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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내와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했다. 아내는 회사에서 4박 5일간의 휴가를 얻었다며 조용한 섬으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그러자고 대답했다. 나도 업무에 지쳐 있었다. 내가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중국어 가이드가 된 이후였다. 아내는 볼품없는 나를 처음으로 사랑해 준 여자였다. 나는 그런 여자가 고마웠으나 그 여자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비겁하게도 나는 그 때 그런 감정으로 그 여자랑 데이트를 했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었으나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 때 나는 너무 외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는 나한테 결혼을 하자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나 자신도, 그 여자도 속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했던 사람이 있었어. 아니 지금도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어.”
여자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었어. 그녀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그 여자를 지금도 만나고 있다는 얘기인가요?”
“아니. 도서관을 그만 둔 후로 만난 적이 없어.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도 몰라.”
“그럼 뭐가 문제죠?”
“여전히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한다는 거. 난 아직도 그 여자를 잊지 못했어. 만약 내가 다시 그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 여자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난 그 여자한테로 갈 거야. 이런 마음으로 미희랑 결혼할 수가 없어.”
“그 동안 날 사랑한 게 아니었군요.”
“미안해.”
나는 모든 것이 끝났다며 의자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 때 그 여자의 나지막한 말이 나를 멈추게 했다.
“생각할 기회를 주세요.”
“생각할 기회라니? 내 속마음을 이제 다 알았을 텐데 그래도 나랑 결혼하고 싶다는 거야?”
“그러니까 생각할 기회를 달라는 거에요. 오빠의 마음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 결론이 나면 오빠한테 전화할게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더니 카페를 나갔다.
나는 여자가 연락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그 여자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우린 한 달 전 헤어졌던 그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전화를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결론이 나면 오빠한테 전화 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났는데?”
“오빠랑 결혼하기로 했어요.”
“뭐?”
나는 미친 거 아니냐는 듯한 얼굴로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생각을 해 봤는데 오빠는 앞으로 그 여자를 만나게 될 일이 없을 거에요. 그러니 그건 그냥 가슴 아픈 첫사랑일 뿐이라고요.”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난 그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되면 그 여자한테로 갈 거야.”
“만약에 오빠 말대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땐 그 여자한테 오빠를 보내 줄게요. 약속할게요.”
“도대체 그렇게까지 니 자존심을 구겨가면서 나랑 결혼하려는 이유가 뭐야?”
“오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건 아냐.”
“그걸로 족해요. 우리 결혼해요.”
난 그렇게 지금의 아내랑 결혼했다.
나와 아내는 식사를 다 마치고 경양식 레스토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