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대화하는 시 모음> 나태주의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외 +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나태주·시인, 1945-) + 기도의 편지 하느님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합니다. 하늘 가득 먹구름으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건 당신의 일이지만 그 빗방울에 젖는 어린 화분을 처마 밑으로 옮기는 것은 나의 일, 하늘에 그려지는 천둥과 번개로 당신은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만 그 아래 떨고 있는 어린아이를 안고 보듬으며 나는 아빠가 있다는 것으로 달랩니다. 당신의 일은 모두가 옳습니다만 우선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쓸쓸함으로 외로워하는 아직 어린 영혼을 위해 나는 쓰여지고 싶어요. 어쩌면, 나는 우표처럼 살고 싶어요 꼭 필요한 눈빛을 위해 누군가의 마음 위에 붙지만 도착하면 쓸모 다하고 버려지는 우표처럼 나도 누군가의 영혼을 당신께로 보내는 작은 표시가 되고 싶음은 아직도 욕심이 많음인가요. (서정윤·시인, 1957-) + 하나님 놀다 가세요 하나님 거기서 화내며 잔뜩 부어 있지 마세요 오늘따라 뭉게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들판은 파랑물이 들고 염소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데 정 그렇다면 하나님 이쪽으로 내려오세요 풀 뜯고 노는 염소들과 섞이세요 염소들의 살랑살랑 나부끼는 거룩한 수염이랑 살랑살랑 나부끼는 뿔이랑 옷 하얗게 입고 어쩌면 하나님 당신하고 하도 닮아서 누가 염소인지 하나님인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놀다 가세요 뿔도 서로 부딪치세요. (신현정·시인, 1948-2009) + 어찌할까요 하느님 오늘도 새벽보다 부지런히 새보다 착하게 살았습니다. 풀 속에 개구리 한 마리 밟지 않았구요. 징그런 뱀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배추밭에 벌레한테는 얼른 먹고 나비가 되거라 그렇게 살았습니다. 지금은 수요일 밤 변소에 앉아 교회 종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가야 하는데, 교회에 가야 하는데, 저는 똥이 나오지 않습니다. 버려야 할 걸 버리지 못하고 어찌 하느님 앞에 두 손 모으겠습니까. 아무리 힘주어도 나오지 않는 그것이 똥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용서하세요 하느님. 오늘도 교회에 못 갈 것 같습니다. 제겐 급한 일이 똥을 누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긴급 사항입니다. (김종구·시인, 1957-) + 아침 인사 아! 잘 잤다. 하느님도 잘 잤어요? 어젯밤에 뭐라고 기도했더라? 생각 안 나도 꼭 들어주셔야 해요. (이옥용·아동문학가) + 하느님의 실수 하느님! 빨강, 주황, 노랑, 분홍 장미는 다 있는데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 장미는 왜 안 만드셨어요? (송예진·서울 계남초등학교 3학년) * 2004년 제3회 한국 어린이 시문학상 수상작품집 + 부탁합니다 하느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게 해 주세요. 그래야 손뼉이 쳐지잖아요. 잘한다고 맞장구도 쳐주잖아요.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별똥별 하늘에서 반짝 단추 하나가 떨어졌어요. 하느님 무슨 일이 있었나요? 누가 서로 멱살잡이라도 했나요? 땅에서 죄 지은 사람이 그리로 가서 싸움을 했나요? 말려 주셔요 하느님, 이 땅의 싸움도요. (박두순·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