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로 절단한 탯줄 저편에 있는
전생이, 어느 날 나를 찾아 왔다
모퉁이를 돌던 버스가 휘청하는 순간
접어둔 우산에 고인 물이 그에게로 튕겼다
─ 전생에, 제가 빚진 것이 있나 봅니다
박꽃 웃음 환하게 피우던 그의 얼굴
계산하지 못한 전생 연(緣)을 무심결에
그는 보았던 것일까
곡각 지점에서 길을 잃은 나를 다시
사람 속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를 잠시 만났다
버스에서 내리지 전, 짧은 2분
온몸을 간질이는 알레르기 웃음 꽃 피게 하는
떠올리면 병리학적 증세를 일으키는
그를 만났다
몸이 있으므로 업(業)이 있고
업(業)이 있으므로 몸이 있다
그에게서 받은 전생 빚은 내가 갚아야 할 몇 겁의 빚,
삭제되지 않은 전생 인연들이 기록된
차용증서였다
그날 이후 나는,
모르는 사람이 내 발을 밟으면
내밀하게 숨긴 마음 창을 살짝 열어 두고
─ 전생에, 제가 빚진 것이 있나 봅니다
하며 전생 빚을 갚는다
둥그런 배꼽에 묶어둔 전생 빚, 그에게서 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