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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시 모음> 정연복의 '꽃에 대한 경배' 외

     날짜 : 2014년 07월 26일 (토) 1:17:38 오전     조회 : 2031      


<신앙시 모음> 정연복의 '꽃에 대한 경배' 외

+ 꽃에 대한 경배
                                                                                
철 따라
잠시 피었다가

머잖아
고분고분 지면서도

사람보다 더
오래오래 사는 꽃

나 죽은 다음에도
수없이 피고 질 꽃 앞에

마음의 옷깃 여미고
경배 드리고 싶다.

피고 지는
인생 무상(無常)

지고 다시 피는
부활의 단순한 순리(順理)를 가르치는

'꽃'이라는
말없이 깊은 종교

문득, 나는 그 종교의
신자가 되고 싶다.


+ 나무 예배당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한 하늘만 우러러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저마다 하나의 예배당이다.

떠벌리는 기도
요란스러운 찬송은 없어도

왠지 그 앞에 서면
가만히 마음의 옷깃 여미며

세속의 들뜬 욕심 따위
한순간 사라지고  

맑아지는 정신 속
나의 참 모습에 새로 눈뜨는  

말없이 성스러운 곳
나무 예배당.

찬 겨울
빈 가지들뿐인 나무에

날아와 앉은
두 마리 작은 새

지저귐도 없이
미동(微動)도 없이

숨 멎을 듯한 고요 속
잠시 깊은 묵상에 잠겼다가는

허공으로
가벼이 날아간다.  


+ 새싹의 계시

긴 겨울 내내
알몸으로 찬바람 맞던

깡마른 나뭇가지 여기저기
연초록 작은 싹들이 고개를 내민다.

가만히 정지해 있는 듯
앙증맞고 여린 것들

하룻밤
또 하룻밤 지나며

갓난아기 손톱 자라듯
살금살금 생명을 틔운다

참을성 있는 목숨의 힘
조용히 보여준다.

올 봄
그분의 계시(啓示)이다.


+ 믿음  

하늘의 해와 달과 별
모두 그분의 것

유월의 녹음(綠陰)과 새들의 지저귐
모두 그분의 것

저 우람한 산과 골짜기
모두 그분의 것

오고가는 바다의 밀물과 썰물
모두 그분의 것

동녘의 햇살과 서녘의 노을
모두 그분의 것

피는 꽃과 지는 꽃
모두 그분의 것

생명의 빛과 그림자
모두 그분의 것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 그분의 것


+ 천국

천국은 언제나
나의 주변에서 살랑살랑 맴돌고 있다.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면
길가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도 어여쁘고
  
이 세상에 미워할 사람
하나도 없으리니

나의 사랑이 깊어지는 그 만큼
천국은 지상으로 내려오더라.
  
사랑하는 이들과
손목 한번 마주잡고
다정한 눈길이 스치는 한순간이
  
지상에서 영원까지
나의 행복한 천국이기를!


+ 은총

나의 작은 눈동자에 폭 잠기는
저 드넓은 하늘 바다와  
푸른 빛 나무들의 산

나의 창가로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의 애무(愛撫)

사랑하는 벗들의 웃음소리와
다정한 어깨동무 이웃들

내 작은 가슴에도
이따금 꽃처럼 피어나는
착하고 예쁜 생각들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은총인가.


+ 삶의 기적      

오월의 푸른 하늘 아래
나 이렇게 살아  

언젠가 뚝 멈출 나의 심장일지라도
아직은 팔짝팔짝 뛰고 있는 것

한밤의 꿈결을 지나
날마다 맞이하는 새로운 아침

나의 두 눈 가득
풍성히 들어오는 초록빛 잎새들

나의 귓가에 맴도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나의 코끝을 파고드는
라일락 향기  

이 가슴 가위누르는
슬픔과 괴로움의 저편에서
손짓하는 한 줌의 기쁨과 환희

가끔은 내 여린 생명
맥없이 무너질 듯하다가도

누군가의 작은 기둥이기도 한
나의 존재를 생각하며
새 삶의 힘이 불끈 샘솟는 것

아장아장 겨우 걸음마 떼던
나의 작은 두 발로

저 설악산의 웅장한 공룡능선이나
도봉산 신선대에 성큼 오르는 것

어쩌면 많이 고단한 이 목숨의 끝이
저만치 다가오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기적이다
고마운 신비(神秘)다


+ 무지개의 기도

햇살 밝은 날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습니다

비가 그친 뒤에야
영롱한 무지개가 뜹니다

오, 주님!

이 무지개의 숨은 뜻
헤아리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모래알의 기도

너른 백사장(白沙場)의
모래알 하나

이것이 '나'라는 존재임을
조금씩 깨달아 갑니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저를
당신이 사랑하신다니

이렇게 작디작은 제가
당신을 생각하다니

놀랍습니다
기적입니다

헤아릴 길 없는
참 신기한 일입니다.

크고도 크신 하느님!

내 생명의 주관자
내 삶의 주인이시여

당신의 은총의 햇살
늘 비추어 주소서.

* 정연복(鄭然福): 1957년 서울 출생. pkom54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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