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야 정말 미안해... 오빠 .. 성미에게 정말 오늘 잘해 주려구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렸어. 아까 화낸거 정말 미안하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좋으니.. 밖으로 나와주지 않으련? 오빠 성미 나올때까지..
만약 저녁에 안나온다면 내일 아침까지라도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꺼야.. 제발 나와주렴..그럼 이만...'
하지만 내가 이렇게 강력하게 배수진을 쳤는데도, 시간이 30분이 지나도 그녀는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내일 아침에나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시간이 12시를 지나감에 따라 나는 포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옆을 지나가는 경비들이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긴 했지만, 꽃다발을 든 도둑놈은 없을거란 생각을 해서일까..
다들 그냥 지나갔다.
시간은 벌써 1시가 넘었다.
난 벌써 지칠대로 지쳐 전화박스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시 전화를 할까...
아니면 계속 기다릴까.. 아니면 그냥 집에 갈까... 정말로 갈등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가 한방울씩 추적 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비오는날 새벽에 전화박스에 쳐박혀 비구경을 한다라..
그 자체도 궁상맞은 짓이었지만, 내 기분은 비의 영향 때문에 더욱 찹찹해져 갔다.
'도대체 우리가 왜.. 왜...'
비 때문인가... 눈 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난 전화박스에서 나와서 빗속에 내 몸을 맡겼다.
그래 이 비야.. 나의 모든 것.. 나의 이 모든 슬픔을 흘려 보내다오.
못살고 멍청한 놈의 절규라고나 할까,
한참을 그렇게 비를 맞은 뒤.. 난 절망적인 마음에 전화 박스로 들어와 다시한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
'성미야.. 오빠야...'
난 순각 욱 하는 것을 억제하느라, 숨을 한번 내쉬었다. 하지만 아무리 감정 절제를 한다구 해도, 나의 서글픈 심정이 목소리에 들어가.. 목소리가 떨렸다.
'오빤데... 오빤데... 밖에 비가 온다... 비와 함께 .
비.. 비와 함께 모든게 다 떠내려가 버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늘.. 아니 어제.. 1000일 .....'
난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수화기를 전화기 위에 올려 놓고 내 입을 막으며 설움에 북받친 내 자신을 진정시켰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은 후, 수화기를 들었는데, 수화기는 벌써 녹음시간이 지나서 끊어진 후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의 집 대문이 열리면서 , 그녀가 잠옷 바람으로 우산도 안쓰고 밖으로 뛰어나오구 있었다.
나도 재빨리 그녀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언제부터 울기 시작했는지, 벌써 눈이 부어있었고, 목도 쉬어있었다. 헝클어진 긴 생머리를 보니 저녁부터 쭉 침대에 틀어박혀 울고 있었나 보다.
'흑흑...오빠.. 오빠가 어떻게 그럴수 있어... 그것두 1000 일인데..
난 1000일이라구해서 아침에 미용실두 가구 최대한 이쁘게 하구 옷도 이쁘게 입구 오빠 만나러 나갔는데,..
흑흑.. 오빠가 어떻게 1000일인걸 알았으면서도 그럴 수 있어..?'
난 눈물과 비와 머리카락이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말 한마디 만을 한 채, 바닥에 쭈그리구 앉아 얼굴을 가리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난 내 눈에서도 뜨거운 무언가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나의 감정 절제는 여기가 한계인가, 난 그녀를 감싸며 쭈그려 앉아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정말...정말... 미안해 성미야...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는데, 1000일인거 알고 있었는데.. 선물도 정말 정성껏.. 정말 정성껏 마련했는데.. 너에게 내 선물을 줄 수가 없었어..
그게 너무 원통해서 그랬던 거야..바로 이것.........'
난 울먹이면서 내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성미에게 보여줬다.
'앗..........'
성미는 반지를 보자 울음을 딱 그치더니, 그것을 집어들며 부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반지와 나, 그리고 자신의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번갈아 보았다.
' 아니 오빠가.. 오빠가 어떻게 이걸...'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선물의 의미로서 그녀에게 내밀었던게 아닌, 일종의 나를 변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써 내민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손바닥으로 씻으며 땅바닥만을 바라보았다.
.
.
.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을까, 성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 고마워요.. 이 반지로 지금까지 제가 오빠에 대해 가졌던 의심들이 다 풀리게 된 것 같내요. 전 이런것두 모르고 괜히 오빠를 의심이나 하다니.. 바보같은 나......'
그녀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 성미야 우리의 1000일 진심으로 축하해. 오빤 지금두 성미를 만난걸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구 있구, 앞으로 몇십년이 지난 후에도, 지금과 다름없이 영원히 성미만을 사랑할꺼야..'
나는 아까 꽃집에서 산 안개꽃을 두른 장미꽃 10송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꽃다발에 스며든 비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빠.. 정말 고마워요.. 난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꺼예요..'
그녀가 내 품에 안겼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했던가, 아까전 고생했던 기억들 모두가 아스라히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 아참.. 오빠 잠깐만..'
내 목에 안겨있던 그녀가 갑자기 손을 풀더니, 자기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오른손에 쥐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그녀에게 선물한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더니, 지은이라는 친구에게서 선물받은 반지를 나에게 내밀었다.
'오빠 좋은 생각 났어요.. 우리 이 반지 가지구 커플링해요..'
'커..커플링???'
나의 당황해 하는 얼굴에.. 그녀가 얼굴에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그래요 커플링.. 어차피 반지 똑 같으니까 지은이두 모를테구, 우리 지금까지 커플링 한번도 못 끼어 봤잖아요..'
하기야 그녀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귀면서 서로 반지 선물해 본 적이 없으니까.
난 돈이 없어서 그녀에게 선물을 못했고, 그녀는 내가 혹시라도 기분 상할까봐 나에게 선물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와 내가 사귄지 1000일이 다 되도록, 그녀의 손가락에는 반지하나 끼워져 있지 않았다.
물론 나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데 커플링이라, 그것두 최고급 반지로..
내가 산 반지를 내가 낀다..? 그러고 보니 이건 내가 산 반지도 아니다.
나를 골탕 먹이려던 그 계집애가 산 반지지...
난 그녀가 내미는 반지를 받아들었다.
그녀의 체온 때문이었을가, 반지에는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난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찬성한다는 의미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볍 게 끄덕였다.
그리고 난 손이 좀 커서 약지에는 안 들어가니까, 새끼 손가락에 반지를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반지는 손가락에 쏙 들어갔다.
' 와~~ 이제 우리도 커플링이 생겼으니 진정한 커플이 되었다~~'
그녀는 다시 내 목에 안기면서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이럴 때 나는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난 어쩔줄을 모르고 그저 기뻐하는 그녀를 안아주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깍지를 끼어서 내 목에 매달리더니 , 내 눈을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 오빠.. 그리구 이건 제 선물이예요..'
' 어... 뭔데.......읍...'
그날 난 그녀에게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생크림 잼보다도 더욱 달콤한 입맞춤을 선물로 받았다.
비는 우리들이 가진 세속의 모든 가치를 흘려내 버리듯 우리를 감싸며 잔잔히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그날 저녁 그녀 부모님은 여행을 가셨기 때문에, 그녀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린 그날 밤 그녀의 방 안에서 작은 촛불을 하나 켜 놓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나의 사랑스런 그녀, 난 이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만 같았다.
'캬.. 한편의 로만스가 따로 없구만~ 로만스~~ '홍도야 울지마라' 이후 내가 들어보는 가장 멋진 사랑 이야기 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