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쁜 빨간 재채기
"내가 너의 라토가 되어줄게."
처음 이 말을 내 친구에게 들었을 때, 나는 저게 무슨 뜬금 없는 소리인가 했다.
그런데 며칠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우연히
'얼굴 빨개지는 아이'라는 책을 집어 들게 되었고,
나는 그제서야 내 친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르셀링 까이유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이다.
그는 이유가 없이 얼굴을 붉히고 얼굴을 붉혀야 할 땐 짐짓 태연한 얼굴을 한다.
학교 친구들은 늘 그의 빨간 얼굴을 놀리고 그것을 참을 수 없었던 까이유는
점점 친구들과 멀어진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갈 때마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하면서
까이유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쟝 자크 상페의 간결한 문장 몇 줄과 그림 몇 장은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만들었다.
하지만 까이유는 생각한다.
그건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그리고 그에겐 아무 때에나 재채기를 하는 것이
역시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친구, 라토를 만나게된다.
왜 그들은 그것이 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방을 뒤엎어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 부모님께 심한 꾸중을 듣고,
멋진 바이올린 연주를 어이없는 재채기로 망치기가 일쑤면서.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정말 서로의 병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라토는 홍역을 치를 땐 자신의 얼굴이 까이유처럼 빨갛게 변할 수 있다고 좋아했고
까이유는 감기에 걸리면 라토처럼 재채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했다.
난 그런 모습을 보며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이 감싸주기만 한다면.
책을 덮은 후에도 어른이 된 라토와 까이유가 잔디 위에 앉아 있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서로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그들은 함께 있어서 즐겁다.
그들의 옆에서 함께 뛰어 노는 그들의 두 아이들도
서로의 결함을 소중히 여기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낼 것이다.
다른 이야기처럼 그들은 굳이 상대방의 병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같이 웃고 즐기면서 이해해줄 뿐이다.
마치 내 추상적인 말투를 멋지다며 따라하는 나의 '라토' 친구처럼.
각박한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든 상대의 결점을 찾아내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사람들.
그들이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더 깊게 파고있는 이가 과연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책을 읽고 난 지금,
줄곧 짜증만 부렸던 내 친구에게도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라토야, 이젠 내가 너의 까이유가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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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장자끄 상뻬
출판사: 열린책들
출판일: 1999년 5월 30일
정가: 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