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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착해지는 시 모음> 전봉건의 '꽃과 마음' 외

     날짜 : 2014년 07월 31일 (목) 6:29:28 오후     조회 : 2504      

<마음이 착해지는 시 모음> 전봉건의 '꽃과 마음' 외

+ 꽃과 마음
  
나는 꽃을
만질 수가 있지만
내 마음을
만질 수는 없어요.

하지만
꽃은
내 마음을
만질 수가 있답니다.

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색색가지 예쁘게 물드는 것은

꽃이
색색가지 예쁜 손으로
내 마음을
만지작거리는 때문입니다.
(전봉건·시인, 1928-1988)


+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서정홍·농부 시인, 1958-)


+ 꽃과 나

예쁘다고
예쁘다고
내가 꽃들에게
말을 하는 동안
꽃들은 더 예뻐지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꽃들이 나에게
인사하는 동안
나는 더 착해지고

꽃물이 든 마음으로
환히 웃어보는
우리는
고운 친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함박눈

유난히 눈이 많던 어느 해 겨울밤
눈길을 밟아 다녀간 도둑 있었다
흰 쌀을 흘리며 달아난 발자국이
광에서 사립문 밖으로 선명했다
뒤따라가려는 아버지 말리신 건
욕심 많다 소문났던 할머니셨다
고맙게도 밤새도록 함박눈 내려
그 발자국을 모두 지워버렸었다
(강인호·시인)


+ 마중물과 마중불

외갓집 낡은 펌프는
마중물을 넣어야 물이 나온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땅 속 깊은 곳
물을 이끌어 올려주는 거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도
마중불이 있어야 한다.
한 개비 성냥불이 마중불이 되어
나무 속 단단히 쟁여져 있는
불을 지피는 거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이끌어 올려주는 마중물이 되고 싶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펴주는 마중불이 되고 싶다.
(하청호·시인, 1943-)


+ 양말

양말을 빨아 널어두고
이틀만에 걷었는데 걷다가 보니
아, 글쎄
웬 풀벌레인지 세상에
겨울 내내 지낼 자기 집을 양말 위에다
지어놓았지 뭡니까
참 생각 없는 벌레입니다
하기야 벌레가 양말 따위를 알 리가 없겠지요
양말이 뭔지 알았다 하더라도
워낙 집짓기가 급해서 이것저것 돌볼 틈이 없었겠지요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양말을 신으려고 무심코 벌레집을 떼어내려다가
작은 집 속에서 깊이 잠든
벌레의 겨울잠이 다칠까 염려되어
나는 내년 봄까지
그 양말을 벽에 고이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이동순·시인, 1950-)


+ 따뜻한 얼음  

옷을 껴입듯 한 겹 또 한 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안에 숨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박남준·시인, 1957-)


+ 꽃 앞에 서면

작은 풀꽃 하나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순간, 세상이 밝아 보이고
마음이 환해집니다.

야트막한 채송화를 보려고
몸을 바싹 낮추었습니다

세상 욕심 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꽃 앞에 서면
작고 낮은 꽃 앞에 서면

문득 나도
한 송이 꽃이 됩니다.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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