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시 모음> 이문조의 '잡초처럼 살리라' 외 + 잡초처럼 살리라 때맞춰 물주고 애지중지 보살펴도 시들시들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연약한 화초가 될 수는 없지 밟아도 밟아도 다시 고개 드는 밟으면 밟을 수록 더 강한 생명력으로 자라나는 잡초 그 잡초처럼 살리라 포기란 말은 생각도 말자 넘어지면 또 일어서는 오뚝이 오뚝이처럼 살아가리라. (이문조·시인) + 그대의 잡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겠습니다 짓밟혀 티끌이 되더라도 견뎌보렵니다 무례한 바람과 가혹한 햇볕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감내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흔쾌히 앙가슴을 열어주던 그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또 새파랗게 그대를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잡초시인 세계미인대회 제 나라에서 뽑히고 뽑힌 미인들 황홀한 아름다운 장미여 화면에 쏠린 지구상의 눈들 아 거기에도 잡초가 있었구나 진선미를 빼곤 모두 잡초였구나… 잡초! (이문호·시인) + 잡초 뽑기 호미로 흙을 파면서 잡초를 뽑는다 잡초들은 내 손으로 어김없이 뽑혀지고 뽑혀진 잡초들은 장외場外로 사라진다 옥석玉石을 구분하는 나의 손도 떨린다 하늘은 이 잡초를 길러내셨으나 오늘은 내가 뽑아내고 있다 밭을 절반쯤 매면서 문득 나는 깨달았다 이 밭에서 잡초로 뽑혀나갈 명단 속에 아, 어느새 내 이름도 들어가 있구나! (김종해·시인, 1941-) + 차라리 잡초가 되리 잡초 좀 뽑을까 해서 뜨락에 나가보니 내가 심은 것, 안 심은 것 한데 섞여 무성하다 나의 뜨락에 내가 심지 않은 것은 모두 잡초이려니 쪼그리고 앉아서 손을 뻗는데 저쪽 하늘이 퍼렇다 내가 심지 않은, 하늘이 옮겨 심은 것은 모두 잡초일까 나를 옮겨 심은 부모님 모두 가고 없는 이제 나는 누군가의 뜨락에 잡초가 아닐까 차라리 잡초 하나 못 뽑는 잡초가 되어 좋으리 (장남제·시인, 경남 사천 출생) + 풀꽃의 힘 기름진 넓은 들에 봄날이 오면 흐드러지게 피는 자운영꽃. 농사의 밑거름이 되기 위하여 봄의 끝에서 죽음 속으로 몰락하면서도 꽃은 숙명이라고 슬퍼하지 않는다. 풀꽃은 썩 아름다우나 세상을 유혹하지 않고 왜 그다지 곱게 치장하는지 세상을 위해 온몸을 눕히면서 희생하는지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 세상사람들은 날마다 치장하면서 풀꽃처럼 세상을 위하지도 않고 난센스로 풍성한데 풀꽃의 위대함은 한마디 불평 없이 아무런 항거 없이 농부의 쟁기보습 밑으로 몸을 눕히는 자유로움이며 봄이 오면 어느 날 살며시 쓰러졌던 그 자리를 다시 찾아오는 부활이다. (이풍호·시인, 충남 예산 출생) + 잡초·1 우리는 쓸모 없는 아이들 갈 곳이 없어요 멈추어 선 곳마다 뿌리를 내리는 우리들의 꿈 부질없는 꿈 나무라는 어른들의 음성에도 자지러지며 제 아잇적 꿈을 모두 버린 어느 해 봄의 설익은 가출을 잊게 해 주세요 돌아갈 고향을 주세요 버려진 이 땅의 모든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태어나는 아이들 버림받은 이름만이 우리들 거예요 (오승강·시인, 1953-) + 잡초 어디건 빈자린 내 차지 그렇게 날새도록 고르고도 아직도 고른다면 어쩐다지 어디건 빈자린 내 차지 골랐다면 고른 대로 못 골랐다면 못 고른 대로 말뚝 든든히 박아 보라지 어디건 빈자린 내 차지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담 꼭꼭 쌓아보라지 철조망 군사분계선 마냥 쳐보라지 아둥바둥 밀치고 당기고 해보라지 어디건 빈자리 내 차지 아무리 흥정에 도통하여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나 좀 보라지 (오하룡·시인, 1940-) + 잡초송(雜草頌) 희랍신화의 혀 안 돌아가는 남녀 신의 이름을 죽죽 따로 외는 이들이 백결(百結)선생이나 수로부인, 서산대사나 사임당을 모르듯이 클레오파트라, 로미오와 줄리엣, 마릴린 몬로, BB의 사랑이나 브로드웨이, 할리우드의 치정(痴情)엔 횡한 아가씨들이 저의 집 식모살이 고달픈 사정도 모르듯이 튤립, 칸나, 글라디올러스, 시크라멘, 히아신스는 낯색을 고쳐 반기면서 우리는 넘보아도 삼생(三生)에 무관한 듯 이름마저도 모른다. 그 왜, 시골 그대들의 어버이들이 전해가지고 붙여오던 바우, 돌쇠, 똘만이, 개똥이, 쇠똥이, 억쇠, 칠성이, 곰, 만수, 이쁜이, 곱단이, 떡발이, 삐뚤이, 순이, 달, 서분이, 꽃분이, 이런 정답고 구수한 이름들 함께 우리 이름도 한번 들어보겠는가. 민들레, 냉이, 달래, 비듬, 떡쑥, 토끼풀, 할미꽃, 범부채, 초롱꽃, 쐐기풀, 이런 것이야 누구나 알지만 홀아비꽃대, 염주괴불주머니, 광대수염, 개부랄풀, 벼룩이자리, 개구리밥, 도깨비쇠고삐, 퉁퉁마디, 무아재비, 며느리배꼽, 개미탑, 큰달맞이꽃, 처녀이끼, 도둑놈갈구리, 도깨비바늘, 거지덩풀, 애기똥풀, 미치광이, 이렇듯 재미있고 천연(天然)스런 이름들을 들어보기나 했는가? 땅속 줄기에다 홀아비 사추리의 무성한 것 같은 꽃수술을 달았으니 홀아비꽃대요, 퉁겨운 줄기에 꽃주머니가 양쪽으로 달렸으니 염주괴불주머니요, 홍자색(紅紫色) 입술 꽃부리로 아래턱이 세 갈라진 데다 두 장의 수염 같은 수술꽃이 달렸기에 광대수염이요, 온몸에 짧은 털이 나고 잎은 뭉툭한 톱니를 가진데다 불그레한 두 장의 꽃이 마치 덜렁덜렁 달린 무엇 같기에 개불알이요, 잎은 둥근알 꼴 온몸엔 가는 털이 끼어서 벼룩이가 붙은 꽃 같기에 벼룩이자리요, 겨울 연못에도 눈을 맞으며 떠 있기에 개구리밥이요, 덩이줄기에다 길이 1미터나 되는 큰 잎이 광택을 내고 있어 `그로테스크'하기에 도깨비쇠고삐요, 바닷가에 큰 마디가 줄기마다 달린 퉁퉁마디, 역시 바닷가에 살지만 굵은 무 같은데 거기다 수염이 달려 무아재비, 고운 여인 알몸의 꽃 속이 피어서 며느리배꼽, 이삭꽃이 불개미떼가 붙은 것같이 황갈색으로 피기 때문에 개미탑, 큰달맞이꽃은 온몸에 부드러운 융털이 있고 여름밤에 노랑꽃이 크게 피어 어울리며 처녀이끼는 제주도 나무와 바위에 실꼴[絲形]로 흐느적거리고 잎과 홀씨주머니가 알을 품은 것 같다. 이름마저 흉측한 도둑놈갈구리는 부스스한 열매가 한번 옷에 붙으면 떨어질 줄 모르고 도깨비바늘도 역시 바늘 같은 열매가 달라붙으며 거지덩굴은 더러운 손자국, 발자국처럼 지저분하고 애기똥풀은 노란 진물이 나오고 미치광이는 흙탕 같은 온몸에 잎과 꽃이 어둡고 어지럽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며느리미씨개, 참소리쟁이, 갓버섯, 벌레잡기, 오랑캐, 끈끈이주걱, 팔손이나무 등 우리 친구들 이름과 그들의 특징을 주워 섬기자면 한이 없다. 옛부터 일러오기를 하늘이 녹(祿)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싹트지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부르짖으면서 길섶이나 밭두렁이나 산비탈에 어느 누구의 신세도 안 빌고 자연으로 싹터서 자연의 구실을 하다 자연히 스러지는 우리들의 본명(本命)! 그대 시인(詩人)이란 것들마저 함부로 잡초(雜草)라 부르고 소외(疎外)하는가! (구상·시인, 1919-200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