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채신은 어떻게 운전면허증을 땄을까? 정말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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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었다. 실컷 자고 싶었는데 채신이가 놀러 가자며 나를 깨웠다. 나는 놀러갈 생각은 전혀 없었고 자고 싶을 뿐이었다. 다른 날 안 자는 건 아니지만 일요일은 정말 실컷 자고 싶다. 그래서 채신이의 말이 듣기 싫다는 듯이 이불을 뒤집어 썼는데 채신은 이불을 걷어 버렸다.
“무슨 남자가 일요일만 되면 잠만 자려고 그래? 놀러 가자니까. 휴일 날 집에서 잠만 자며 낭비하는 시간이 아깝지도 않아?”
나는 잠이 확 달아났다.
"안 아까워.“
“거짓말 하지 마. 니 눈에 나랑 같이 좋은 곳에 놀러가고 싶다는 말이 다 써 있어.”
기가 막혔다.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야? 그리고 내가 놀러 갈 시간 있으면 차라리 남들이 딸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나 한 번 더 찾아가겠다. 친구는 달이 몹쓸 병에 걸려서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데 내가 놀러 다닌다는 게 말이 돼?”
“병문안은 어제도 다녀왔잖아? 그리고 니가 집에서 잠만 자면 니 친구 딸 병이 낫고 놀러가면 병이 악화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어? 그러니 쓸데 없이 잠잘 생각하지 말고 나갈 준비를 하라고. 난 김밥까지 다 쌌으니까.”
“뭘 했다고?”
“김밥 만들었다니까. 우리 놀러가서 점심은 먹어야 할 거 아냐?”
놀기 싫은데 놀러 가는 것도 고문인데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을 음식을 먹게 하는 고문까지 감당해야 하다니. 나는 하나라도 피하고 싶었다.
“좋아. 놀러는 갈게. 대신 점심은 니가 한 김밥 먹지 말고 사 먹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왜 만들었겠어? 다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 니가 김밥을 좋아해서. 그런데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그런 말을 해? 그러고도 니가 내 남편이라고 할 수 있어?”
솔직히 바보같은 채신이의 남편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우린 혼인신고까지 한 부부라 법적으로나 사실로나 내가 채신이의 남편인 것은 분명했다.
“아무튼 더 얘기할 거 없으니까 빨리 씻고 나갈 준비나 해.”
솔직히 나는 내 뜻대로 채신이의 기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잘려면 더 잘 수 있었다. 채신이가 암만 졸라대도 안 간다고 버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전쟁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평화주의자인 나는 저번에 싸운 일도 있고 해서 이번엔 채신이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암만 생각해도 채신은 너무 남편을 잘 만난 것 같다. 채신은 정말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한다.
세수를 하고 나와 세상 어디를 가도 다시는 맛 볼 수 없을 것 같은 맛없는 김치찌개를 먹고 채신이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집 앞에는 채신의 차가 놓여 있었다. 채신이 운전석에 올라탔고 나는 옆자리인 조수석에 올라탔다.
“안전벨트 매.”
채신이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정말 놀러가고 싶을 생각이 들 정도로 멋졌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놀러가는 날은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그래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또 비가 오겠군.”
“뭐라고 했어?”
“비 올 거라고? 내가 놀러가는 날은 항상 비가 왔거든.”
“넌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이렇게 맑은 날에 비가 온다니 그게 말이 돼? 일기예보에서도 오늘은 아주 맑은 날이라고 했어.”
“일기예보는 믿을 게 못 돼. 저 번에 보니까 기상청 직원들 야유회 가던 날 비오던데. 내 장담하는데 분명히 오후엔 비가 올 거야. 일기예보보단 내가 훨씬 정확하다고. 난 비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니까. 대학때 별명도 스톰(Storm)이었어.”
채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보다가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근데 어디로 가려는 거야?”
“춘천.”
“춘천? 길은 알아?”
“몰라.”
“뭐? 길도 모르면서 춘천을 가겠다는 거야?”
“지도가 있으니까 걱정 없어.”
채신의 말대로 차안에 지도책은 있었다. 하지만 채신은 지도를 볼 줄 모른다. 그런데도 지도가 있으니 걱정 없다고 말한다. 확실히 채신은 바보다. 갑자기 세상에 이런 둘도 없는 바보랑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냐 하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 같아서는 정말 물릴 수만 있다면 결혼을 물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요즘 이혼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과 달리 이혼은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채신은 정말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한다.
휴일이라 놀러 가려는 사람들로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나는 답답함에 담배를 두 개피 피우고 또 하나 꺼내서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채신도 차가 밀리는 것에 짜증을 내고 있었다.
“도대체 저 인간들은 집에서 할 일들이 그렇게 없어? 뭣 때문에 허곤날 휴일이면 놀러 가느라고 저 난리야?”
“내 생각엔 우리도 저 사람들과 별로 다를 거 없는 거 같은데. 우리도 지금 놀러 가는 거잖아?”
“다르지 않긴 뭐가 다르지 않다는 거야? 우린 오랜만에 놀러 나온 거라고. 그런데 저 인간들은 주말이면 허곤날 놀러 간다니까.”
“저 사람들이 우리처럼 오랜만에 놀러 온 사람인지 주말이면 허곤날 놀러 가는 사람인지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여자한텐 직감이 있어.”
난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배꽁초를 창 밖으로 버렸다.
정체되어 있던 차들이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린 겨우 서울을 빠져 나왔는데 그 곳 부터는 다행히 막히지 않았다. 그러나 길이 뚫렸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 곳부터 길을 모르는 채신은 지도책을 펼쳤지만 지도를 볼 줄 모르는 채신이 길을 알아낼 리가 만무했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거야? 무슨 놈의 지도를 이 따위로 만드는 거야? 사람이 알 수 있게 지도를 만들어야 할 거 아냐? 이런 지도를 사람들한테 팔다니? 도대체 양심들은 다 어디다 두고 이런 짓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니까.”
나는 자신의 모자람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아무 잘못 없는 지도책 만든 사람만 탓하는 채신이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담배연기만 창 밖으로 내뿜었다.
“넌 담배만 피우면 다야? 아까부터 줄창 담배만 피우고 있게. 운전을 할 줄 모르면 길이라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바보같은 채신은 역시 나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착한 나는 담배꽁초를 창 밖으로 내 버리고 채신이가 보고 있는 지도책을 가져왔다.
“오른쪽으로 가면 돼.”
“오른쪽으로 가면 돼?”
“일단 오른쪽으로 가라고. 나중에 헛갈린 길이 나오면 그 때 얘기할 테니까.”
다른 때는 우회전을 하라면 좌회전을 하고 좌회전을 하려면 우회전을 하던 채신이가 이번에는 오른쪽이라고 하니까 오른쪽으로 차를 돌렸다. 이점으로 미루어 볼때 채신이는 우회전이나 좌회전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게 분명하다. 갈매기의 종을 영어로도 꿰뚫고 있는 영어박사인 채신은 우회전이니 좌회전이니 하는 기본적인 우리말도 모르는 국어둔재다.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채신이만 몰아붙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나라에 국어둔재는 넘쳐난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서 성함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느 높으신 양반 한 분은-명예훼손 소송에 안 걸리려고 이름을 안 밝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오래된 일이라서 그 분의 성함도 직책도 다 잊어버렸다. - 교육은 teaching이 아니라 thinking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높으신 분이 우리나라 말에서 가장 기본적인 말인 가르치다라는 말과 생각하다라는 말을 모르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앞에 여기서부터는 춘천입니다라는 푯말이 보였다. 우린 그 푯말을 지나 춘천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채신이 갑자기 차를 세웠다.
“춘천에서 놀러갈 만한 곳이 어디야?”
“뭐? 어디 놀러 갈지 결정도 안 하고 무작정 춘천엘 가자고 한 거야?”
“너 대학 다닐 때 춘천에 가 봤다며? 그러니 어디가 좋은지는 니가 잘 알 거 아냐? 난 널 위해서 춘천에 가자고 한 거야.”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채신이한테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래봤자 내 입만 아플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설마 춘천에 가 보고도 어디 갈만한 데가 있는지 모르는 거야?”
“오봉산이나 가자.”
“산? 산 좋지. 근데 거기 높아? 아니 높아도 상관 없어. 난 등산은 자신 있거든. 근데 어디로 가야 돼?”
정말 기가 막혔다. 채신이 아무리 놀러가자고 졸랐어도 채신한테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잠이나 자야겠다고 버텼어야 하는 건데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가 어쩌다가 이런 바보같은 채신이랑 결혼했는지 그 놈의 영어가 정말 원수다. 나는 다시 지도를 보면서 오봉산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46번 국도를 타고 온 우리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오봉산은 배를 타고 들어가서 등산을 하고 다시 산을 내려와 배를 타고 나올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산 중의 하나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내린 우리는 선착장으로 가서 유람선에 올라탔다. 배가 천천히 출발했다. 깨끗한 호수와 푸른 산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휴일날 집에서 잠만 자는 것보다는 가끔 이렇게 산과 물을 보러 오는 것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가 청평사 선착장에 닿았다. 나와 채신은 배에서 내린 후 등산로로 길을 올랐다. 채신과는 처음 하는 등산이었는데 등산에는 자신 있다고 말한 채신은 정말 산을 잘 오르고 있었다. 오봉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오르기에 호락호락한 산은 아니다. 그런데도 채신은 전혀 힘들어 하지 않고 나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이제까지 등산을 할 때 내 걸음에 보조를 맞춘 여자는 채신이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채신이는 웬만한 여자보다 힘이 세다. 채신은 20kg짜리 쌀 푸대는 가뿐히 든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무식하면 힘이라도 세야 한다고? 생각해 보니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이고 채신은 그 말에 딱 들어맞는 전형적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채신이를 군에 입대시키고 생각이 퍼뜩 스쳤다. 내가 생각하기에 무식하고 힘만 센 인간은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군대가 제 격이다. 그런데도 왜 여자는 군에 안 가는지 대한민국은 정말 너무 불공평하다. 여자가 군대를 안 가니 대한민국에선 여자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마저 남녀가 똑같은 일을 해도 여자보다 남자한테 월급을 더 많이 준다. 선생되기 전에 이런 회사에서 잠깐 일해봐서 잘 안다. 대한민국은 정말 불공평한 나라다.
680m 봉을 지나자 너른 휴식터가 나왔다. 채신이가 잠시 쉬며 점심을 먹고 가자고 했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채신이가 만든 도시락을 먹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 없었기에 정말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양보하기로 한 나는 이번에도 양보하기로 했다.
채신은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도시락통안에 들어있는 김밥은 정말 이쁘고 먹음직스러워보였다. 채신은 요리의 모양은 기가 막히게 잘 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양과 맛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결혼 후 채신이가 해 준 밥을 처음 먹었을 때 절실히 깨달았다. 그 때 채신이가 상에 올린 반찬은 정말 보기 좋았고 그래서 나는 기대를 잔뜩하면서 시금치를 한 젓가락 집어 먹었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세상에 그렇게 맛없는 음식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았다. 채신이가 김밥을 하나 들어서 나한테 건네주었다. 나는 최대한 참아보리라 작심하고 김밥을 입안에 넣었다. 그런데 입안에서 불이 났다. 김밥 안에는 마늘이 들어 있었다. 요즘 김밥의 종류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마늘김밥이라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물 좀 줘.”
“왜 그래?”
채신은 물을 나한테 주며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된 건지 채신은 그 맛 없고 맵기만 한 마늘김밥을 맛있다는 듯이 잘만 먹고 있었다.
나는 물을 엄청 마시고 나서 화를 내며 말했다.
“야, 세상에 누가 김밥에다 마늘을 넣어?”
“마늘이 건강에 좋아. 항암 효과도 있다고.”
정말 기가 막혔다.
“그렇게 좋은 거면 마늘김밥 전문점이라도 차리지 그러냐?”
“가만. 그거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가끔 정말 너는 기발한 생각을 한단 말이야. 왜 나는 여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지? 우리 이 다음에 정말 마늘김밥 전문점이나 차릴까?”
“뭐?”
“왜 그런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그래? 멋진 아이디어는 니가 내 놓고.”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넌 지금 마늘김밥 전문점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안 될 리가 없잖아? 건강식 김밥인데. 마늘은 몸에 좋거든. 넌 나한테 고마워 해야 돼. 나 아니면 누가 너한테 이런 건강식 김밥 해 주겠어?”
‘건강식 김밥?’
나는 크게 비웃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녀평등주의자인 나는 그건 마누라를 너무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지는 않고 속으로 마음껏 비웃었다.
“마늘이 이제 얼마나 좋은 건지 알았지? 그러니까 빨리 먹어.”
“난 됐으니까 그냥 니가 다 먹어.”
“내가 무슨 돼진 줄 알아? 이걸 다 먹게.”
“정 그렇게 다 못 먹겠으면 먹을 만큼 먹고 갖다 버리면 되잖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멀쩡한 음식을 갖다 버릴 생각을 하다니? 음식 귀한 줄 모르는 사람은 나중에 벌 받아. 그러니 어서 먹어.”
우리 그만 이혼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라왔다. 그러나 언제나 냉정을 유지할 줄 아는 나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실 채신이는 불쌍한 여자다. 내가 거둬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거둬 줄 남자가 한 명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채신은 정말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한다. 나는 억지로 그 맵고 맛없는 마늘김밥을 물을 마시면서 먹었다. 김밥은 그렇게 없어졌고 내 끔찍한 고문의 시간도 끝났다.
“그만 가자.”
채신이가 말했다. 우린 일어나서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채신은 정말 산을 잘 오르고 있었다. 가을을 맞아 주변에 빨갛게 물든 단풍들이 장관이었다. 우린 정상에 무사히 올라왔다. 채신이가 나한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서 나는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을 찍은 후 조금 쉬려고 바위에 앉았는데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늘에 먹구름이 서서히 깔리는 게 어쩐지 비가 올 것 같아 보였다. 내 예상이 적중하고 있었다.
“그만 내려가자. 비가 올 거 같으니까.”
“기상청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이야? 일기예보 하나 못 맞추고. 오늘은 맑은 날이라고 했다고.”
채신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게 기상청보다는 내가 정확하다고 했잖아?”
우린 산을 내려왔다. 빗방울이 한 두방울씩 떨어져 내리다가 그쳤다가 하기를 반복했다. 산을 내려올때까지 그랬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돌아가는데 날이 개이려는 듯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개같은 날씨였다. 우리가 선착장에 도착해 내리니 개인 줄 알았던 하늘이 다시 흐려지더니 비가 한 두방울 떨어졌다. 그러더니 빗줄기가 강해지며 비가 세차게 퍼부어 내렸다.
“무슨 날씨가 이 따위야?”
채신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나도 채신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속이 뒤집어지는 날씨였다. 우린 차를 세워 둔 곳으로 가서 차에 올라탔다. 온 몸은 이미 비에 홀딱 젖은 뒤였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세차게 내리 퍼붓고 있었다. 5시 밖에 안 됐는데도 앞은 어두컴컴했다. 채신이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와이퍼를 흔들며 차를 몰았다.
“이게 뭐야? 비나 쫄딱 맞고 말이야. 집에서 그냥 잠이나 자는 게 훨씬 나았겠다.”
“시끄러. 비 올때는 운전을 주의해야 돼. 그러니 말 시키지마. 운전에 집중하게.”
춘천을 빠져 나왔다. 나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비는 도무지 그칠줄을 모르고 있었다. 정말 놀러 오는 게 아니었다. 엄청나게 퍼붓는 비 때문에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이 길을 운전에는 젬병인 채신이 빠져 나간다면 그건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운전을 배웠어야 하는 건데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그런 생각이 쓸데 없는 걱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화물 트럭 한 대가 중앙선을 넘어 우리한테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젠 죽었구나 하는 순간 채신이가 왼쪽으로 급회전을 했다. 차는 빗길에 미끄러지며 급정거를 했다. 안전벨트를 맨 게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차에 이마를 정통으로 박을 뻔 했다.
“괜찮아?”
채신이가 물었다. 채신이의 이마는 조금 부어 있었다. 차에 머리를 부딪힌 모양이었다.
“난 괜찮은데. 넌?”
“괜찮아.”
나는 차에서 내렸다. 화물 트럭 한대가 가드레일 벽을 받아버린채 서 있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싹 돋았다. 저 차랑 박았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게 뻔했다. 지금 내가 땅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어서 빨리 신고하지 않고.”
차에 있는 채신이가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우선 구급차가 와서 화물 운전 트럭수를 싣고 갔고 조금 후 사고처리반이 도착했다. 나는 경찰한테 사고경위를 진술했다. 경찰은 진술을 다 듣더니 차 안에 있는 채신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애인인가 봐요?”
“마누라에요. 바보같은 마누라죠. 운전은 지지리도 못하는데 지가 운전을 잘 하는 줄 착각하고 있다니까요. 방금전에도 정말 죽을 뻔 했다니까요.”
경찰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긴 운전을 잘 한다고 할 수는 없겠죠. 앞에서 차가 달려드는데 왼쪽으로 핸들을 돌렸으니 말이에요. 그럴 땐 누구나 본능적으로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게 되어 있는데 말이에요. 부인한테 잘 해 주세요. 사고가 크게 났어도 선생님은 살리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조사를 끝마친 경찰은 자리를 떠났고 나는 둔탁한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는데도 비를 맞는 것 같은 느낌도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영어가 가장 위대하다고 믿는 저 바보가 그 짧은 시간에 그래도 나만은 살리려고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안 갈 거야? 거기 서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안 타고?”
채신이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나는 차가 서 있는 곳으로 가서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는 다시 출발했고 나는 또 담배를 꺼내 피웠다.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고개를 돌려 뚫어져라 채신이를 바라보았다.
‘정말 날 살리려고 그랬단 말인가?’
“도대체가 무슨 운전을 그 따위로 해?”
“뭐?”
“세상에 어떤 인간이 앞에서 차가 달려오는데 왼쪽으로 핸들을 돌려? 앞에서 차가 오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려야지. 죽을려고 환장했냐?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게. 너같이 기본도 모르는 수준미달인 인간한테 면허증을 주다니? 우리나라 운전면허 제도는 싹 다 뜯어 고쳐야 한다니까.”
“저기. 그래서 말인데. 지금부턴 니가 운전하면 안 될까? 난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채신은 갑자기 쓰러졌고 차는 급정거를 했다. 뒤에 오던 차도 우리차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급정거를 했다.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뒤 따라 오던 사람은 차에서 내려 우리한테로 왔다. 그 남자는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다.
“이 봐, 아줌마. 도대체 이 한복판에서 갑자기 차를 세우면 어떡해? 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죄송합니다. 제 아내가 좀 전에 있던 사고 때문에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셔요.”
“그럼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전 운전을 할 줄 몰라서요.”
“무슨 남자가 운전도 할 줄 몰라.”
남자는 한 소리 하더니 자기 차가 있는 곳으로 가서 옆에 있는 사람한테 먼저 가라고 하고는 다시 우리차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채신이를 뒷좌석으로 옮기고는 운전석에 올라탄 후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