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쪽에 있던 건달 한명이 그를 부르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인상을 쓰면서 뒤를 쳐다보았다.
'너 지금.....'
'아 형님..왠만하면 제가 해결할라고 했는데요.. 저기 큰형님 전화라서요..'
그는 다시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뒤로 돌아가며 전화를 받았다. 난 맥이 풀려 꽉 쥐었던 손을 밑으로 내렸다.
'예..형님 접니다..'
'예... 예.... 아니 그래도 어떻게...'
'.................'
'예... 예... 예 알겠습니다.. 형님 섭섭한 마음 감출길이 없습니다..'
누구한테 전화가 왔던 것일까.. 그는 전화를 받고나서 그 자세로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며 서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내게 한발자국씩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난 다시 주먹을 불끈쥐어 위로 올렸다. 와라 이 건달XX야.. 이 더러운 세상 .. 비록 네 손에 죽는게 아쉽기는 하다만..
내 기필코 너에게 내 주먹을 선사하고 죽으리라.....
그런데 그는 나에게 다가오다가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다시 멈춰섰다.
얼라...저XX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난 그의 눈을 맹렬한 눈빛으로 계속 쳐다보았다.
한발자국만 더..한발자국만...... 그런데 그때였다.
'휙~~~~'
뭔가가 내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더니, 내 바로 앞옆에 있는 벽돌에서 뭔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난 깜짝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오른손이 으스러진 벽돌 사이에 박혀있었다.
난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당황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그는 피가 흐르는 손을 벽돌에서 빼더니, 나를 잠깐동안 바라보다가 뒤로 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그냥 가는건가..
난 긴장이 풀린탓인지 온몸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런데 왜.... 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나를 구해준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아마도 아까 맞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는지 차에 가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 삼촌은 부하들에게 손을 들어 뭔가를 지시하는 것 같더니, 나와 반대편에서 뒤쪽 차문을 열더니 헤드라이트 아래에서 사람 한명을 끄집어 뒷자석에 집어 넣고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머지 건달들도 어둠 속에서 부상자들을 들쳐메고 부축하고 하면서 부산을 떨더니만, 하나 둘씩 다들 자신들이 달려왔던 길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남은건 내 위의 가로등 불빛.. 그리고 나..
그리고 저쪽 어둠속에 떨어진 그의 윗양복...뿐이었다. 그.. 그는 죽었을까 .. 살았을까..
그런데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들이 사라져간 어둠속을 지켜보고 있었을 때였다.
' 박진석 군이라고 했나??'
난 순간적으로 고개를 틀어 소리가 나는 문쪽을 바라보았다. 문은 언제 모르게 열려있었고, 거기에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남자 한명이 서 있었다.
인상 좋은 얼굴, 오똑한 코, 난 직감으로 이 남자가 성미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미 아버지가 나를 구해준 건가.. 난 놀란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예....'
'자네 우리 성미를 진심으로 사랑하나..?'
'예..예.....'
'그런데 난 평범한 사람을 내 사위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내..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예..........'
그는 이 말에 절망적인 얼굴을 하는 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법 고시 공부를 한다고 했던가..?'
'예...예.....'
'..........'
'2년의 시간을 주겠네. 집과 돈과 공부에 필요한 모든 것은 다 내가 제공해 주지.
자네는 오로지 공부만을 하게. 그래서 2년안에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내 딸을 주지.
하지만 2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때는 내 딸을 포기하게.. 알겠나??'
'......예..예.....'
난 고개를 떨구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눈에서는 .. 뭐랄까..
아까와는 다른 안도의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나를 인정해 주셨다..
2년의 시간을 주셨다.. 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감사합니다.....'
그녀 아버지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신채, 다시 뒤로 돌아 집쪽으로 걸어들어 가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집쪽에서 문으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난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녀..그녀였다.
그녀는 얼굴이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범벅이 된채 내게로 달려오더니, 그대로 내 품에 안겼다.
'오빠~~~~~~~~~~~'
'성미야~~~~~~~~~'
난.. 그녀를 다시 찾았다. 아니.. 내 모든걸 다시 찾은 듯 했다.. 내 눈에서도, 그녀 눈에서도 ..
끊임없이 안도의 눈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이대로 다시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