니다. 병약한 노인이 된 루이지와 안겔리키, 여든 살을 목전에 둔 두 노인은 다시 한번 결혼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안겔리키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안타깝게도 끝내 세상을 뜨고야 말았습니다.
이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