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면서 나오는 사람은 다름아닌 그 삼촌이라는 깡패새꺄였다.
그놈은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한발자국씩 저벅 저벅 걸어왔다.
난 그녀곁에 다가가서 말한적이 없었으므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제 저녁에 꿨던 꿈이 생각나서 오금이 저려왔다.
'일어나..'
그놈은 키가 180이 넘기 때문에 서서봐도 위협감이 느껴질 정도인데, 앉아서 위를 쳐다보며 그 말을 들으니, 정말로 저승사자가 '너 이놈 죽을때가 됐다' 라고 호령하는 것 같았다.
난 가능하면 당당하게 보이고자,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퍽.........'
내 몸이 돌아가는 방향을 보니, 아마도 저번과는 반대쪽 뺨을 맞은것 같다.
내 몸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공중제비를 한 바퀴 휙 돌더니, 길 옆 차도로 고꾸라졌다.
극심한 고통이 내 왼쪽뺨을 감싸왔다.
하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새단이 내 뒤를 막고 있어서, 차들이 나를 치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삐삐 내놔...'
역시 뭔가가 있었을 거라는 상상은 했었다.
하지만 설마 삐삐가 걸렸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왜냐면 그녀가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만 음성을 보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뿔싸..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조직폭력배 정도면 전화를 도청할 수 있는 도청장치 정도는 수십개 소유하고 있었으리라.
아마도 그녀가 집에서 메시지를 보내다가 저 깡패놈한테 덜미를 잡힌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삐삐를 그놈에게 넘겨줄 수 없었다.
삐삐마져 없다면, 내가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그놈에게 말했다.
' 없어요.. 삐삐 같은거..진짜 없'
' 퍽........'
둔탁한 소리가 내 양미간 사이에서 들리는 가 싶더니, 온 세상이 흐리흐리 해 졌다.
누가 내 몸을 뒤지는 것 같았지만, 의식을 회복 할 수가 없었다.
.
.
.
'형.. 정신 들어요?? 형 이게 맨날 뭔 꼴이유??'
어디선가 낳잊은 목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정신이 조금씩 들어 왔다.
눈을 뜰려고 시도를 했는데, 양미간이 쇠뭉치에 맞은 듯이 너무 아프고 뜨거워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여..여기 어디야??'
'형~~ 움직이지 마요.. 지금 얼굴 위에 물찜질하는 수건 올려놨단 말이예요. 여기 만화방이예요..'
아.. 눈이 안 떠지는 이유가 따로 있었군.
나는 내 손으로 수건을 벗긴후 양미간의 아픔을 참으며 억지로 눈을 떠 보았다.
만화방에 있던 쿠션 의자가 일렬로 중앙에 놓여있었고, 거기에 내가 누워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 수근수근 거리는 모습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 지금 시간이 몇시지?? 동민아?'
'형.. 지금 시간 따져서 뭐하시게요. 지금 7시 조금 넘었어요..'
' 아.. 오늘 아르바이트.. 오늘 6시까지 가야 하는데.. 주인아저씨가 오늘 급한일 있어서 절대 빠지면 안된다구 신신 당부했는데...'
그녀와 연락 수단인 삐삐를 뺏겨버린것도 큰일이었지만, 나의 밥줄인 아르바이트를 자꾸 빠지는 것 역시 큰일이었다.
나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전에 맞았던 오른쪽뺨에 오늘 왼쪽뺨까지 맞고, 또 양미간에 무엇으론가 맞았으니 , 얼굴이 정말로 말이 아니었다.
난 거울을 달라구 해서 퍼렇게 멍이 든 내 양미간을 바라보면서, 동민이에게 내가 뭘로 맞은 것 같냐고 물었다.
동민이는 자기도 제대로 보지는 못했는데, 맞던 곳 바로 앞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보니 구둣발로 양미간을 찬 것 같더랜다....
지독한 놈들.. 정말로 나를 죽일 속셈이었나. 삐삐였으니까 이정도였지,
아마 내가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라도 했으면 정말로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동민이가 위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다가 소동이 있고 얼마후 바로 달려내려와서 응급조치를 해 주는 바람에 피는 멎었지만, 여전히 양뺨과 양미간은 퉁퉁 부어 있었다.
'지금 가야 되.. 호프집... '
난 동민이를 이끌고 호프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내 얼굴의 아픔보다, 이제 그녀와 연락할 수단이 전부 없어졌다는게 내 가슴을 아프게 짓눌렀다.
이젠 정말 끝장인가.. 이젠 진짜로 그녀를 멀리서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건가..
여러 가지 절망적인 생각을 하면서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호프집에 다다랐다.
그런데 머리를 다듬으며 호프집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발을 옮기는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눈을 뒤로 돌렸다.
알고보니 호프집 패널이 뭔가에 맞아 박살이 나 있었다.
갑자기 불안한 예감이 온몸을 감싸돌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발을 날려 지하 호프집으로 뛰어 내려갔다.
'쿵.......'
호프집 지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어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들어온 동민이도 그 자리에 숨소리도 내지 않고 멈춰 섰다.
호프집은 전쟁이 한차례 쓸고 지나간 것처럼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쓰러져 있는 테이블들, 깨져서 어지럽게 널부러진 병과 술잔들, 뭔가에 맞아 구멍이 나 버린 생맥주통. 정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 자리에 꼼짝않고 앉아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계속 서 있던 동민이가 가계 구석편 카운터 뒤쪽에 쓰러져 있는 주인아저씨를 발견하고 아저씨를 외치며 그쪽으로 뛰어갔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아저씨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저씨의 입 양쪽과 코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구두발 자국들이 아직도 옷 전체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아저씨는 동민이가 아저씨를 외치면서 흔들자, 겨우 정신을 차리셨다.
'저기.. 112에 신고를.. 112에...'
내가 아저씨를 부축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동민이는 아저씨를 부축하던 손을 놓고 전화기 있는 쪽으로 달려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안돼..!!! 수화기 어서 내려놔..!!!'
우린 아저씨의 비명 가까운 외침에 깜짝 놀랐다.
동민이는 아저씨가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 표정을 지으며 전화기를 잠시동안 붙잡고 있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걸어왔다.
아저씨.. 아니 나에게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아저씨. 내가 대학들어와서부터 공익으로 근무할때를 제외하고 나를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로 써 주셨던 나의 소중한 친구이자 나의 후견인인 아저씨.
내가 사정이 있어 가불 좀 해달라구 하면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척척 돈을 잘 가불해 주시던 아저씨.
지금 그 아저씨가 내 앞에서 피곤죽이 되어 앉아계신다.
그리고 이렇게 엉망으로 당하셨으면서도, 뭐가 두려우신지 경찰에 신고도 못하게 하신다.
하지만 이번에도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눈물만이 뺨을 적시며 흘러내릴 뿐이었다.
'진석아...........'
'예.. 아저씨.........'
'..........미안하다..........'
'예... 아저씨.......'
우린 몇 년간을 알고 지낸 사이였으므로,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난 아저씨가 무슨말을 하고 싶어 하시는지, 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통해서 다 알 수가 있었다.
난 아저씨를 동민이에게 맡기고 , 휘청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호프집의 입구를 향해서 터벅 터벅 느린 발걸음을 옮겼다.
' 진석이형....'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아저씨는 카운터 위에 있는 종이 하나를 묵묵히 가르키고 계셨다.
나는 그 종이를 힘없이 치켜들어 읽어보았다.
' 너 박진석. 오늘부터 학교가 종강하는 12월 7일까지 학교 근처 출입 엄금. 만약 출입하다가 걸릴시엔 넌 죽고 너희집은 불질러 버리 겠음. - 성미 삼촌 '
이게 절망의 끝일까.. 아니면 이보다 더한 절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 나의 기분은 뭐랄까..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산 밑까지 굴러떨어지는 기분이랄까..
이젠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다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만 같지 못했다.
집까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땅만 보고 걸어왔다.