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와 꼴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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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신은 퇴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중앙선을 넘은 차가 달려드는데도 멍청하게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는 채신의 형편없는 운전솜씨를 더는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현준은 내가 운전학원에 등록했다는 말을 듣더니 ‘드디어 너도 나처럼 남들이 사상의 신자가 됐군. 남들 다 하는 운전을 배우려 하니 말야.’ 하며 헛소리를 했다. 정말 뭣 때문에 사는 인간인지 알 수가 없다.
채신은 언제나처럼 태교를 한다며 어디서 빌려왔는지도 알 수 없는 영국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영화를 보고 있자니 졸음만 밀려왔다. 더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어 침대로 가서 누웠는데 초인종이 울리는 바람에 잠이 확 달아났다.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보니 매제가 와 있었다.
“매제가 이 시간에 웬 일이야?”
“전 더는 못 참겠어요. 이건 지가 임신 좀 했다고 완전히 황후처럼 군다니까요.”
또 싸운 모양이었다. 하긴 그 일이 아니라면 매제나 여동생이나 우리집에 올 리가 없는 인간들이다.
“누구야?”
안방에서 채신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싸운 거야?”
“그런 거 같애. 난 정연이한테 잠깐 갔다 올게.”
나는 매제와 함께 집을 나왔다.
매제와 같이 여동생 집에 도착하니 임신을 해 배가 불러 온 정연은 생전 듣지도 않던 교향곡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놀라 정연이한테 물었다.
“니가 웬 일이냐? 생전 듣지도 않던 교향곡을 다 듣고.”
“태교를 하는 중이야. 모차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인데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괜찮다니까.”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그 곡은 모차르트의 곡도 미완성 교향곡도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너같이 멍청한 여자랑 결혼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어떻게 모차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냐? 그건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야.”
“웃기지마. 이 곡은 모차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야. 그리고 넌 할 말 없어. 꼴뚜기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오징어나 사 가지고 와 놓고선.”
“이 근처에 꼴뚜기 파는 데가 없어서 오징어를 사 온 거라고. 꼴뚜기와 오징어는 사촌이라고.”
“꼴뚜기랑 오징어가 사촌이라니? 세상에 그런 억지가 어딨어? 사 오기 싫으면 솔직히 사 오기 싫다고 말해. 그런 억지 부리지 말고.”
“뭐가 억지라는 거야? 꼴뚜기랑 오징어는 정말 사촌이야. 같은 오징어라니까. 그리고 넌 지금 다른 여자들 다 하는 임신이 지금 대단한 거라고 착각하면서 나 보고 이게 먹고 싶다 저게 먹고 싶다 하면서 이것 저것 사 오라고 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바꾸자. 내가 애 낳을 테니까 니가 내가 먹고 싶다는 거 사다 줘.”
정연은 기가 막히다는 듯 매제를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어쩜 저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정말 태어날 애가 걱정이다.”
그 말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했다. 이런 바보 같은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는 애는 안 봐도 고생할 게 뻔하다. 그래서 나도 한 마디 했다.
“저기 내가 아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지금 나오는 이 곡은 말이야. 모차르트의 미완성 교향곡도 아니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도 아니야. 이건 베어토벤의 합창이라고.”
내 말에 이 세상에 둘도 없을 거 같은 바보 부부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나를 보더니 갑자기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둘이 왜 웃는지 알 수가 없어 의아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한참동안을 웃던 매제가 웃음을 멈추더니 말을 꺼냈다.
“처남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베어토벤은 귀머거리잖아요? 귀머거리가 작곡을 하다니 그게 어디 말이 돼요?”
“그래. 오빠는 정말 멍청해. 귀머거리가 이런 훌륭한 일을 작곡하다니 그게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런 건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건데 어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하긴 나처럼 현명한 인간이 이런 바보 같은 인간들과 같이 있다보면 바보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왔다. 저런 바보 같은 부모밑에서 머지 않아 태어날 애가 불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