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의 사랑이 그렇게 지속 되기를 염원했다.
영원히.. 아주 영원히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들만의 꿈이었을까, 현실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그녀가 4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우리들 앞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원래 자유분방하게 그녀를 키웠던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3학년을 끝마칠 때까지는 남자친구를 누구를 사귀느냐에 대해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의사를 존중해 줬다고나 해야 할까. 하지만 그녀가 4학년, 그것두 2학기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부모님은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오래전부터 나와 그녀가 사귀는 것을 맘에 안 들어하던 그녀의 어머님은, 그녀에게 수시로 나와 교제관계를 끊으라고 강요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당시 나와 학교에서 만나면 항시 어머니에 대한 불평만 했던 기억이 난다.
한편으로 돌려 생각하면 그녀 어머님의 심정이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20년이 넘게 곱게 키운 딸을, 그것도 어느 집에 꿀리지 않는 빵빵한 가세를 지닌 대그룹 가문의 외동딸을, 아무것도 가진게 없고 그렇다고 앞날이 밝지도 않은 나 같은 놈한테 넘겨준다는 것은, 아마 딸을 수녀원에 들여 보내는 것보다 싫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내가 사법고시를 공부 한다는 것을 들어 곧 나도 능력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 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반박을 했고, 나 역시도 2학기 들어서 부터는 고시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4학년때부터 시작한 공부, 앞으로 3년이 지나도 붙을지 떨어질지 절대로 보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부모님은 내가 못 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중 가을이 되었다. 96년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해 가을은 다른 가을보다 더 추워서, 우리둘은 햄스터 마냥 학교에서도 , 학교 밖에서도 꼭 붙어다녔다.
이젠 그녀도 4학년이 되어서 통금 시간이 늦게까지 늘어났으므로, 보통 내가 아르바이트 하는 호프집에서 같이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그녀를 그녀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것으로 하루를 끝마치곤 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 하면 내가 그녀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 그녀 집 안에서 그녀와 그녀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찹찹한 기분으로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하루를 끝마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볼일이 있다고 친구집에 가서 혼자서 호프집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호프집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나타 난 것이다.
비록 내가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었지만, 사진을 통해서 내 앞에 서 있던 날카롭게 생긴 여자가 그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그녀 어머니의 실물을 보면서, 어쩜 이런 부모한테서 그녀와 같이 아름다운 딸이 나올수 있을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알아봤는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박 진 석 군??'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 어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녀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 우리 잠깐 근처 커피숍 가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 혹시.. 성미 어머님??'
그녀는 말대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아.. 잠시만요.. 일좀 친구에게 넘겨주구요..'
나는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단골 손님에게 카운터를 넘겨준 후,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은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이 한산했다.
우린 야경이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앉은지 1 분 정도 지났을까, 아무말도 하지않고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의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위 아래로 한번 쳐다보고 난 후, 입을 열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할께요. 우리 성미, 내년에 결혼 할 사람 벌써 잡혀 있는 몸이예요. 그러니 좋게 말할 때 그만 만나도록 해요.'
'결혼할 사람이 잡혀있다니요... ???'
난 그녀 어머니의 말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했다. 그녀와 나는 아직 결혼 약속을 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남자를 말한 것 같은데, 그녀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럼 그녀가 나를 속이며 다른 남자를 함께 만나왔다는 말인가.
그녀는 황당해 하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불쌍하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 아.. 성미가 말 안했나 보지? 우리 집안 대*그룹 맏딸이자 외동딸 성미는 저쪽 성* 그룹 외동아들인 이민혁 군과 결혼하기로 이미 10년전부터 약조가 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그 10년이 되는 때가 바로 내년 4월이구. '
난 어안이 벙벙해 졌다. 엊저녁 까지만 해도 둘이 손을 꼭 잡고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맹세했던 애가, 내년 4월에 결혼할 날짜가 잡혔다니...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어머니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럼 난 할 말 다 했으니까, 이만 가도록 하겠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분명히 말 하겠는데 앞으로 우리 성미 다시는 만나지 말도록 해요.
지금은 좋은 말로 하지만, 다음번에는 그렇게 안될꺼예요. '
그녀는 그 말을 하고는 차도 시키지 않은 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난 들었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면서.......
'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 거지같은 놈이 다 와서 혼삿길을 막어..막기는..'
이라고 혼잣욕을 하는 것을. 난 하늘이 내 머리위로 떨어지는 것만 같아서 그녀의 어머니가 나간 후에도 한동안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이 뭐 시킬 꺼냐고 물어 보며 내 어깨를 흔들때가 되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흔들며 커피숍에서 빠져나왔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이게 도대체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녀가 내년 4월에 결혼을 하다니. 그리고 그것도 어제 오늘 잡힌게 아닌, 10년전부터 맺어진 약조였다니. 정말로 앞이 깜깜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호프집으로 돌아온 나는, 우선 호프병에서 생맥주를 한 잔 받아서 벌컥 벌컥 들이켰다.
단골 동생은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을 보고는,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 형~~~ 형~~ 왜그래.. 무슨일이야.. 무슨일있어??'
' 아.. 저기 너 성미알지?? 성미좀 불러줄래? 지금 아마 학교 근처 친구집에 있을거거든.. 여기 성미 호출번호 있으니까, 호출해서 성미좀 불러주렴...'
난 그 동생에게 내 수첩을 건냈고, 동생은 카운터 옆 전화기로 가더니 호출을 하는 듯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릴 때 쯤 되니까, 그녀가 헐레벌떡 호프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말짱히 있는 모습을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오빠 뭐야~~~ 괜히 사람 걱정하게 하구~~ 난 또 오빠가 이상하다고 빨리 와보라는 음성이 와서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난 큰일이나 난 줄 알았네.....헤헤'
'맞아.. 큰일 났어...'
나의 이 말에 그녀의 웃던 얼굴은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내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까.. 너희 어머니 우리 가게에 다녀 가셨어.'
그녀는 나의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하지만 이제 4학년이 되어서 그럴까. 과거 새내기때 처럼 계속 흥분만 해 있지 않고, 손을 턱에 대고는 눈동자를 굴리며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박수를 한번 딱! 하구 치면서 나에게 말했다.
' 아 알았다.. 오빠 혹시 엄마가 나 결혼한다는 이야기 한 거 아냐?'
난 그녀의 말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맞다는 표시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약간 상기되었던 얼굴을 활짝 피고 웃으며 아무일도 아닌 듯 말했다.
'아.. 그거.. 그거 그냥 부모님들간의 약속이야. 나랑은 아무관계 없어. 나 그 이민혁이라는 사람. 딱 한번밖에 안 만나봤어.
그리고 내 스타일도 아니던데,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결혼하냐~ 그게 말이돼?~~치~~ 오빠 괜한말에 신경쓰지마....'
나는 그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따라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