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잔치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넓은 마루 가득 햇살들의 오구탕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죠.
베란다 앞 목련 사이로 들어온 늙은 햇살은
“여러 별을 들려서 오느라고 힘이 들었어.”
산수유 빨간 열매에서 톡 튕겨 나온 싱싱한 햇살은
“나는 지구가 궁금해서 곧장 왔어요.”
단풍 잎 사이로 미끄럼을 타듯 내려앉은 꼬마 햇살은
“오다가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이젠 나 혼자 다닐 수 있어요.”
철푸덕 둘러앉아서
지구는 너무 어지럽다는 둥,
자기들이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둥,
싶지 않다는 둥, 내일은 목성으로 떠날 것이라는 둥,
고양이 지누도 그들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듯.
더 놀다 가라는 나의 만류에도
툭툭 자리를 털고 앞 산 그늘로 돌아갈 때까지
쏘파에 기대어 즐긴 나른한
늦가을 오후의 정밀.
해마다 찾아오는 추위이건만
점점 더 낯설어지는 11월의 문턱을
어린 시절
우산이 없어 흠뻑 비를 맞고 돌아오면
흙바닥 정지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덥히고
이불을 돌돌 말고 앉아서
우산을 못 갖다 줘서 미안해하며
엄마가 바친 주전부리감을 즐기던
보슬보슬한 따뜻함으로 넘어볼까
코앞에 다가온 입동...
겨울잠을 자고 싶으이.
정지 ; 부엌
오구탕 ; 매우 시끄럽게 떠드는 것
정밀 ; 고요하고 편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